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 칼럼] ‘투 코리아’ 방안, 공론화할 만하다

서의동 기자 2023. 10.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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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내년에 30주년을 맞는 정부 공식 통일방안(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개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간지가 보도하자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일단 부인했으나 어떤 형태로든 손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화해·협력을 거쳐 남북연합을 구성한 뒤 최종 통일로 가자는 3단계 통일방안이 대북압박을 선호하는 윤석열 정부 성에 찰 리도 없다. 윤 정부는 집권 이후 한·일관계 복원을 서둘러 한·미·일 군사 준동맹화 기틀을 다졌다. 한반도에서 한·미·일과 북·중·러의 전선을 구축하는 ‘외교 새틀짜기’가 일단락되자 남북관계 재규정 작업에 손대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 거의 사라진 ‘통일’이 ‘평화’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불안하다. 윤 정부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은 포장을 뜯어내면 ‘흡수통일’이기 때문이다.

윤 정부의 외교·통일 새틀짜기에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세력은 어떤 입장인지 분명치 않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과 그 후 전개된 북한의 변화, 국제질서 대변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현상에 대한 파편적 해석은 나오지만, 총체적인 정세인식을 기반으로 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다. 윤 정부의 ‘가치외교’ 공세가 국익에 해롭다는 우려 외에 뚜렷한 대항 담론도 없다.

‘포스트 하노이’ 시대 북한은 우리가 예전에 알던 북한이 아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전술핵 개발과 남북 갈라서기 움직임이다. 전술핵 개발은 ‘북한의 핵보유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 탓이고, 핵무력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진보의 인식을 배반한다. 남북을 별개의 국가로 간주하려는 징후도 뚜렷하다. 북한은 2021년 8차 당대회를 통해 ‘남조선 혁명’을 노동당 규약에서 삭제했다. 지난 7월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 방북 계획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국가 간 관계를 담당하는 외무성이 발표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같은 달 미군 정찰활동을 비난하는 담화에서 한국을 ≪대한민국≫으로 호칭했다. 북한 문법에서 ‘겹화살괄호’가 상대를 비아냥거리기 위해 쓰이기도 하니 해석 여지가 남아 있지만, 북한이 남북관계에 대한 미련을 접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8일 막 내린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북한의 대남인식이 극사실적으로 드러났다. 북한 여자축구 리유일 감독은 한국 기자가 북한을 ‘북측’이라고 부르자 “북측이 아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시정해달라”고 했다. ‘남·북측’ 호칭에 대한 북한의 거부반응은 지난 30년간 남북관계를 규율하던 ‘남북기본합의서 체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사표시로도 읽힌다. 북한이 정말로 ‘두 국가(Two-Korea) 체제’로 나아가려는 것인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한국 사회 일각의 ‘민족주의적 통일’론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요컨대, 국내 진보진영의 ‘한반도 평화기획’은 보수정부와 북한 양쪽으로부터 공격받거나 부인되고 있는 것이 최근 상황이다. 이에 대응할 ‘큰 그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두 개 국가론’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이다. 윤영상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이를 ‘남북한 상호승인론’으로 개념화했다. 갈수록 격화되는 한반도 긴장과 갈등을 관리하는 해법으로, 남북 간 ‘건강한 갈라서기’를 제도화하자는 취지다. 윤 교수 주장대로 남북이 상호승인하며 특수한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건 ‘한국전쟁의 핵심 당사자 간 적대관계가 일단 청산되는’ 효과가 있다.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남북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당위론은 담겼으나 남북이 별개 국가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이 남북 문제의 ‘과잉정치화’를 유발했다. 가뜩이나 정권교체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마당에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남북은 하나’라는 정념(情念)이 대북정책 변동성을 더 키운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남북 상호승인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문제의 핵심인 ‘북핵 문제’는 여전히 남겠지만 현 상태로도 해결이 난망하긴 마찬가지다. 한·미·일과 북·중·러 대립 구도 최전선에 있는 남북이 상호승인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면, 그 자체로도 긴장완화 효과가 크다. ‘투 코리아’가 성립된다고 해서 민족 내부관계의 특수성이 부인되지 않는 것은 독일 사례가 말해준다. 30여년 전 형성된 남북합의서 체제에 갇힌 채로는 남북관계 타개를 위한 창의력이 발휘될 수 없다.

서의동 논설실장

서의동 논설실장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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