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울어진 학교를 바로 세우려면

기자 2023. 10. 24. 20:1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보다 더 뜨거웠던 전국 교사들의 함성으로 기억된다. 서울 서초동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수십만명의 교사들이 참여한 교권회복 운동의 불씨가 돼 마침내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란 것을. 왜 이렇게 됐을까?

요즘 모임에 나가면 가급적 정치나 종교 얘기는 꺼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주장만 있고 공유되거나 합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근대의 탄생이 자아(ego)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이건 나가도 너무 나갔다. 자아의 발견수준이 아니라 자아가 넘쳐서 터질 지경이다. 아무리 수십년간 군사독재의 폭압에서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민주화만으로 더 이상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런 과잉자아의 문제는 비단 우리 사회에서만 나타난 문제는 아니다. 심지어 미국은 총기를 학교에서 난사하는 사고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자아폭발의 시대다. 자아가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 충족의 극대화로 치닫고 있다. 이 속에 합리와 이성이 설 자리가 없다.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설명한다는 자체가 무모한 상황이다.

우리의 근대문명은 인간의 욕망을 합리화했고, 이것을 극대화하면서 추동됐으니 그 끝자락은 ‘자아폭발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인문의 실종, 사회 기강의 해이, 조직 윤리의 부패와 같은 문제들도 결국 자아폭발의 증상에 다름 아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인하여 잠시 잠잠했던 학교 폭력 문제나 악성 민원들도 모두 이러한 과잉자아들의 충돌과정이 아닐까.

교육과 학문은 공적이다. 내 것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을 배우고,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일을 찾는 과정이다. 기능을 개선하는 계발(啓發)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개발(開發)인 것이다. 자격증이나 기술 등으로 시장 가치를 높이는 처세술을 쌓는 게 아니라 인품을 바꾸고, 인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나의 세상’이 아니라 ‘세상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사적 욕망을 버리는 것이 교육인데 지금은 오히려 사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되고 있다. 자기를 중심에 두는 자아로는 교육관계, 사회적 관계 설정은 불가능하다. 급격한 교육 시장화로 인해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상호권리 투쟁으로 치닫는 것은 어쩌면 예상된 결과이기도 하다.

서초동 초등학교 사건은 이러한 교육적인 목적이 전도된 상황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죽음이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권리 간 상호 균형점을 맞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학교 구성원의 권리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과 방향이 틀렸음을 알려주는 경종인 것이다.

기울어진 것은 운동장만이 아니라 학교 자체다. 기울어진 학교를 바로 세우고, 학교의 공적 이해를 확장시키는 출발점은 공교육의 목표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에고들끼리 뭉쳐 더 큰 에고를 만들어가는 사교육이 아니라 셀프(self)를 만드는, 셀프들끼리 뭉치게 하는 공교육의 대조는 그 결과를 이미 예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교육적 관계는 사회적이고 공적인 영역으로 각자의 권리보다는 책임과 의무가 우선한다. 이것을 ‘참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름한다면 민주주의의 새로운 버전으로서 ‘책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거대한 촛불 행동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10년 후 터진 서초동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은 교사 행동으로 분출됐다. 셀프들의 연대는 언젠가는 큰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뜨거웠던 2023년 여름을 기억하자. 교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 에고가 강조되는 인권조례가 아니라 셀프가 강조되는 책임 조례가 필요한 때이다.

김현철 다음시대연구소 이사

김현철 다음시대연구소 이사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