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코로나 거치며 국내 영화계 크게 위축 영화 출연·제작진도 대거 OTT로 넘어가 2024년 한국영화 신규 투자 축소 가능성 OTT, 콘텐츠진흥원 아닌 영진위 맡아야 영화발전기금 고갈로 위기 더욱 심각 지역영화제 등 지원금 축소 우려 이해 재도약 협의체서 ‘홀드백’ 문제 등 논의 제작사·극장 상생 노력…정부 지원 절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오리지널·시리즈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콘텐츠는) 영화의 새로운 형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다 영화인들이 만들고 있잖아요.”
박기용(62)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영화 산업에서 OTT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올해 4월 인터뷰에서 OTT 관련 업무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아닌 영진위가 맡아야 한다며 업무 분장에 대해 “‘전쟁이 시작됐다’고 표현해도 좋다”는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박 위원장은 “너무 절박한 심정에서 과한 표현을 했다고 인정한다”면서도 “생각은 그때와 같다”라고 했다.
현재 영화 산업은 위기다. 이는 영진위도 마찬가지다. 영진위는 그간 극장 입장권 판매 부과금으로 마련된 영화발전기금(영발기금)을 토대로 운영됐다. 하지만 영발기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고사 위기에 놓인 영화계를 살리기 위해 쏟아부었고, 예상과 달리 엔데믹(풍토병화)에도 관객이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바닥을 보이고 있다. 이제 더는 영발기금으로 영진위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영진위 영화교육지원센터에서 만난 박 위원장은 “하필이면 제일 안 좋은 시기에 위원장을 맡게 됐다”며 “많은 분으로부터 위로와 격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욕을 많이 먹어서 영웅은커녕 역적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상황이 안 좋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2022년 1월에 임기를 시작해 이제 3개월여의 임기를 남겨 둔 박 위원장은 취임 때부터 영진위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과 재원 다각화를 강조해 왔다. 이는 필연적으로 ‘OTT를 어떻게 볼 것이냐’라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하지만, 열심히 한 것과 결과는 다른 문제”라면서 이 두 문제 모두 확실한 해법을 만들어내진 못했다고 자인했다. 다만 문제 해결을 위한 변화의 물꼬를 텄고, 이제 시작된 흐름을 이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영화계는 ‘빈곤 속에 풍요’의 시대를 맞은 것 같다.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OTT가 큰 관심을 보이지만, 동시에 한국 영화 시장은 전례 없는 위기다.
“칸, 베를린을 가서 해외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면 막 난리가 나더라. ‘진짜 엄청난 기회를 잡았구나, 우리가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들에게 한국영화 산업이 얼마나 위기인지 얘기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하지만 현실은 미개봉 영화가 너무 많고, 투자금이 회수가 안 돼 신탁·투자가 위축됐다. 그래서 올해 상반기 제작 신작이 8∼9편밖에 안 되고 하반기는 더 줄어들고 ‘내년 설 시즌에 한국 영화가 없을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반면 OTT 제작은 더 활성화하고 출연진이나 제작진들은 대거 그쪽으로 넘어갔다. OTT 시리즈 영화의 경우, 제작을 1년 정도 하니까 상당 기간 수입이 보장되지 않나. 보수도 높아졌고, 그러니까 당연히 (영화로) 오질 않는다. 지금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상투적이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생각한다. 체질 개선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전환기를 슬기롭게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에 따라 한국 영화가 훨씬 더 강해질 수도 있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취임 때 위원회 정체성 확립과 재원의 다각화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영진위의 정체성 재정립을 생각한 이유는, 영화 생태계가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동안 엄청 바뀌었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영화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부터 고민해 봐야 하고, OTT 콘텐츠 포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많이 진행되진 못했다. 재원 문제에 대해서는 2007년 이후 영발기금을 가지고 영진위를 운영했는데, 2019년까지 매년 기금이 늘었다. 한국영화 산업이 계속 성장했단 얘기다. 그러다 팬데믹이 오면서 긴급지원금을 900억원 정도 써야 했고 2022년에는 이미 고갈이 예상됐다. 재원 다각화 얘기가 (이미)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영진위가) 행동한 적은 없다. 그전에는 영발기금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내년 영발기금 수입은 대략 330억원 미만으로 예상하고, (전부 써도) 예산이 300억원 모자란다. 지난해부터 체육진흥기금 전입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가 (주변에서) 여러 차례 안 좋은 얘기도 들었다. 어쨌든 내년 (체육기금 300억원, 복권기금 54억원) 예산을 지원받는 등 재원 다각화는 실현이 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후년에는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순 없다. 이제 매년 노력을 해야 한다.”
