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민생이 진심이면, 실패한 ‘감주성’부터 폐기를

곽정수 2023. 10. 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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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윤석열 정부 예산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곽정수ㅣ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와이프와 아이만 빼고 다 바뀌어야 한다.”

국민의힘의 쇄신을 이끌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23일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인용했다.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명암이 교차한다. 하지만 기존의 양 위주 경영에서 탈피해 질 중심 경영으로 혁신을 주도한 것이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이는 거의 없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운영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쇄신 요구가 쏟아진다. 무엇보다 퇴행적 이념 공세와 검찰독재를 앞세운 독선과 극단 정치의 정상화가 시급한데, 또 하나 더는 미룰 수 없는 게 있다. 국가경제와 민생을 모두 파탄으로 몰고 가는 실패한 경제정책의 정상화다. 윤 정부는 출범 이후 ‘부자감세 주도 성장’(감주성) 정책을 고수해왔다. 부동산 부자와 대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면, 성장률이 오르고 세수도 늘어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감주성’ 성적은 낙제점에 가깝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4%까지 곤두박질쳤다. 이런 추세면 윤 정부 첫 2년간 평균 성장률은 2%에 그쳐, 문재인 정부 때의 3.03%에도 미달한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인 민생은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직격탄을 맞아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보선 이후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그 실상을 잘 보여준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가 30% 이하로 급락한 이유로 경제·민생·물가가 1순위로 꼽힌다.

내년 경제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다시 낮췄다. 급기야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처음 2%를 밑돌고, 내년에는 1.7%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석이 나와 충격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에 따른 그늘이 임기 5년에 그치지 않고, 미래 후손들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방향이 틀린 ‘감주성’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고되어 있었다. 민생과 경제가 어려우면 재정을 풀어 경기를 진작하고, 취약계층 지원을 늘리는 게 경제정책의 상식이다. 하지만 윤 정부는 부동산 부자와 대기업의 세금을 깎아주어 세수 감소를 자초했다. 그러면서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며 취약계층 지원을 줄이는 청개구리식 정책을 폈다.

경제위기에는 감세가 성장과 세수 확충으로 이어지는 게 더 힘들다는 게 일반론이다. 재정정책도 불황 때는 확장 기조를 취하고, 장기적으로 재정 여력을 확충해 복원력을 강화하는 유연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런 상식에 역행한 ‘감주성’은 성장, 재정건전성, 약자 보호라는 세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최악의 결과를 자초했다.

윤 정부는 눈앞의 경고마저 무시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도 없다. 1년 전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는 대규모 부자감세안을 발표했다가 파운드화 가치 급락, 국채금리 급등으로 대혼란이 벌어지자 백기를 들었다. 윤 정부는 이를 보고도 “한국은 영국과 다르다”면서 눈을 감았다.

윤 대통령이 최근 “이념 논쟁을 멈추고, 오직 민생에만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패한 감주성을 고수하는 한 민생을 살리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비정상의 극치인 내년 예산안이 이를 입증한다. 정부 수입이 줄어드는데 재정건전성을 앞세우다 보니 약자 복지, 시민사회 지원, 미래 성장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까지 줄이려 한다.

그런데도 경제팀 수장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의 내년 성장률은 국내총생산 1조달러 이상 국가 중에서 최고”라고 자화자찬하는 돈키호테식 행태를 보인다. 또 기재부의 엉터리 전망으로 올해 연말까지 60조원에 가까운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데도 세계경제 급변 등 남 탓으로 돌렸다. 경제팀 수장이 이 지경이니 민생과 경제가 온전할 리 있겠나?

정부·여당이 보궐선거의 민심을 겸허히 수용하고, 윤 대통령의 민생 강조가 진정이라면 먼저 ‘감주성’ 실패를 인정하고, 그 책임자인 추 부총리부터 경질하는 게 순리다. 그리고 내년도 긴축 예산안을 폐기하고 취약계층 지원, 미래 산업 발전에 필요한 투자 등 꼭 필요한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

이건희 ‘신경영 선언’의 요체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혁신하고 도전하라는 것이다. 윤 정부가 이미 실패한 ‘감주성’을 고집하는 것은 이념과 진영논리에 얽매여 현실에 안주한 채 혁신을 거부하는 것이다. 인요한 위원장도 진정으로 여당의 쇄신을 바란다면, 감주성 폐기를 요구해야 한다.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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