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1년, 안전사고 더 늘었다…올 추락·끼임사고 1만명

김정범 기자(nowhere@mk.co.kr), 진영화 기자(cinema@mk.co.kr)이지안(cup@mk.co.kr) 2023. 10. 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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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 구조 올 68만건 예상
테러의심 신고는 17배 급증
국가안전시스템은 지지부진
관련법 10여건 국회서 '발목'

◆ 이태원 참사 ◆

지난 12일 40대 남성 A씨가 서울 역삼동에 있는 기계식 주차장 지하 5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전날 환기구 안으로 떨어진 휴대전화를 줍기 위해 덮개를 열었다가 추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환기구 주위에는 경고 문구는 물론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두 달 전에는 지하철에서 가족과 내리던 4세 남자아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로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주변 승객들이 지하철 문이 닫히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았고 가까스로 손을 뻗어 아이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가운데 올해 각종 안전사고가 작년에 비해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미흡한 안전관리와 통제, 안전의식 부재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다. 대형 참사 이후에도 안전사고 양상에 변화가 없는 것이야말로 안전불감증 만성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24일 매일경제가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소방청의 '2023년 사고별 구조 건수 현황'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9월 말까지 전체 사고에 따른 구조 건수는 51만4147건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매달 5만7000건에 달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 같은 추세대로라면 올해 말 사고로 인한 구조 건수는 약 68만건에 이르러 작년 수준(64만건)을 넘어서게 된다.

사고 빈도수가 잦은 화재(7만5602건), 교통(3만9262건), 자살 추정(1만9936건)에 따른 구조 건수는 지난해 수준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추락·끼임·깔림처럼 목숨과 직결된 사고를 겪은 사람도 1만명에 육박했다.

각종 테러에 대한 신고가 급증한 것도 눈길을 끈다.

올해 테러가 의심돼 구조대가 출동한 건수는 전체 1870건으로 지난해(104건)와 비교해 17배 이상 늘어났다. 사회 전반적으로 사고 위험은 커진 반면 이를 해소할 대책이 세워지지 않으면서 '불안감 만연 사회'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심지어 마음 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보행권마저 흔들리고 있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중 34%가 보행자로 집계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과 비교해 2배가량 높은 수치다.

이태원 참사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192명 사망)와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304명 사망) 이후 가장 규모가 큰 인명사고로 꼽힌다. 유족과 피해자는 물론 구조에 참여한 이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실제 구조 활동을 벌인 이들 상당수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오영환 민주당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구조 활동에 참여한 뒤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소방관은 1316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구조기관과 의료기관 간 체계적인 정보 공유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면서 정부는 이태원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종합적인 재난 대응 대책을 논의해왔다. 또한 재난의료과를 신설해 국가의 재난의료 대응체계를 점검하고 재난응급의료 관계 법령과 매뉴얼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지난해 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목된 불법 건축물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단속과 안전관리도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이태원 참사 이후 국가 안전 시스템 개편 종합대책과 관련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인 법률만 10건이 넘는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은 "한발 앞선 대응과 현장에서 작동되는 시스템 구축이 필수인데 정치적인 접근이 이뤄지면서 해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동시에 시민들의 안전의식을 높이고 사고에 대비할 수 있는 대응 매뉴얼을 숙지하도록 해 위급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범 기자 / 진영화 기자 / 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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