―OTT 시리즈도 영화라고 보는 입장을 가지고 계시다. OTT가 영화 생태계 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보시는데, OTT가 ‘독이 든 성배’라는 시각도 있다.
“여전히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중심으로 저희는 모든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걸 벗어나는 게 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OTT ‘오리지널 영화’, ‘시리즈 영화’를 저희가 담당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왔는데, 내부적으로도 쉽지는 않았다. (위원장은 OTT 시리즈에 꼭 ‘영화’라는 단어를 붙였다.) 영진위 9인 위원회에서도 반대가 상당히 많았다. 그걸 설득하는 데 지난 1년을 거의 보내다시피 했다. 지금은 영화계도 그렇고 많이 누그러져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어쨌든 문화체육관광부 안에서 지금까지 (OTT 관련 업무를) 콘진원이 담당하고 있다. 마음대로 이걸 우리가 하겠다는 건 안 되는 것이고 교통정리가 필요한데, 현재는 교육은 (우리가) 해도 된다는 정도다. 그래서 넷플릭스와 영상 교육 사업을 지금 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으면 간섭도 피할 수 없다는 영화계의 우려가 있다.
“다른 식의 재원을 마련하는 게 필요한데, 어떤 게 가능할지 현재로서는 저도 잘 모르겠다. 하나 정도 가능한 게 있다면 OTT 플랫폼에 과금하는 건데, OTT 콘텐츠라는 게 단순히 오리지널과 시리즈만 있는 게 아니라 예능 프로도 있고 다른 다양한 콘텐츠가 있으니까 (복잡하다). 어쨌든 OTT 플랫폼이 간판으로 내세우는 게 영화, 시리즈 영화들이니까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서 이제는 좀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과금’이라는 표현은 저는 적절치 않고, ‘일조’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영화가 발전해야 또 그쪽에서 좋은 콘텐츠를 더 많이 확보할 수가 있을 테니까, 같이 힘을 합쳐서 협력해야 한다.”
―기금 고갈 여파로 영화제 지원 축소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부산영화제 기간, 영화제 관계자와 두 차례 간담회를 가졌다. 예산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영화제 지원이) 올해 54억원에서 내년 25억원으로 삭감되는 거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영화제가 저희에게 지원받은 걸 가지고 지방자치단체 매칭 예산을 받아서 운영하다 보니 저희 지원금이 줄면 지자체 지원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화제 관계자들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일단 예산이 확정되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지 방법을 찾아야 할 거 같다. 당장 축소된 예산 안에서 최대한 잘할 방법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의 풀뿌리인 독립영화 지원도 줄어들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저도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들었고 만드는 입장에서, 독립영화계 반응에 많이 공감한다. 영진위 위원장으로서 말씀드리자면, 독립영화 지원 예산이 2016년 정도부터 급격히 늘었다. 팬데믹 기간에 상당히 늘었다. 어떻게 보면 원래대로 조정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다. 독립영화가 우리 영화의 뿌리이고 근간이란 건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내년에는 획기적으로 증액하긴 어렵겠지만, 후년도 있고 하니 점차 정부에 설명해야 한다. 만족은 아니더라도 우려가 안 되는 수준까지는 조정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지난 5월 한국영화 재도약 협의체를 구성해 산업계 관계자들과 논의하는 걸로 알고 있다.
“4월 말∼5월 초 구성해 영화 산업 분야에 관계자들이 영화 산업 위기극복 방안을 모색했다. 7월 정도에 극장에서 영화 보기 캠페인, 개봉 촉진 지원을 하는 거로 방안이 압축됐다. 이 두 가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려 애썼는데, 아직 마련이 안 돼 실행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실무자급의 협의체 운영은 불필요해 9월 중순에 대표급으로 ‘한국영화위기극복을 위한 협의회’를 구성했다. 여기서는 ‘홀드백’(극장 개봉작의 일정 기간 기타 매체 상영 금지), 객단가 문제 개선안 도출을 목표로 하는데, 쉽지 않다. 홀드백이 실질적으로 무너졌는데, 어떤 식으로든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객단가는 제작·배급 쪽에서 (수익 배분을 더 해 줘야 한다고) 계속 문제 제기를 하는데, 극장은 말이 되느냐고 한다. 위기 극복을 하려면, 결국은 상생하는 방안밖에 없다. 당연히 정부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
◆박기용 위원장은…
●1961년 강원 인제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영화과,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영화 ‘모텔선인장’, ‘낙타들’ 연출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등 프로듀서 ●2003∼2009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 ●2006∼2009년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집행위원장 ●현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