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만 '공적 소유구조 해체' YTN 대격변
'오너리스크' 유진그룹 등장…공기업 중심 소유구조 26년 만에 끝
공정방송 지킬 수 있을까… 방통위로 공 넘어간 YTN 사영화 논란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YTN에 대격변이 일어났다. 1997년 12월 한전KDN이 연합통신으로부터 최대주주 지위를 획득한 후 26년 만에 대주주가 교체된다. YTN의 공적 소유 구조가 무너지고, 민간자본의 최대주주 등극이 목전에 왔다. YTN 주식 30.95%를 낙찰받은 유진그룹이 YTN의 공정방송 제도를 잘 이행할 수 있을지, 유진그룹이 보도전문채널의 대주주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따라붙는다.
삼일회계법인은 23일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소유한 YTN 지분 30.95% 낙찰자를 발표했다. 정권과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한세실업, 한국경제 등이 유력하다는 풍문이 돌았으나 유진그룹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유진그룹이 써낸 입찰가는 3199억3000만 원. 24일 기준 YTN 시가총액 3276억 원과 유사하다. 삼일회계법인이 추산한 YTN 자산가치는 최대 1조844억 원이다.
하지만 유진그룹이 YTN 대주주 등극을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유진그룹의 대주주 적격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으며, YTN 내외부의 반발이 나오고 있다. 유진그룹은 최종 낙찰자로 선정된 후 “대한민국 대표 뉴스전문채널인 YTN의 지분 인수를 통해 방송·콘텐츠 사업으로의 재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은 24일 아시아경제에 “스트롱 YTN을 만들겠다”고 했다.
유진그룹은 1997년 부천·김포·은평 지역을 기반으로 한 케이블방송 드림씨티방송을 운영한 바 있다. 2005년엔 드림씨티방송 상장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해 건설전문그룹으로 거듭나겠다면서 CJ케이블넷에 드림씨티방송 지분을 매각한 바 있다.
유진그룹에 현금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진그룹은 52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공정거래법상 그룹 자산은 5조344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헤럴드경제 보도에 따르면 핵심 계열사인 유진기업과 동양의 6월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총 1484억원이다. 유진투자증권이 현금·현금성 자산을 4399억 원 보유하고 있지만 기업 특성상 현금을 마음대로 인출하긴 어려워 보인다.
YTN내부는 복잡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는 미디어오늘에 “유진그룹이 24시간 보도전문 채널을 운영하긴 부적절한 곳이란 것을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평소 민영화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지 않았던 YTN방송노동조합(소수노조)은 미디어오늘에 “유진그룹이 어떤지 파악하고 있다. 당장 뭘 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유진그룹 대주주 등극은 YTN '공적 소유구조' 종말
이번 대주주 변경은 YTN의 정체성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YTN은 1995년 개국 이래 공기업이 최대주주로 있는 '공적 소유구조'를 공고히 해왔다. 정권에 의한 낙하산 사장이 등장하고 보도공정성이 침해받는 등 수난을 겪었지만, 회사 전체가 자본에 휘둘리진 않았다. 하지만 기업이 대주주가 된다면 회사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사회 변화도 예상된다. 현재 YTN 이사회에는 한전KDN, 한국마사회 측 이사가 각 1명씩 있다. 유진그룹이 YTN 대주주가 될 경우 이사진을 교체할 가능성이 높다.
언론노조 YTN지부는 “YTN이 공정방송 제도를 잘 갖추고 있지만, 기업이 최대주주가 된다면 사내 공기가 바뀌게 된다”며 “사주가 원하는, 자본이 원하는 보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주주에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YTN의 영향력이 이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미디어오늘에 “민간자본이 자신의 철학을 방송에 투영하려는 시도들이 일어날 수 있다. 방송시장이 어렵기 때문에 경영효율을 앞세우면 시장 압력에서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윤석열 정권은 지분 매각 명분으로 '공공기관 자산 효율화'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신뢰도 1위 보도전문채널의 공공성을 흔들어 정권 편향적 언론을 만들겠다는 권력의 야욕”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보도전문채널을 언론과 관계없는 특정 민간사업자에게 넘겨 버린 엄청난 특혜는 정권의 공영방송 파괴라는 목적 아래 불법적이며 졸속으로 강행됐다”고 주장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4일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면 국회 국정조사도 검토하겠다”고 예고했다.
검사 뇌물 사건 유죄 전력 있는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
유경선 회장이 실형을 받고, 다른 기업인과 소송을 벌였다는 점도 반발의 원인이다. 유 회장이 지난 2014년 유진그룹 내사 무마 대가로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에게 수억 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적 있기 때문이다. 당시 유 회장은 김 검사에게 그룹관계자 명의의 차명계좌를 통해 현금 5000만 원을 건냈으며, 유 회장의 동생은 수표 5억4000만 원을 전달했다.
민언련은 “낙찰자로 선정된 유진그룹은 유통·금융 주력 기업으로 논란투성이”라며 “불공정 경영 승계와 특혜 의혹까지 공영방송 소유주로 자격 없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 유진그룹의 핵심인 유진투자증권이 홍콩빌딩 투자 실패로 200억을 손해 보고, 2분기 영업이익까지 적자로 돌아선 상황에 무슨 돈으로 YTN을 인수하려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방통위로 넘어간 공… “공정방송 제도 이행 약속 받아야”
이제 공은 방송통신위원회로 넘어갔다. 한전KDN과 한국마사회는 이사회 의결을 거친 후 유진그룹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유진그룹은 방통위에 최대주주 변경승인을 신청하고, 방통위는 신청 접수 60일 이내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관련 법령에 따라 엄격·투명·신속하게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찬 위원장은 “지역민영방송, 종합편성채널을 보면 민간자본이 방송사를 운영했을 때의 부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며 “문제점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사 설계가 있어야 한다. YTN의 공정방송 제도 준수 여부, 구성원과 협의 등에 대한 이행 약속을 받고 이를 조건에 부과해야 한다. 유진그룹이 주주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적격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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