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도전 받는 한국경제, 지속가능 정책조합 모색하라

2023. 10. 2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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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Country Garden)이 파산 위기를 맞고, 헝다그룹이 미국에서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중국경제가 부진해지면 한국의 수출, 무역수지, 성장률 모두 영향을 받는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서는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더 오래 더 높이'(higher for longer)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며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15년 만에 4.25%를 돌파했다. 대외 조건의 개선에 힘입어 한국의 성장세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는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부터 확산됐었던 금융완화와 수출반등에 대한 장밋빛 기대는 이미 한국 부동산 시장에 반영돼 수도권 집값 신고가 사례들이 속출했고, 주택담보대출은 50년 만기 상품이 인기를 얻으며 30-40대를 중심으로 급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환경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작동해왔던 가계부채와 부동산, 수출 중심 회복이라는 전통적 공식을 믿고 있다. 이 공식이 이번에도 잘 작동할 것인가?

◆가계부채에 의존해온 기존의 성장방식, 잘 작동할 것인가?

200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은, 내수는 부동산과 가계부채, 수출은 중국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한국의 부동산 부문은 가계부채를 기반으로 성장했고, 수출은 중국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가계부채와 중국이라는 두 키워드는 흥미롭게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의 내수 역시 부동산과 가계부채에 크게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한국의 가계부채 뿐 아니라 중국의 가계부채에도 일정 부분 의지해서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시카고대학교의 수피(Amir Sufi) 교수는 "주택, 가계부채, 그리고 경기변동: 중국과 한국에 대한 응용" 이라는 논문에서 한국과 중국의 가계부채 성장세가 세계사적으로 이례적일 정도로 빠름을 지적하고 있다. 2005년 이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보면 전 세계 평균은 60%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인 반면, 중국은 10% 수준에서 60% 수준으로 급등했고, 한국은 65% 수준에서 105%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러한 증가 속도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의 몇몇 나라들 사례를 빼고는 가장 빠르다. 만약 사금융인 전세자금까지 부채로 넣으면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가계의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도 13%를 넘어 세계 평균 8%에 비해 현저히 높다.

수피 교수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언젠가 대출 붐이 끝났을 때 경제성장률을 2%p 가까이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은 경상수지가 흑자여서 이 상황이 거시경제 전반의 심각한 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은 작지만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큰 만큼 소비는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중국의 부채주도 수요 창출이 한계에 가까워질수록 한국의 성장세는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이고, 또 이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부동산의 금융화를 통한 성장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다수 선진국들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하향 안정화하면서 가계부문의 디레버리징, 즉 부채축소를 도모했다. 초저금리 기간에도 금융규제를 강화해 가계의 재무 건전성을 개선했다. 동시에 금융위기로 인한 후유증을 수습하는 데에는 정부 재정을 동원했다. 경제 각 부문의 부채비율 추이를 보면 2008년 이후에는 주요 선진국에서 가계부채 비율이 안정되는 반면 정부부채 비율이 상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이 흐름은 강화된다. 그러나 한국은 가계부채 비율이 정부부채 비율보다 높은 상태에서도 가계부채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예외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한국(그리고 중국)에서는 특이하게도 높은 가계부채 비율에도 불구하고 가계부문의 의미 있는 디레버리징이 관찰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이 다른 나라와는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 이전의 성장방식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금융위기 이전의 성장방식은 한 마디로 '금융화'로 요약된다. 금융화(financialization)란 부동산, 재화, 서비스, 리스크 등 많은 것들이 금융상품화돼 거래되는 현상으로서 1980년대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까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됐다. 금융화는 부채비율과 금융서비스 비중의 증가 등으로 확인된다. 금융화는 금융시장, 금융기관, 금융 엘리트들의 경제정책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등을 겪으며 금융화의 한계를 인식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재정을 과감히 확대했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인플레이션, 미-중 갈등의 격변 속에서 산업정책 경쟁을 펼치며 재정의 역할을 가능한 한 충분히 활용하는 추세다. 반면에 한국은 2014년에 '빚내서 집사라'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동시에 저금리로 돈을 풀어 부동산 중심의 금융화 기조를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들과는 달리 과거의 성장방식을 극복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2015년 이후 지속된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가계부채의 급증이다. 특히 사금융인 전세자금에 대한 공적 보증은 은행들로 하여금 리스크 없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하는 조치로서 부동산을 통한 한국판 양적완화로 평가된다. 2013년에 이 제도가 시행되고 몇 년 사이에 100조 원 이상이 부동산시장에 레버리지 투자자금으로 투입되었으니 그 결과는 불문가지다.

한국이 '부동산 중심의 금융화' 정책기조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은, 부동산 가격 하락이 가져올지 모르는 부채 디플레이션과 장기침체에 대한 공포, 또 거시경제정책에서 재정의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고 믿는 재정보수주의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근저에는 깊어진 불평등과 고령화가 있다.

