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 노조 이탈 우려에… 양대노총, 정부 회계공시 요구 수용

정지용 2023. 10. 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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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이어 민주노총도 공시 참여 결정 
‘공시 안 하면, 세액공제 없다’ 압박이 주효 
위헌 소송·대정부 투쟁 등 갈등 불씨는 여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동조합법 시행령과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 예고 발표 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24일 회계 장부 공개를 결정했다. 전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 이어 양대 노총이 정부의 회계공시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노조의 자주성 침해”라며 회계공시를 거부해왔지만, 올해 말 조합원 세액공제 박탈이 가시화되자 입장을 선회했다.

이로써 정부는 노동개혁의 핵심 부문 가운데 하나였던 ‘노조 투명성 강화’ 측면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근로시간 제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다른 노동개혁 과제도 탄력을 받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정부가 시행령 개정이라는 우회 방식으로 노조비 세액공제를 무기화하면서 노정 관계가 보다 악화하고 향후 법적 시비도 남겼다는 지적도 있다.


노조원 불이익 우려에 "정부 방침 수용"

민주노총은 이날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열고 정부의 회계공시 요구에 응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은 회의 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노조를 믿고 투쟁해온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해 회계공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노조 회계공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달 1일부터 다음 달 말까지 2022년도 회계 결산결과를 공시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법 시행령과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1,000명 이상 노조나 그 상급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연말정산 때 15%의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박탈하기로 했다. 특히 상급단체가 회계공시를 하지 않으면 산하노조는 조합원 규모와 관계없이 세액공제 대상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상급단체)이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현대자동차 노조(산하 단체)는 회계공시를 하더라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식이다.

민주노총의 결정에 정부는 환영의 입장을 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노사법치를 기반으로 노사관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동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양대 노총의 참여로 노조의 투명한 회계공시가 확산되면 노조의 민주성과 자주성이 한층 높아지고 우리 사회 전반에 투명성이 제고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노조 회계공시가 글로벌 스탠더드이자 노조 회계 부정을 막을 수 있는 방책임을 강조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말 "노조 부패 방지와 투명성 강화가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노동자 복리 증진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은 법령으로 노조가 정부에 연차 회계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노조 내부 규약에 따라 조합원에게만 회계 내용을 공개하고 있어 주요국 간 제도 차이는 있다.


내부는 부글부글… 헌법소원·실력행사 예고

한국노총에 이어 민주노총도 회계공시 불참 방침을 철회한 것은 공시 거부가 노조원의 경제적 불이익으로 직결되는 상황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양대 노총에 가입한 노조원은 240만 명에 달한다. 양대 노총은 특히 복수노조 사업장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런 불이익이 노조 탈퇴나 다른 상급노조 가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노조 내부는 격앙된 분위기다. 민주노총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의도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노조 혐오를 부추기고 노조 탄압을 자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검찰과 대통령실 등 권력기관의 특별활동비를 공개하라는 법원 결정은 따르지 않으며 노조 회계 투명성을 강요하는 것은 전형적 내로남불”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양대 노총은 법적 대응과 실력행사도 예고했다. 한국노총은 노조 세액공제 여부를 상급단체 회계 공시와 결부한 개정 시행령은 문제가 있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하반기로 예상되는 노동 개악을 저지하겠다”며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노동계는 정부의 노조 운영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노조법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노동계, 대화 복원해야"

양대 노총이 회계공시를 둘러싼 노정 대립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그간 지지부진했던 정부 노동개혁 정책이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노동개혁의 3개 축 가운데 '노사 법치주의 확립'이 이번 회계공시제 관철로 어느 정도 성과를 낸 상황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노동규범 현대화'도 가시적 진전이 예정돼 있다. 노동규범 현대화의 핵심으로 '주 69시간제' 논란에 주춤했던 근로시간 제도 개편의 경우, 고용부가 올해 6~9월 시행한 국민 6,030명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달 제도 보완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중구조 개선을 통한 노동시장 불공정 해소는 올해 2월 발족한 상생임금위원회가 다음 달 권고문을 발표한다.

다만 양대 노총의 입장 선회를 계기로 정부도 노동계와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노조에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던 정부가 ‘노조 손보기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정부가 노조의 전향적 모습에 상응하는 대화에 나서야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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