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진양상가 헐고 '세트럴파크'… 박원순 공중길 철거 수순
'연트럴파크' 4배 녹지 확보해
북악산·종묘·남산까지 연결
삼풍상가·PJ호텔부터 공원화
서울시 "상가군 1개당 1천억"
토지주·영세상인 반발이 변수
일본 도쿄의 대표적인 도심 재개발 지역인 마루노우치와 오테마치 일대는 분명 높은 오피스 빌딩과 아파트가 빼곡한데도 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녹지가 많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봤을 때 보이는 게 대부분 초록빛 일색이다.
마루노우치는 개발 작업을 시작하면서 용적률을 1000~1700%로 대폭 높이는 대신 건폐율은 낮췄다. 건물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넓어진 전면부에는 휴게 공간이 자리했다. 도쿄의 또다른 도심 재개발 지역인 히비야 인근에는 전체 개발 공간의 40~50%를 공원화한 사례도 있다. 도라노몬힐스나 아자부다이힐스처럼 이후 도쿄에서 진행 중인 대형 재개발 사업도 모두 비슷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서울시가 24일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안'도 빌딩 숲과 나무숲이 공존하는 '녹지생태 도심'이 주요 개념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이나 일본 도쿄처럼 도심에서 일하면서 근처 녹지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여가 활동까지 누리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세운상가부터 중구 진양상가까지 약 1㎞에 걸쳐 늘어선 7개 노후 상가(세운·청계·대림·삼풍·인현·진양상가와 PJ호텔)를 공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 작업을 위해 삼풍상가와 PJ호텔부터 도시계획시설상 공원으로 결정했다. 7개 상가 중앙 지점부터 공원화해 남북으로 퍼져 나가게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공원으로 지정된 토지는 협의 매수 대상이 돼 서울시가 토지 소유주와 가격을 놓고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서울시는 소유주와의 협상을 우선시하지만 협상이 결렬되면 최종적으로는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송현동 용지도 공원 지정 후 협상으로 사들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감정평가 기준으로 상가군 하나당 매입 가격은 1000억원 내외"라며 "이번 공람을 통해 서울시 공식 입장을 밝힌 만큼 소유주들과도 공식적으로 협의하려 한다"고 말했다.
세운상가를 비롯한 나머지 상가군 역시 존치정비구역(공원용지)으로 지정된다. 서울시는 공청회와 설명회를 통해 나머지 상가들도 단계별로 공원화할 계획이다. 주변 지역과 묶어 통합 재개발도 유도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블록별로 공원을 조성하고 주변 건물들 전면부는 공원과 연결할 계획이다. 지하공간을 통합 개발해 자동차가 지상으로 다니는 것을 최소화하고, 남은 공간은 선형 공원으로 만든다. 이렇게 되면 북악산에서 종묘·남산을 거쳐 한강으로 이어지는 약 14만㎡ 녹지 축이 확보된다. 연트럴파크(경의선숲길공원·3만4200㎡)의 무려 4배 크기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만든 공중보행로는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공식적으로는 공중보행로 사업과 세운지구 개발 사업 간 연결성이 없어 별도로 추진계획을 세워 처리 방안을 고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계획의 핵심이 열린 녹지공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인 만큼 공중보행로는 결국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는다. 세운상가 일대 7개 건물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공중보행로는 1100억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청계상가~대림상가 구간만 제외하면 통행량이 거의 없어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개발업계는 이번 서울시 발표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세운지구는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 비율이 97%에 달하고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이 절반 이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임 1기 시절' 세운지구 통개발 계획을 세웠지만, 박 전 시장이 2014년 폐기한 뒤 171개 구역으로 쪼갰고 이 중 사업이 추진되지 않던 147개 지역은 일몰제 적용으로 정비구역 해제를 앞두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세운지구를 보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기존 소유주나 상가 영세 임차인들 반발로 사업 추진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개발업계에 따르면 PJ호텔 소유주 측은 1년 전부터 서울시 등과 매각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 왔다. 매각에는 긍정적이지만 소유주가 여러 명이라 이들 의견을 모으는 데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풍상가 소유주 역시 서울시와 협의해 왔다. 그러나 PJ 측과 달리 매각에 덜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세운상가를 비롯한 7개 상가군에서 오랜 시간 터전을 마련한 상가 임차인들의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우려도 문제다. 세운지구에서 가장 비중이 큰 업종이 인쇄업인데, 종사자 수만 1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또 소가전 제품, 방송통신장비, 전자부품, 조명 판매 점포들도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서울시는 민간 사업자가 재개발 과정에서 영세 사업자에 대한 임시 상가나 우선 분양권·임차권을 제공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거나 기존 영세 사업자들이 재정착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상가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실제 세운지구 일대 상가주 등 일부 주민은 서울시 수용계획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걷고 있다. 세운지구 내 토지주들에 따르면 이들은 오 시장이 세운지구 수용 가능성을 언급한 뒤 지난주부터 서울시 수용 계획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모으고 있다.
오 시장은 북미 출장 중이던 지난달 20일 세운상가 일대 개발 방식을 두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서울시가) 수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손동우 부동산전문기자 / 이희수 기자 / 연규욱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휴가 다녀왔더니 날벼락…우리 집이 철거, ‘주소 착각’ 업체 실수 - 매일경제
- “집값이 기막혀”…짐 싸서 경기도 가는 서울 사람들 - 매일경제
- ‘누구나 타는’ 잠실~인천공항 첫 헬기 서비스…20분 걸리는데 요금은? - 매일경제
- “1조8000억원짜리 오줌”…칭다오 맥주공장 소변男, 촬영범 체포 - 매일경제
- 노 저어 태평양 망망대해 가로지르던 호주 남성의 최후 - 매일경제
- ‘땅값’ 제일 많이 뛴 곳은 어디?…강남도 성남도 아니라는데 - 매일경제
- “푸틴, 침실서 심정지 발견돼 심폐소생술” 건강이상설 확산 - 매일경제
- 개미들 한달 새 1000억 투자한 아이온큐 ··· 공동창업자 퇴사 소식에 주가 폭락 - 매일경제
- "그 학교 출신은 좀 …" 로스쿨 입시로 번진 연고전 - 매일경제
- ‘쏘니‘ 손흥민 1골 1도움 대활약! 토트넘, 풀럼에 카라바오컵 패배 설욕…9G 무패-1위 탈환 [EP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