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기로에 선 尹대통령 …'최대연합 정치'로 총선 승부수를

2023. 10. 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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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이반, 윤석열 대통령을 강타하다

거대한 민심 이반이 윤석열 정부를 덮쳤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패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참패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가장 중요한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인의 장막에 갇힌 윤 대통령은 계속 '정치적 죽음'의 길을 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자기 책임은 뺀 채 마름에 불과한 정부·여당 인사들의 반성과 변화를 재촉하는 것이 생생한 증거다.

민심 이탈이 이어지면 국민의힘은 22대 총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하게 될 것이다. 차기 총선에서 야권이 개헌선 가까이 대승한다면 악몽의 시나리오가 시작된다. 한 국가 안에서 대립하는 두 정치 권력이 국가 통치권을 두고 극렬한 싸움을 벌이는 이중 권력이 현실이 된다. 거야(巨野)의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 정파의 모든 정책을 거부하는 파당정치)로 윤석열 정부는 식물 정권으로 전락한다. 공룡 야당은 대통령 탄핵과 개헌까지 시도할 수 있다. 2024년 총선 참패는 2027년 대선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결국 총선에서 대패하면 윤 대통령의 미래는 암흑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2024년 4월 총선은 '정치인 윤석열'의 명운과 함께 표류하는 국정을 정상화할 마지막 기회다. 윤 대통령의 행정 권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법 권력이 무한 대치하는 분점정부(分占政府·Divided Government)의 대혼란을 입법 권력 교체로 풀어내는 순간이다. 극단적 이중 권력은 내란을 부르지만 민주정치에선 투표 결과로 드러나는 민심이 이중 권력을 해소한다. 총선 참패로 보수 우파가 괴멸하고 좌파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미래는 국가적 재앙이다. 차기 총선은 나라의 미래를 가를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인 것이다.

10월 20일자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는 분노한 민심의 현주소다. 영남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잘하고 있다'보다 두 배 높다. 서울과 수도권에선 부정 평가와 긍정 평가 차이가 더 크다(서울 66% 대 25%, 인천·경기 60% 대 32%). 서울과 수도권은 전체 지역구 의석의 절반을 차지한 총선 승부처다.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층과 남녀 모든 성별에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의 배가 넘는다. 중도층에선 격차가 세 배에 가깝다(부정 평가 66% 대 긍정 평가 24%). 윤 대통령은 중도층, 서울과 수도권, 청년 세대 지지를 모두 잃고 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민심 이반이다.

'최대 연합의 정치'를 앞장서 해체하다

'정치인 윤석열'의 혜성과 같은 등장을 가능케 한 궁극의 힘은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갈구한 국민의 집합 열망이었다. 보수 우파는 지난 대선에서 이런 국민적 갈망을 최대 연합의 정치로 견인해 극적 승리를 거두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을 대선후보로 옹립할 정도로 필사적이었고 당시 윤석열 후보는 사즉생의 결기, 민심을 읽는 안목, 당내 정적들을 끌어안는 포용력이 있었다. 문재인 정권의 좌파 포퓰리즘에 비판적인 보수와 청년 세대가 앞장서고 중도층과 합리적 진보가 동참한 최대 정치 연합의 승리였다. 대통령의 비전, 정부·여당의 국정 성과, 국민적 지지와 동의로만 지탱될 수 있는 느슨한 우파·중도 정치 동맹이었다. '윤석열 정치'가 최대 연합의 정치에 충실해야 했던 근본적 이유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반대로 갔다. 자신을 추종하지 않으면 '국정의 적'으로 공격하는 뺄셈정치로 일관했다. 기적적인 대통령 당선을 자신의 리더십 덕분으로 오인한 윤 대통령의 정치적 나르시시즘이 오만을 키웠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절대 충성을 요구하면서 공정과 상식을 배반하는 인사 정책을 고집했다. 간신배들이 대통령 주위에 만리장성 같은 인의 장막을 친 것은 전적으로 윤 대통령 책임이다.

최대 정치 연합은 완전히 붕괴했다. 뉴라이트 같은 강성 보수와 극우 올드라이트, 노인층과 영남만 남았다. 윤 대통령의 오만과 무능, 그리고 '홍범도 장군 사태'가 폭로한 과도한 '우편향'이 민심 이반의 주범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머물면 정부 정책은 성과를 내기 어렵고 20%대로 추락하면 식물 정권이 된다. 윤석열 정부는 생사의 분기점에 섰다. 여론이 지금처럼 차가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증유의 민생고와 경제위기가 서민과 중산층을 덮쳤다. 상기 갤럽 조사에서도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경제·민생·물가'(17%)다. '독단적·일방적'(10%), '소통 미흡'(9%)의 부정 평가 요인을 훌쩍 넘어선다. 정치의 요체가 언제나 민생 경제에 달렸음을 무시한 윤석열 정부의 업보다.

윤 대통령이 외치에 헌신해 큰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외교 패러다임 전환 효과는 국민 피부에 직접 다가오진 않는다. 반면 제왕적 대통령이 불쑥 던지는 대학 입시 개편, 이념 논쟁, 의사 정원 확대 등은 우리네 일상을 뒤흔든다. 국민이 보기에 윤 대통령의 오만과 무능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깜짝 의제들이다.

