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0m 앞 학교 두고 1.5㎞ 등교…부산형 통학구역 고민을
- 문현초 교문 앞까지 30분 소요
- 아파트 인근 연포초 위치하지만
- 통학구역 배정 탓 원거리 등하교
- 성동초 학생도 같은 위험 노출
- 관련법상 1.5㎞ 이내까진 허용
- 교통사고 노출 위험 간과 지적
- “저학년 근거리 우선 배정 필요”
- 시의회 건의로 교육청 용역 착수
- “16개 구·군 특수 상황 반영해야”
불합리한 통학구역으로 매일 먼 거리를 등하교 해야 하는 초등학생들이 있다.
부산 남구 문현초등학교 1, 2학년인 두 아이는 1.5㎞ 떨어진 아파트에서 등하교한다. 이곳에서 연포초등학교까지의 거리는 857m로 더 가깝다.
취재진이 24일 오전 여기서부터 학교까지 걸어봤다. 보행로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 했다. 보이지 않는 골목에서 차량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신호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그나마 학생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은 1.1㎞를 가야 나왔다. 학교 정문을 반경으로 300m 이내만 스쿨존이 지정된다. 교문 앞에 도착하니 시간은 30분 정도 지났다. 성인 걸음이 이 정도니 저학년인 아이들은 훨씬 더 시간이 걸리는 험난한 등굣길이었다. 학부모가 학원 차나 자가용 차량을 이용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만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같은 동네 성동초등학교에도 원거리 통학생이 있다. 이들은 학교까지 걸어가려면 횡단보도를 여섯 번 건너야 한다.
▮천편일률 통학구역 설정
두 학교가 통학구역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곽에 자리 잡고 있어 생긴 문제다.
학부모는 아이의 먼 통학거리가 불안하다. 박지영 문현초 학부모회장은 학교로부터 1.1㎞ 떨어진 아파트에 산다. 고지대여서 자녀 통학에 걱정이 많다. 그는 “남편이 아침마다 차로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준다”며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도 하교 때 통학버스를 탈 수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차로 태워줄 수 없는 날이면 자녀는 문현교차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등교해야 한다.
성동초에서 1.5㎞ 떨어진 도시철도 2호선 지게골역 인근에 사는 학부모 김모(40대) 씨는 매일 자녀와 등하굣길을 걷는다. 그는 “학교가 가까우면 수월했겠지만 졸업한 첫째 아이부터 지금까지 계속 데려다 줬다”고 부담감을 토로했다.
통학구역 지정과 관련된 사항은 ‘국토계획법’(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을 따른다. ‘초등학교는 학생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통학할 수 있도록 다른 공공시설의 이용 관계를 고려해야 하며, 통학거리는 1.5㎞ 이내로 할 것’이라고 규정돼 있다. 학교까지 거리가 1.5㎞를 넘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없는 셈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고 충분히 걸어 30분 1.5km 이내에서 통학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2011년 학령인구 감소세에 통학구역을 1㎞ 이내에서 1.5㎞로 완화했다. 초등학생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통학거리를 1㎞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통학거리가 멀수록 보행 시간이 늘어 어린이의 사고 발생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시의회 박중묵 부의장은 “학부모는 통학구역이 1.5㎞ 이내지만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과정에서 통학로가 위험한 상황을 우려한다”며 “신체 능력과 판단력이 약한 저학년 학생에게 교차로 여러 개를 건너 통학하라는 건 교통사고에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연구원은 2018년 낸 보고서에서 원거리 통학을 해결하기 위해 통학구역 설정 때는 저학년부터 가까운 학교에 우선 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욱이 통학구역 조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스쿨버스를 도입하라고 제안했다.
문현초는 지난해 1.9㎞ 떨어진 A 아파트 준공에 따라 통학버스를 운영했지만 올해부터 폐지했다. A 아파트가 745m 거리의 연포초로 통학구역이 조정되면서 스쿨버스를 없앤 것이다.
남구의회 박경숙 의원은 “학교 근처 인도가 없거나 좁은 곳을 지나야 해 위험하다. 지금 당장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건 아니다”면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스쿨버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구슬 의원은 “‘아이들이 적게 이용한다, 많이 이용한다’로 운영 여부를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며 “한두 명의 아이라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면 그 비용은 비싸지 않다”고 강조했다. 시교육청은 ▷통학거리가 1.5㎞ 또는 도보 30분 초과할 때 ▷통학로 보행·교통안전 여건이 학생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 등의 기준으로 심의해 학교에 통학버스 도입을 결정한다.
성동초는 통학버스를 도입하기에는 교문 앞 도로가 비좁은 게 걸림돌이다. 이 도로는 양방통행임에도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너비다. 2026년 준공될 예정인 715세대 B 아파트 역시 통학구역 안에 있어 현재까지는 성동초로 배정될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에서 학교까지는 최소 1.4km 거리다.
▮부산 특성 맞는 정책 절실
먼 통학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통학구역을 중심으로 두 학교를 재배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남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아직 계획된 건 없다”며 “지역 재개발이 이뤄지면 거기에 맞춰 학구 조정을 하려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부산지역 곳곳에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생겨나는 문제도 있다. 동래교육지원청의 연제구 레이카운티 아파트 거주 학생 창신초-거제초 분산배치 방침(국제신문 지난 9월 27일 자 9면 등 보도)이 입주예정자의 반발을 샀다.
지원청이 지난 17일 행정예고를 하면서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아파트 1·2단지 학생은 창신초로, 3·4·5단지 학생은 거제초로 배정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레이카운티 3단지 입주예정자인 김모(39) 씨는 행정예고대로면 내년에 초등학교 2학년인 자녀를 1.3km 거리의 거제초로 보내야 한다. 아파트 동에서 창신초까지는 759m 거리다. 김 씨는 “단지별로 무 자르듯 학교를 배정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가까운 학교를 놔두고 통학하기에 먼 학교로 보내야 해 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서 시의회가 지난해 7월 시교육청에 학생배치업무 정책연구용역을 할 것을 건의했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통학구역 조정 필요지역 선정과 통학구역 조정안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지난 7월에 착수한 용역은 내년 5월에 그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박 부의장은 “도시 구조가 변화했음에도 시교육청은 통학구역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16개 구·군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부산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남구는 통학거리가 1.3㎞일지라도 걸어 40~50분 걸리는 데도 있다. 이러한 특수한 사례를 정책에 담아내야 한다. 5개 교육지원청에서 천편일률적으로 통학구역을 똑같이 적용하는 건 현실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영상=김채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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