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반복되는 사회, 구조적으로 바꿔 안전할 권리 보장받아야”[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단원고 2학년 9반 진윤희의 엄마.” 3년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경기 안산에서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시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게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바뀐 게 거의 없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미안함 느껴
안전을 치안이나 국가의 관리 대상이 아닌
시민 권리로 법적 보장하면 사회 더 나아져
김순길(57)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진도 앞 해상에서 침몰하며 열일곱 살 난 딸 윤희를 잃었다. 그의 삶은 그 사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그전에는 집회나 시위에 나가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거리에 나가 발언하고 경찰과 대치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는 최근 5만명이 서명해 국회 상임위원회 회부 요건을 충족한 생명안전기본법의 국민동의청원 대표 청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직후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유족들이 찾아와 위로해줬을 때 느꼈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압사하는 참사가 일어났을 때 미안함을 느꼈다. “세월호 이후에도 이 사회가 변하지 않은 게 우리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어머니 김순길의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4·16 연대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 9월28일 국민동의청원 요건이 성립했죠. 생명안전기본법, 어떤 법인가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재난을 예방하는 의무를 국가에 지우고, 어떤 재난 참사 현장에서도 인간 존엄의 가치를 존중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입니다.”
- 그 법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나요.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 재난 예방과 그 이후의 대책이 하나도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피해자의 권리도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고요.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10년 가까이 많은 사회적 참사가 일어났잖아요. 작년에 이태원, 올해는 예천과 오송에서 대형 참사가 났고요. 많은 경우 천재지변이 아니고 운이 나빠서 발생한 것도 아닙니다.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입니다. 정부가 생명존중 가치를 우선해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 책임감 있게 집행하고, 재난을 겪지 않은 시민과 이미 겪은 피해자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생명안전기본법은 2020년 11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 생명안전포럼 소속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한번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이번에 시민들의 국민동의청원으로 비로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다. 이 법은 ‘사람의 안전권’을 명시하고 국가가 그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권을 침해당한 피해자의 권리를 명시하고, 피해 회복을 시혜나 특혜가 아니라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의 개념으로 본다.
헌법에는 ‘생명’과 ‘안전’ 개념이 들어 있지 않다. 헌법 본문에 ‘안전’이란 말이 10번 등장하지만, 모두 ‘국가의 안전 보장’의 맥락에서만 쓰였다. ‘생명’은 범죄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한 번 쓰였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헌법 조문이 있고, 재난·안전관리기본법이 있긴하다. 하지만 안전권을 기본권으로 보기보다 정부의 관리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다.
- 안전을 치안이나 국가의 관리 대상이 아니라 시민과 피해자의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평범한 엄마였던 제가 하루아침에 아이를 잃었을 때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게 됐어요. 지금까지도 갖는 의문이 왜 구조하지 않았느냐는 거예요. 골든타임 안에 도착해 구조할 시간이 있었는데 제대로 구조하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10년 가까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고, 이 사회의 다른 아이들은 좀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안 되고 있어요. 여전히 안전을 권리로 보지 않는 것과 관계있어요.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저희는 엄청난 혐오 발언을 겪어야 했어요. ‘안산의 가난한 동네에서 왜 제주도까지 가느냐, 놀러 가다 그런 것 아니냐, 시체팔이 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국가가 기무사·국정원·경찰을 동원해 사찰까지 했잖아요. 안전할 권리, 피해자로서 보호받을 권리가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인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 국민동의청원을 준비하는 과정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대구 지하철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산재 노동자 김용균씨 등의 유족들이 참여했는데요. 세월호 가족이 대표 청원을 하게 된 이유는요.