'민주와 공화' 없는 자유

윤 대통령은 취임 이래 일관되게 '자유'를 화두 삼아 '공산 전체주의'를 비판해왔다. 야당과 좌파 시민사회를 공산 전체주의의 동조자로 의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유주의의 역사는 윤 대통령 버전의 자유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식 자유 이념의 우편향은 윤석열 정부의 사상적 빈곤과 미래 비전 부재를 낳는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의 좌편향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는 명분으로 '막대를 반대 방향으로 너무 기울였다.'

원래 자유주의는 중세 봉건 체제를 타파하려는 서양 근대 시민 계층의 저항 이념이었다. 자유주의가 신흥 시민 계급의 시민권과 재산권을 핵심 원리로 삼은 이유다. 법치주의·입헌주의·삼권분립 같은 제도도 시민권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도입한 장치였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재산을 축적한 시민 계층이 기득권 세력이 되면서 갈수록 빈부 격차가 커진다. 자유주의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평등 사이에 거대한 갈등이 생겨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각기 양보해 자유와 평등을 절충한 타협의 산물이다. 자유를 존중하되 빈부 양극화를 줄여 평등을 확보하려 한 시도다. 자유민주주의가 곧 개혁적 자유주의인 이유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자유'는 개혁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윤 대통령이 즐겨 인용하는 하이에크(F. Hayek·1899~1992)나 프리드먼(M. Friedman·1912~2006)의 신자유주의는 시장 효용성을 앞세워 '가진 자의 자유'를 강조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통합해 자유민주주의로 승화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다. 가진 자의 자유를 중시하는 윤 대통령의 자유관도 경제 발전과 복지 확장을 통합하려는 한국의 시대정신과 충돌한다.

군사 독재 시절 한국의 기득권 우파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악용한 바 있다.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는 꺼풀로 포장했다. 냉전반공주의는 국가 안보를 빙자해 언론·결사·집회의 자유, 법치주의, 입헌주의적 견제와 균형 같은 자유주의 원칙을 침해했다. 천민자본주의는 경제적 효율성을 앞세워 공정한 시장경제를 왜곡했다. 자유라는 보편 가치가 돈과 힘을 가진 자들의 자유로 축소되고 말았다.

한국 좌파는 우파의 우편향을 빌미 삼아 좌편향으로 치달았다. 시민권과 재산권이라는 자유주의 가치를 적대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허물었다. 일대 재앙을 낳은 문재인 정부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가 그 결과다. 반면에 윤 대통령의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non-democratic liberalism)엔 민주와 공화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

자유를 화두로 삼은 윤석열 정부에서 권위주의적 통치가 되살아나고 비판의 자유가 후퇴하는 현실이 그 증거다.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민주와 공화를 소홀히 한 윤석열식 자유관의 사상적 빈곤이 오늘의 위기를 불렀다. 한국 우파가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에 집착하는 한 세계 최저 출산율과 세계 최악의 자살률 같은 한국 사회의 자기 붕괴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을 성숙한 공화정으로 도약하게 하는 두 날개다. 윤 대통령은 낡은 자유주의를 넘어 민주와 공화를 포용하는 개혁적 자유주의로 상승해 가야 한다. 가진 자의 자유에서 함께 사는 자유로 도약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살고 나라가 사는 길

윤 대통령에게 가장 시급한 건 최대 연합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다. 합리적 보수를 포용하고 중도층을 끌어올 중도 실용 정책으로 국정을 전환해야 한다. 수구 자유주의를 폐기하고 개혁 자유주의의 미래 비전을 증명해야 한다. 능력주의 인사로 젊고 유능한 전문가를 발굴해야 한다. 장관들에게 합당한 권한을 줘 책임지고 일할 수 있게 하고 여당이 자율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주어야 한다. 윤 대통령 자신부터 싹 바뀌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결단하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비책이 있다. 사람을 바꿈으로써 대통령이 변화했다는 진정성을 증명하는 방안이다. 최선책은 윤 대통령이 정적(政敵)으로 배척하는 유승민 전 의원 같은 개혁적 자유주의자를 삼고초려해 전권을 주어 총선 전선(戰線)을 일신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쓰디쓴 약'인 이준석 전 대표도 포용해야 한다. 이것이 윤 대통령이 살고 나라가 사는 정공법이다. 차선책은 공공선을 실천하는 드문 정치인인 윤희숙 전 의원이나 장기표 대표 같은 인물로 당정을 혁파하는 방안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훌륭한 의료인이지만 당 쇄신에는 한계가 있다. 공천권을 비롯한 당 운영을 지금처럼 대통령이 좌우한다면 백약이 무효다.

정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종합예술이다. 정치인 윤석열은 대선 정치의 아수라를 뚫고 한국 정치사 최초로 정치 투신 1년 만에 대권을 쟁취한 승부사다. 필패가 예정된 총선판을 흔들어야 자신도 살고 국가도 산다. 윤 대통령은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듯 정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비정한 공간이 정치의 세계다. 그게 바로 정치인 윤석열의 승부수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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