솔직히 차박 누가 가나 했다…얼떨결에 다녀온 2박3일 이야기 [가을 차박①]
아차, 늦었다. 웬만해선 약속에 늦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대놓고 늦어버렸다. 학창시절 집이 가까운 친구가 지각이 잦은 것과 같은 이치다. 무슨 소리냐, 캠핑 그것도 차박을 떠나려 준비한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좀 달랐다. 카셰어링 기업 쏘카가 차박을 떠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차량공유를 넘어 차박 전용 차량까지 서비스한다는 것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로 콜사인을 보냈다.
이렇다 보니 여유를 부리고 부리다 결국 약속 시간을 놓친 것이다. 물론 출발 시간이 늦어졌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늦은 만큼 여유 있게 여정을 즐기면 되니 말이다. 우리의 2박 3일을 책임질 차량은 현대차의 스타리아 캠퍼. 최근 캠핑차량으로 인기가 높은 차종이다.
본격적으로 생애 첫 차박여행의 시동을 걸었다. 놀랍게도 최종 목적지는 출발 전까지 정하지 못했다. 첫 차박이라 더 고민에 빠져서다. 풍경도 환경도 두루 괜찮은 곳을 블로그나 유튜브로 뒤져도 어느 하나씩 꼭 모자라 보였다. 결국 동해가 있는 강원도, 바다를 마주하는 해변으로 떠나기로 했다. 부딪혀보는 재미, 이 또한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일 테니 말이다.
한 마디로 꽃대궐이다. 국화, 코스모스 등 가을꽃은 물론 이름 모를 여러 꽃이 수십만, 아니 수백만 송이는 족히 돼 보였다. 우리가 갔을 때가 가을 초입이라 만개 전인데도 불구하고 총천연색 컬러바가 초라해 보일 정도로 화려했다. 더구나 마치 미로찾기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지루함이란 있을 수 없다.
이벤트 참여도 아이들의 흥미를 돋웠다. 포춘쿠키를 뽑아 들면 다양한 경품을 준다. 꽃축제답게 제법 큰 소국 화분과 5000원 상당 인제사랑상품권을 받았다. 화분의 소국은 만개해 집 거실을 가을 분위기로 바꾸는데 한 몫하고 있고, 상품권으로는 당일 맛있는 황태해장국 한 그릇 먹는데 보탰다.
흡사 새 둥지 분위기가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아늑했다. 더구나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라는 것에 애들은 덩달아 신나했다. 10여 분이 흘렀을까. 새근새근 소리가 들려왔다. 잠투정마저 날려버리는 팝업텐트가 신통방통했다.
낮잠도 잤겠다, 온 가족의 컨디션 역시 최상으로 올라온 만큼 동해를 향해 달렸다. 설악산을 마주하는 뷰도 좋았지만 바다, 깊고 푸른 동해가 어서 빨리 보고팠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바다를 실컷 보려 속초IC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무엇보다 바다를 곁에 두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사계절 막론하고 진리다.
더구나 이곳은 화로금지다. 나무가 많아서일 테다. 물멍과 불멍을 동시에 기대하는 차박러에게도 적절하지 않은 장소이다. 하지만 화장실이나 편의시설 등은 아주 잘 갖춰져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 만큼 안전도 걱정할 필요 없다.
게다가 화장실이 최근에 지어져 조금 과장하면 호텔급이다. 어린이를 위한 보조 시설까지 갖춰져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곳 역시 화로금지에, 낚시인들에 좀 더 친화적이라고 할까. 차박 분위기를 내는데는 2% 부족함이 느껴졌다.
또 주변의 화진포 해양박물관도 차박러들의 후기가 제법 있었다. 모래사장에 천국의 계단도 만들어져 있고, 주차장 역시 널찍했다. 다만 이곳에는 곳곳에 차박이나 캠핑 금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물론 화로 사용은 금지였다.
또 공용 화장실이나 편의점이 도보로 1~2분 내였다. 아울러 주변에 차박러가 많다 보니 초보자로서 위안이 되는 부분도 생겼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최초 차박지는 거진해수욕장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아뿔싸. 스타리아 캠퍼는 모두 USB 형태의 전원인 점을 몰랐다. 분명 전원 공급이 충분히 잘 되는 차량이다, 곳곳에 전원공급 장치가 있다란 문구를 봤는데 그 공급원이 모두 USB포트일 줄은 상상을 못했다. 그것만 믿고 가스버너조차도 챙기지 않은 초보 차박러의 실수 연속이다. 결국 우리가 준비한 음식의 조리는 불가했다.
다행히 조금 떨어진 차박러들의 장비가 월등해 우리에게 도움을 줬다. 그들의 밝은 조명이 우리에게까지 비춰준 것이다. 물론 우리도 차량 외부 점등 기능이 있었지만 켜자마자 쉴 새 없이 몰려드는 날벌레에 항복하고 말았다.
임기응변 음식들이 전부였지만 차려놓고 보니 그럴싸했다. 더구나 이곳은 동해다. 검푸른 파도가 철썩철썩 귓전을 때리고, 비리지 않은 향긋한 바다내음도 기분을 좋게 했다. 모래사장도 많이 곱지 않고 입자가 성근 편이라 지지하는 맛도 있어 만족스러웠다. 사실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차박성공’이라는 성취감이다. 많이 어렵고 힘들지 않을까란 걱정은 막상 도전해보니 해볼 만한 수준이었다. 물론 아직 하룻밤도 보내기 전의 설레발이지만 대체적으로 차박에 대한 두려움은 깨졌다.
한밤이 가까워지기 전 잘 수 있는 공간을 위한 채비에 들어갔다. 의자를 다 눕히니 꽤 평평해졌다. 그 위에 에어매트를 펼치고 펌프를 연결해 열심히 공기를 주입했다. 옆 차박러들이 왜 전동기기를 쓰는지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보며 발길질하다 보니 우리 매트도 탄력 있는 자태로 변신했다. 이불과 베개 등을 놓고 눕고 뒤척이고 굴러보고 다해봤다. 은근히 편하고 넓다. 어른 둘, 아이 둘이 여유 있게 누웠는데도 꽤 공간이 남는다. 혹시 좁으면 2층 팝업텐트에서 자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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