“그전에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참사 등 많이 있었죠. 하지만 과거에는 참사가 일어나도 얼마 안 가 묻혔어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온 국민이 뭔가 구조적으로 잘못됐다는 점을 알게 됐어요.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세월호 참사가 반복되는 재난 참사를 일깨워준 것 같아요. 재발 방지를 하자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안전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얘기하게 된 거죠. 그래서 참가자들 모두 세월호 유족이 대표 청원자가 돼야 한다고 동의했습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1964~2013년 50년 동안 10명 이상 사망한 대형 재난은 276건이다. 두세 달에 한 번꼴로 대형 참사가 발생한 셈이다. 하지만 그 참사들은 대체로 국가의 관리하에 수습되는 것처럼 보였고 일부 사건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금세 잊혀졌다. 작은 제도 개선이 있었지만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 같지는 않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이윤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재난을 피해자 입장에서 바라보며, 피해자 지원을 특혜가 아닌 권리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다.
- 지금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생명안전기본법이 있으면 개별 사건의 특별법은 필요 없어지는 건가요.
“그렇죠. 생명안전기본법에 독립적 조사기구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생명안전기본법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필요해요. 특별법이 패스트트랙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그 싸움을 이미 해본 저희 입장에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게 보여요. 저희는 특별법 통과 후에 또 시행령 싸움을 했잖아요. 특별법이 만들어진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정부의 비협조 또는 방해가 있을 거고. 한계가 계속 느껴질 거예요.”
- 생명안전기본법에 규정된 독립적 조사기구에는 수사권을 넣지 않았더군요.
“수사나 재판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잖아요. 독립적 조사기구에서는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따지고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살펴 책임을 정치적으로 배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어요. 수사와 기소는 정부기관에서 하도록 해야겠죠.”
박상은 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이 지난해 출간한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이라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재난 조사에 있어서 누군가를 처벌하는 사법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사법적 접근은 재난 사고의 책임을 인격화하기 쉽고, 현행법 체계상 결국 현장 실무자만 처벌하고 마는 상황에서 구조적 접근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는 성찰이 담겼다.
김순길은 세월호 참사 후 10년 가까이 흘렀어도 딸이 보고 싶고,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젠 좀 잊으라’는 말이 가장 힘들단다. 자식들을 구조하지 못한 국가가 지금도 원망스럽다. 동시에 사회 구조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낼 정도로 이 사건을 어느 정도 객관화하기도 했다.
-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생명안전기본법이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가 나지 않았을까요.
“이 법을 놓고 다른 유족들과 얘기하다보면 그렇게 얘기하세요. 우리 때도 이런 게 있었더라면, 국가에 좀 더 분명하게 예방과 대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했을 것이고 좀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세월호 참사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참사가 났더라도 유족들이 그렇게 힘들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뛰어다니지 않아도 됐을 거고요.”
- 세월호 참사 9년, 진상조사 결과물들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만족스럽지 못해요. 어찌 됐든 진상규명의 한계가 분명해요. 침몰 원인을 못 밝힌 것도 저희는 힘들지만 구조하지 않았다는 게 사참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결과 명백히 드러났잖아요.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았고, 해경이 대처를 제대로 안 한 것이 드러났는데도 책임자 처벌을 못했어요. 조사 활동을 방해한 김기춘·조윤선은 다 무죄를 받았고 세월호 선장과 현장에 충돌한 해경 실무자만 처벌받았어요. 그 위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으면 이런 참사는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 안전사회 만들기 측면에서는 얼마나 나아졌나요.
“그것도 바뀐 게 거의 없어요. 이태원 참사가 났을 때 세월호 가족들도 충격을 받았어요.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저런 일이 일어나지?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에게 미안했어요. 우리가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에.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이 저희에게 했던 말이었는데, 몇십 년이 지나도 똑같은 거죠. 우리가 전혀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제주 세월호 기억관에 갈 일이 있었는데, 봄철 벚꽃 축제에 몰린 인파 사이로 편의점 대형 물류 트럭이 비집고 들어오는 장면을 봤어요. 안전요원은 한 명도 안 보이고, 정말 아찔했어요. 곳곳이 그래요. 사실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죠. 안전이 범위가 넓잖아요. 그러니까 내 안전을 어디서부터 지켜야 할지 잘 모르죠. 그냥 교통법규 잘 지키고 생존수영 배우면 안전인가, 그건 아니잖아요. 사회 곳곳에 안전하지 못한 곳이 너무 많은 거죠. 내 안전 내가 지켜야 하는데 어디에 안전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개인들로서는 잘 알 수가 없잖아요. 생명안전기본법에는 위험에 대해 알 권리, 안전에 대한 시민의 참여권도 명시하고 있어요. 시민과 노동자가 각종 재난과 안전사고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속적인 교육이나 상기시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고요.”