사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융화가 확산됐던 것은 소득 불평등의 심화로 고소득층에 돈이 몰리면서 경제에 저축자금이 늘어나고 저축-투자의 불균형이 심화된 것과 관계가 깊다. 뭉친 돈이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 금융화를 통해 차입자를 발굴해낸다. 이와 관련해서 프린스턴대의 미안(Mian), 하버드대의 스트라우브(Straub), 시카고대의 수피 교수는 미국의 경우 부유층의 과잉저축(saving glut)이 여타 계층의 가계부채로 연결됐고, 이 과정에서 금리가 추세적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한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 과잉저축이 정부의 재정적자를 충당하는 데에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고령화에 따른 노후대비 저축의 영향은 불평등의 효과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작았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상위 10%의 소득 비중이 미국과 유사할 정도로 소득 불평등도가 높은 데다가 고령화는 미국보다 훨씬 심각해 저축-투자의 불균형이 더욱 극심해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왔다. 이 과잉저축(또는 수요부족) 문제를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부동산을 매개로 가계부채를 늘리는 것, 즉 빚내서 집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기적 수요확대의 대가는 청년층의 과도한 빚 부담과 저출산, 그리고 지대추구(rent seeking)형 경제로의 퇴행이다. 소득 대비 부(wealth)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한국의 부는 상당 부분 높은 땅값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만약 집값 올리는 데 쓰였던 이 넘치는 자금들이 기술혁신, 생산적 투자, 그리고 정부의 재정확충에 쓰여 젊은이들의 빚 부담이 줄었다면 성장잠재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졌을 것이고 출산율도 세계 최저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속적 성장의 첫걸음, 질서 있는 가계부채 디레버리징

한국은 지금까지 저축-투자 불균형을 상당 부분 부동산 투자수요 창출과 가계부채를 통해 해결해왔지만 이제 경제환경 변화로 이것도 더 이상 쉽지 않고 그나마 역효과가 더 커지는 단계에 도달했다. IMF 등의 연구에 따르면 가계부채가 GDP의 80%를 넘으면 가계부채가 증가할수록 성장률이 하락한다고 한다. 소득에 비해 과도한 가계부채는 원리금 상환 부담 때문에 오히려 소비를 줄인다.

따라서 가계부채비율을 GDP 대비 100% 아래로, 성장에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디레버리징을 추진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가계소득 증가율에 비해 가계부채 증가율이 낮아지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급격한 디레버리징이 가져올 충격을 막기 위해 상황에 따라 부채를 유연하게 관리하더라도 소득과 부채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즉,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DSR)을 40% 이내로 관리하는 원칙만큼은 꼭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1월 정부가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은 DSR을 적용하지 않는 데다가 만기가 40년, 50년으로 확대돼 유연한 부채 관리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금융기관들이 출시하고 있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도 그렇다. 미국에서도 올해 5월에 4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내놓았지만, 그것은 기존 30년 만기 대출의 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진 소비자들에게 대출 조정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만기를 연장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은행들이 4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신규 취급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만기가 30년을 초과하는 대출은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의 적격 대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위험 대출로 분류되고 공적 보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인기를 얻는 것은 부동산 중심 금융화가 부활하는 위험한 신호라고 볼 수 있다. 특례보금자리론으로 수십 조 원이 풀리고 50년 만기 대출이 활성화되면서 부동산시장이 들썩이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자칫 디레버리징이 아니라 리레버리징을 불러와 가계부채비율이 더욱 높아지고 거시경제 리스크가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음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가계부채 디레버리징과 바람직한 정책조합

질서 있는 가계부채 디레버리징은 무리하게 대출 상환을 강제하기보다는 DSR을 제대로 지키는 가운데 가계의 소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자금흐름을 돌림으로써 가능하다. 이는 대내외 여건 변화로 한계에 도달한 기존의 성장모형을 지속가능한 성장모형으로 전환하는 작업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이 전환을 위해서는 섬세한 정책조합이 필요하다. 우선 금융정책은 건전성 규제와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정책자금은 부동산시장 부양보다는 기술혁신이나 창업, 신산업 인프라 등 생산적인 곳을 타겟팅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부동산으로 흐르던 자금을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PF 등의 부실이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뱅크 사례처럼 당국의 신속한 처리 및 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단 하나도 망할 수 없다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일이 커졌을 때 신뢰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미국처럼 예금자는 보호하되 주주는 책임을 지도록 하고, 사태의 확산을 막는 식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화정책은, 금리는 인플레이션 기대를 통제하고 금융안정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운용하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서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

디레버리징은 상당 기간 부채 후유증(debt overhang)을 낳을 수 있다. 흑자를 내는 경제주체들까지 빚을 갚느라 소비와 투자를 줄이게 되면 거시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을 충분히 활용해 거시경제의 위축을 막을 필요가 있다. 다만 공급망 단절 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가능성에 대비해 인플레이션 기대와 국채금리의 과도한 상승은 피할 수 있도록 재정 활용도 기술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 사례에서처럼 경제의 공급능력과 산업정책, 연구개발과 기술경쟁력, 경제주체들의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 재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경제 부진의 여파로 수출이 위축되는 상황을 질적 수출경쟁력으로 타개해 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본 기고의 원문 출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201호'임을 밝히며, 원문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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