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허물고 ‘세트럴파크’…1㎞ 대공원·41층 빌딩 생긴다

손동우 전문기자(aing@mk.co.kr), 이희수 기자(lee.heesoo@mk.co.kr), 연규욱 기자(Qyon@mk.co.kr) 2023. 10. 2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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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표 ‘세운 대개조’ 윤곽
‘연트럴파크’ 4배 녹지 확보해
북악산·종묘·남산까지 연결
삼풍상가·PJ호텔부터 공원화
서울시 “상가군 1개당 1천억”
토지주·영세상인 반발이 변수
서울시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을 17년 만에 다시 추진하겠다고 24일 밝혔다. 건물 노후도가 심각한 세운상가 등 7개 노후상가는 단계적으로 모두 공원이 된다. 사진은 24일 진양상가(가운데 맨앞)에서 종묘까지 이어지는 축으로 녹지공원이 들어설 지역. [사진 = 이승환 기자]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도심 재개발 지역인 마루노우치 일대는 분명 높은 오피스 빌딩 아파트가 빼곡한데도 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공원이 많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봤을 때 보이는 공간이 대부분 푸른 녹지일 정도다.

마루노우치는 개발작업을 시작하면서 용적률을 1000~1700%까지 대폭 높였다. 대신 건폐율은 낮췄다. 건물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넓어진 전면부에는 휴게공간이 자리했다. 마루노우치 미드타운에는 전체 개발 공간의 40~50%를 공원화한 사례도 있다. 토라노몬힐즈나 아자부다이힐즈처럼 이후 도쿄에서 진행 중인 대형 재개발 사업도 모두 비슷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서울시가 25일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안’도 빌딩 숲과 나무숲이 공존하는 ‘녹지생태 도심’이 주요 개념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이나 일본 도쿄처럼 도심에서 일하면서 근처 녹지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여가 활동까지 누리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세운상가부터 중구 진양상가까지 약 1km에 걸쳐 늘어선 7개 노후 상가(세운·청계·대림·삼풍·인현·진양상가와 PJ호텔)를 공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 작업을 위해 삼풍상가와 PJ호텔부터 도시계획시설 상 공원으로 결정했다. 7개 상가의 중앙 지점부터 공원화해 남북으로 퍼져 나가게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공원으로 지정된 토지는 협의 매수 대상이 돼 서울시가 토지 소유주와 가격을 놓고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서울시는 소유주와의 협상을 우선시하지만 협상이 결렬되면 최종적으로는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송현동 부지도 공원 지정후 협상으로 사들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감정평가 기준으로 상가군 하나당 매입가격은 1000억원 내외”라며 “이번 공람을 통해 서울시 공식입장을 밝힌 만큼, 소유주들과도 공식적으로 협의하려 한다”고 말했다.

세운상가를 비롯한 나머지 상가군 역시 존치정비구역(공원용지)으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공청회와 설명회를 통해 나머지 상가들도 단계별로 공원화할 계획이다. 주변 지역과 묶어 통합 재개발도 유도할 방침이다.

실제로 PJ호텔 남측 인현상가는 중구청 일대인 6-4-1구역과 통합 공공재개발을 진행하도록 제시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인현상가(신성 아파트) 주민들은 낡은 아파트를 철거한 후 주변 구역과 통합개발을 희망하는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현상가가 6-4-1구역과 통합 재개발을 추진한다면 속도를 더 낼 수 있도록 최대한 돕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런 과정을 통해 블록별로 공원을 조성하고 주변 건물들의 전면부는 공원과 연결할 계획이다. 지하공간을 통합 개발해 자동차가 지상으로 다니는 것은 최소화하고, 남은 공간은 선형 공원으로 만든다. 이렇게 되면 북악산에서 종묘·남산을 거쳐 한강으로 이어지는 약 14만㎡의 녹지 축이 확보된다. 연트럴파크(경의선 숲길공원·3만 4200㎡)의 무려 4배 크기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만든 공중 보행로는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공식적으로는 공중 보행로 사업과 세운지구 개발 사업간 연결성이 없어 별도로 추진계획을 세워 처리방안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계획의 핵심이 열린 녹지공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인 만큼 공중보행로는 결국 없어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받는다. 세운상가 일대 7개 건물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공중 보행로는 1100억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청계상가~대림상가 구간만 제외하면 통행량이 거의 없어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개발업계는 서울시의 이번 발표에 대해 전반적으로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세운지구는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 비율이 97%에 달하고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이 절반 이상이다. 오 시장이 ‘재임 1기 시절’ 세운지구 통개발 계획을 세웠지만, 박원순 전 시장이 2014년 폐기하고 171개 구역으로 쪼갰고 이 중 사업이 추진되지 않던 147개 지역은 일몰제 적용으로 정비구역 해제를 앞두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세운지구를 보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기존 소유주나 상가 영세 임차인들 반발에 사업 추진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개발업계에 따르면 PJ호텔 소유주 측은 1년 전부터 서울시 등과 매각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 왔다. 호텔 매각에는 긍정적이지만 소유주가 여러 명이라 이들 의견을 모으는 데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풍상가 소유주 역시 서울시와 긴밀히 협의를 해왔다. 그러나 PJ측과는 달리 매각에 덜 적극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세운상가를 비롯한 7개 상가군에서 오랜 시간 터전을 마련한 상가 임차인들의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우려도 문제다. 세운지구에서 가장 비중이 큰 업종이 인쇄업인데, 종사자 수만 약 1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또 소가전 제품, 방송통신장비, 전자부품, 조명 판매 점포들도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서울시는 민간 사업자가 재개발 과정에서 영세 사업자에 대한 임시 상가나 우선 분양권·임차권을 제공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거나 기존 영세 사업자들이 재정착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상가를 공급할 계획을 밝힌 상태다.

실제 세운지구 일대 상가주 등 일부 주민들은 서울시 수용계획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걷고 있다. 세운지구 내 토지주들에 따르면 이들은 오 시장이 세운지구 수용 가능성을 언급한 뒤, 지난주부터 서울시 수용 계획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모으고 있다. 오 시장은 북미 출장 중이던 지난달 20일 세운상가 일대 개발방식을 두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서울시가) 수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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