이윤을 안전에 앞세우다 일어난 산재사고
예전엔 남 일로 보였지만 이젠 가슴 때려
‘정치적인 이용’ 일부의 시선은 힘들지만
시민들의 응원이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
세월호 참사 후 구의역 스크린도어 김군(2016년), 제주 특성화고 이민호군,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2018년) 사망 사고가 있었다. 그전엔 남의 일로만 보였던 산재 사고도 세월호 유족의 가슴을 때렸다. 이윤이 안전에 앞서고, 국가가 그런 구조를 방치하거나 조장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김순길은 김용균재단과 늘 함께한다.
- 시민 교육을 위해 참사를 기억할 공간도 필요하겠죠.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고 나서 추모공간을 어디 둬야 할지 고민하며 많이 돌아다녀봤어요. 삼풍, 성수대교 같은 과거 사례를 봤어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기억공간이 없어요. 정말 가족 외에는 1년에 한 번 찾아가기도 어려운 곳에 있어요. 잘 보이는 곳에 기억공간이 있다면 그런 참사를 되풀이하면 안 되겠구나 경각심도 줄 수 있겠죠. 그래서 안산에 4·16 생명안전공원을 제대로 만들고 싶어요.”
- 지난 9년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제는 좀 잊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말이 제일 아파요. 뭐,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요. 살기 싫어도 살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잊어요. 그게 가장 아파요(잠시 침묵). 또 힘들었던 건 주위의 시선이었어요. 저희를 피해자로 보지 않고 이익단체나 정치싸움에 휘말린 사람들로 보는 시선이….”
-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어온 힘은 무엇인가요.
“제 마음을 다지는 데는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네(윤희)가 왜 그렇게 됐는지 밝히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이렇게 이어올 수 있었던 동력은 같은 아픔을 가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있었던 데 있어요. 그리고 저희를 응원해주는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 이태원 유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요.
“얼마 전 이태원 참사 어머니들이 찾아왔어요. 아이들 1주기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들 생일은 어떻게 챙겨주는지, 형제·자매는 어떻게 챙겨야 할지 궁금한 게 많으셨나봐요. 저희는 오래 해오다 보니 공방, 합창단, 연극단 같은 동아리도 있고 자주 모여요. 그런 것 없이 그냥 진상규명 활동만 해왔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저희가 안산이란 장소에 모여 있고, 같은 단원고 학부모이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죠. 이태원 피해자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어요. 그럼에도 각 지역에서 작은 모임이라도 갖는 게 중요해요. 같은 아픔을 가진 우리들이 이렇게 모일 때 힘을 얻을 수 있고 오랫동안 같이 갈 수 있는 동력이 되거든요. 어쩌면 이태원 가족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건 다른 의미에서는 장점일지도 몰라요. 뭔가를 놓고 싸울 때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으니까요.”
두 딸을 키우던 “평범한 엄마”였던 그는 요즘 공개석상에서 마이크를 잡는 일이 잦다.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도둑”으로 비하한 차기환 전 세월호 특조위원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국가 폭력에 희생된 과거 반독재 민주화운동 유족과는 또 다른 의미의 유족 활동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 내내 나지막하고 떨리는 듯한 목소리이지만, 아무도 꺾기 어려운 강인한 의지가 느껴졌다. “내 아이를 보내고 더 많은 아이를 가슴에 품게” 된 어머니여서 그런 것일까.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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