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체스 ‘국대 1호’ 김민호 “국제 대회 계속 가고파”
김민호(23·대한체스연맹)는 경기 시작 22분 전에 대국장에 들어왔다. 생활보조로 대회에 함께한 어머니 방영순(55)씨가 동행했다. 김민호는 엄마의 도움을 받아 어깨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담소도 나누며 상대를 기다렸다. 경기 시작 9분 전, 방영순씨는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귓가에 응원을 남긴 뒤 떠났고, 1분 후 몽골의 선두이 소놈(34)이 그 앞에 착석했다. 타이머가 째깍거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유일한 장애인 체스 국가대표 김민호가 24일 중국 항저우 치위안 체스홀 9층 대국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체스 남자 스탠더드 PI(Pysical Impairment·지체장애) 3·4회전 1승1패를 기록했다. 타이의 타사나메딘 메타비(43)와 붙은 오전 대국은 이겼지만, 소놈과 오후 대국에서는 졌다. 전날 1·2회전에서도 1승1패를 기록했던 김민호의 현재 승점은 2점(2승2패)이다.
이날 3·4회전 사이 쉬는 시간에 만난 김민호는 “(상대 선수) 한명 한명이 다 괴물이다. 다들 잘하더라”라며 웃었다. 이어 “(저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라고 덧붙이는 그에게 안성민 감독은 “너무 그러지 말라”라며 다독였다. 그가 대회 첫 패배를 맛본 전날 2회전 상대는 지난 2018년 인도네시아 대회 은메달리스트 퍼다우스 막숨(55·인도네시아)이었다. 불리한 흑을 잡는 바람에 더 어려운 경기가 됐다.
승리도 패배도 간단치 않은 살얼음판 대국이 이어지고 있지만 김민호의 얼굴은 밝다. 초등학교 때부터 체스에 빠져 비장애인 단체에서 선수로 활약하던 그는 이번 항저우 대회를 앞두고 대한장애인체육회의 부름을 받아 한국의 첫 장애인 체스 국가대표가 됐다. 그에게도 이번이 첫 국제대회다. 김민호는 “처음 만나는 선수들과 하다 보니 전혀 예측이 안 되는데 그걸 풀어가는 재미가 있다”라고 했다.
이날 3회전 메타비로부터 약 55분 만에 체크메이트(체스에서 항복 선언)를 받아낸 김민호는 “상대 기보를 미리 보면서 준비한 맞춤 전략이 그대로 먹혔다”라고 승리 요인을 짚었다. 부연을 요구하자 그는 “카탈란이라는 오프닝을 약간 꼬아서 함정을 팠다. 상대 포지션을 사이드로 몰아 이겼다”라고 했다. 오프닝은 바둑의 포석과 유사한 체스의 초반 수순으로 김민호가 강점을 지닌 분야다.
이번 대회는 그에게 출전 만으로도 큰 도전이었다. 선천적으로 근육이 점점 퇴화하는 병이 있는 김민호는 체력과 면역력이 약해 그간 고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국제대회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태극마크와 함께 기회가 왔고, 그는 도전을 택했다. 방영순씨는 “기회지만, 저희에겐 위험한 숙제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말리고 싶었는데 민호가 ‘하고 싶다’며 ‘엄마가 도와줘야 할 수 있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제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는 제 가능성의 울타리를 확장하고 싶어 한다. 얼마 전 김민호는 “이번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라, 이번 대회를 시작으로 여건만 된다면 계속 국제 대회를 나가보고 싶다”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방영순씨는 “부모가 돼서 자식의 기를 꺾으면 안 되니까 ‘그래 해보자’라고 대답했다”라며 아들이 걱정스러우면서도 대견한 듯 웃음 지었다.
4회전을 마친 김민호는 스탠더드 7회전까지 경기를 치르고 곧바로 이어지는 라피드(총 7회전)에도 출전한다. 스탠더드는 제한시간 1시간에 한 수씩 둘 때마다 추가시간 15초를 얻는 긴 호흡의 경기이고, 리피드는 20분에 증초 10초짜리 속기전이다. 오는 28일까지 하루 2∼4판씩 소화해야 하는 강행군이다. 안 감독은 “메달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대회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김민호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기는 한데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라며 “좀 더 ‘글로벌’하게 (체스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했다.
항저우/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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