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기자 갈등 커지는 한국경제에서 무슨 일이?
한경 기자들 "디지털 전환 제대로 하려면 지면 업무 획기적으로 줄여라"
편집국장, 부서별 플랫폼 추진 요구… 기자들 "투자 없는 업무 가중 안돼"
지난달 17일 바른언론실천위원회에서 지적하자 편집국장 반박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
“디지털 전환 제대로 하려면 지면 업무 획기적으로 줄여라.” (바른언론실천위원회보)
“바실회보가 잘못된 내용을 상당히 담고 있어 내용 전체를 수정 및 철회하라.” (편집국장)
“바실회보 전면 수정 및 철회 요구에 깊은 유감, 받아들일 수 없어” (바른언론실천위원회)
본격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 부서별 플랫폼을 추진하라는 한국경제 편집국장과 투자 없는 업무 가중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자들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기자들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로그인 전용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버겁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제 편집국장이 기자들이 부서별 플랫폼 추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을 쓴 바른언론실천회보를 수정 및 철회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기자들은 다시 한번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다.
최근 박준동 한국경제 편집국장은 기자들에게 '디지털 플랫폼 구축 혁신안'을 전달했다. 오전 지면 계획은 없애고 온라인 기사 먼저 송출하는 대신 지면 기사는 추후 각 팀의 차장이 분량을 줄여서 지면에 반영하자는 내용이다. 또 부서장이 선두에 서는 부서별 플랫폼을 추진하라고도 했다. 부서별 플랫폼 추진은 한마디로 경제, 증권, 부동산, 금융, 산업, 정치, 사회, 국제 등의 카테고리가 있으면, 현재 카테고리들에 세부 하위 카테고리를 추가로 만들어 소플랫폼을 강화하는 것.
이에 지난 11일 한국경제 노조 산하 바른언론실천위원회 위원들이 회의를 열고 △회사의 부서별 플랫폼 추진 요구 △로그인 월 콘텐츠 제작 △지면 중심 제작 등에 비판적 의견을 모았다. 이날 회의는 한국경제 노조원 183명을 대표하는 바실위원들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A바실위원은 부서별 플랫폼 구축에 대해 “말이 좋아 플랫폼 구축이지 결국 한경닷컴 홈페이지 개편 아닌가”라고 말했고, B바실위원은 “로그인콘텐츠 문제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인력 충원도 없어 업무 과중은 그대로인데 또 무슨 부서별 플랫폼 구축이냐”고 말했다.
지난 17일 바실회보에 따르면 바실위원들은 결국 업무 중복이 여전할 거라고 우려했다. 온라인 기사를 써도 지면 기사를 위한 2차 기사 가공을 또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D바실위원은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의 문법이 다르다. 온라인 기사는 대체로 전문적인 용어로 쓰기도 하지만 지면 기사는 범용이기에 쉽게 풀어 써야 한다”고 말했다. F바실위원도 “지면은 B2B 기사가 잘 읽히지만 온라인 기사는 B2C 기사가 잘 읽힌다. 결국 지면 기사로 재가공하는 데 상당 시간이 걸리기에 국장 생각대로 온라인 기사 한 번 쓰고 일이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디지털 전환을 제대로 하려면 지면 중심 업무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실회보에 따르면 바실위원들은 현재 밤 11시30분 최종판 마감 시간을 밤 9시로 앞당기자고 했다. C바실위원은 “지면이 있는 한 부담은 계속 있을 수밖에 없다. 지면 기사에 대한 업무 부담을 낮춰야 디지털 콘텐츠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로그인 전용 'KHAN UP'(칸업) 서비스를 오픈한 경향신문이 디지털화에 집중하기 위해 내년 1월부터 종이신문을 주 5일(토요판 폐지)만 발행하겠다고 했다. 바실위는 이 사례를 예로 들며 지면 및 업무 구조조정을 획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장의 주문으로 편집국장이 무리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바실회보는 “앞서 박 국장은 '소플랫폼 구축은 디지털화에 속도를 내라는 사장의 업무혁신 지시 일환이자 내가 그간 준비했던 혁신 방안 중 핵심이다. 조만간 경영진 방향을 듣는 대로 편집국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갖겠다'고 해명했다”며 “결국 기자들의 예상대로 오랜 시간 준비했다기보다 사장 지시에 따라 마련된 계획이라는 게 확인된 셈”이라고 했다.
디지털 인력 역시 충원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바실위원은 바실회보에 “웹과 온라인 중심으로 가려면 단순히 기자뿐만 아니라 UI·UX 디자이너와 그래픽 디자이너 등이 필수적이다. 회사는 온라인에 집중하는 환경과 인프라부터 마련하는 게 우선 아닌가”라고 말했다.
바실회보 발간 후 박준동 편집국장은 “바실회보가 잘못된 내용을 상당히 담고 있으며, 일부는 악의적으로 표현돼 있다고 판단해 잘못된 내용 전체를 수정하거나, 아니면 바실회보 자체를 철회할 것을 바실위에 정식으로 그리고 공식으로 요구한다”며 18일 오후 6시까지 수정 또는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부서별 혁신방안에 대해 기자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내용에 대해 박준동 편집국장은 “편집국장은 디지털 전환 방향에 대해 공감하는 기자들이 훨씬 많을 뿐 아니라 부서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을 거치는 '부서별 혁신방안'에 반발하는 기자는 극히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탑다운이 아닌 바텀업 방식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는 방안에 대해 반발하는 기자들이 그렇게 많은가? 만약 그렇게 판단한다고 하면 국장단과 바실위가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박 편집국장은 이어 “김정호 사장은 플랫폼 강화를 통해 디지털 혁신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금도 각 부서와 만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추진해 온 디지털 전환의 연장선상이다. 방안에 대한 지시는 없었다. 편집국장이 종합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체계적이고 일목요연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에 대한 설명을 노조 사무실에 가서 했다. (바실회보에서) 이를 뺀 이유는 무엇이냐”고 반박했다.
편집국장의 바실회보 수정 및 철회 요구에 바실위는 다시 한번 입장을 냈다. 바실위는 “편집국장의 바실회보 전면 수정 또는 철회 요구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박 국장은 바실위 회의를 거쳐 나온 의견과 제안들을 '악의적'이라는 단어로 치부하며 후배 기자들에게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국장의 대응이 이렇다면 앞으로 바실위원들은 어떤 의견도 자유롭게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바실위는 “이번 바실회보를 통해 김정호 사장이 제대로 된 디지털 전환 방향을 고민하고, 단계적 계획을 세워 인력 확충은 물론 기자들의 근무 방식 및 복지와 처우에도 혁신을 단행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며 “하지만 돌아온 건 바실회보를 뜯어고치라는 식의 편집국장의 감정 섞인 입장문이었다. 편집국의 대표이자 기자들의 수장인 편집국장께서 사장을 찾아가 기자들의 요구를 가감 없이 간언해주실 수는 없었던 건가. 편집국장의 바실회보 전면 수정철회 요구라는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게 돼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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