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여의도 용산 세종 싹 다 갈아엎어라"

이규화 2023. 10. 2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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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논설실장

국민 짜증 게이지가 오르고 있다. 우유가 남아돌아 분유로 만들어 저장해야 하는데도 가격은 계속 올라 우유 1리터 팩이 3000원이 넘었다. 석달 전 250원(100g) 하던 당근이 500원 한다. 빵집에선 2000원 이하는 종적을 감췄다. 그런 마당에 가족이 공무신용카드로 100 차례 가깝게 소고기와 초밥, 샌드위치 사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게 뭐 대수롭냐는 식이다. 그건 도둑질이다. 빵 한 조각 사먹는데도 주저하는 서민들 입장에선 기가 막힌다.

용산으로 눈을 돌려도 한숨이 나온다. 의협심 강한 윤석열 검사가 대권을 쥐면 법치와 공정을 확실히 세울 줄 알았다. 법치는 불공정 거래를 시정하고 도둑질 하는 범죄자를 감방에 처넣는 일이다. 공정은 인사로 표현된다. 윤 대통령의 검찰은 이재명 하나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총장이 국감에 나와 수사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인사는 검사 아니면 측근, 한물 간 연고 인물들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니 국민 염증 주머니는 팽팽해지고 있다.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17%포인트 차이는 국민 짜증의 일단이었을 뿐이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패해 또 여소야대 국회가 되면 윤석열 정부는 볼 장 다 본다는 걸 5150만 국민이 다 안다. 거의 2년을 미뤄놓은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은 사라진다. 야당이 개혁에 협력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내년 총선이 대한민국 운명을 가를 것이라는 말은 괜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 여론조사에선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응답이 9%포인트 높았다. 사회가 미친 건지, 여론조사가 고장난 건지 모르겠다.

국민의힘이 예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해서 여소야대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게 아니다. 개혁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망한다. 고물가 고유가 고환율 3고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 경제는 민간 부문이 훨씬 커 기업이 잘하면 먹고 살 순 있다. 그러나 노동이 기업의 목줄을 쥐고 있으니 개혁하지 않으면 더 잘 살긴 힘들다. 아니 후퇴할 것이다. 연금도 개혁 안 하면 역시 망한다.

국가 존립의 기초들이 무너지고 있거나 무너질 조짐이다. 생산요소인 인구의 감소, 기술혁신과 노동의 가치를 비웃는 지대추구 노골화,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의 저질화와 갈등 격화로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다. 국민 분노가 개혁의 연료로 변할 때 미래가 있다. 우선 국민의 화를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예를 들어 국민 피부에 와 닿는 건 물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소비자물가, 그중에서도 가공식품물가는 7.6% 올랐다. 장·차관들은 80·90년대 식으로 업자들 불러놓고 물가안정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한다. 업자들은 인건비와 원자재값, 물류비 비용 상승으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뻔한 말을 되풀이한다. 일정부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국제곡물가격지수는 작년 2분기 대비 올해 2분기 15%가량 하락했다. 국제유가(서부텍사스산원유 기준) 평균가는 작년 3월부터 10월까지 모두 배럴당 90달러를 넘었고 올해는 10월 이전까지 70달러대였다. 작년보다 곡물가와 유가가 모두 하락했는데, 식품값은 크게 올랐다. 그에 따라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린 식품기업들이 즐비하다.

식품원료의 해외의존이 높은 국내는 두서너 플레이어가 과점하는 악성 경쟁회피 시장이다. 업자들을 불러서 사정할 게 아니라, 불공정과 거래병목 현상이 없는지 공정위, 소비자원 등이 철저히 조사하고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다. 인플레이션의 적은 디플레이션이 아니고 고비용, 불공정 담합이라는 말이 있다.

한덕수 총리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위기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고통스럽다며 "고물가·고금리와 전쟁을 한다는 각오로 임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세종시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추경호 경제팀이 모든 정책에서 상상력을 짜내야 한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 "여의도 용산 세종시를 싹 다 갈아엎어야 한다"는 기사 댓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갈아엎이기 전에 변하라.

이규화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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