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익병 "37세 때 부자 돼…1년에 집 한 채씩 살 만큼 벌었다"

신초롱 기자 2023. 10. 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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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차 피부과 의사 함익병이 성공 스토리를 전했다.

23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에서는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과 아내 강미형이 절친 최홍림, 윤영미, 이재용을 집으로 초대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강미형은 식탁에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던 중에도 떡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함익병을 바라보며 "우리 남편은 어릴 때 가난하게 산 거 같다. 못 먹어서 먹는 거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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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 갈무리)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37년 차 피부과 의사 함익병이 성공 스토리를 전했다.

23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에서는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과 아내 강미형이 절친 최홍림, 윤영미, 이재용을 집으로 초대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강미형은 식탁에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던 중에도 떡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함익병을 바라보며 "우리 남편은 어릴 때 가난하게 산 거 같다. 못 먹어서 먹는 거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함익병은 "누가 먹을 거 갖고 오면 눈이 동그래진다"고 했다. 이에 윤영미는 "지금은 하루에 1000만원짜리도 먹을 수 있는 위치인데도?"라며 의아해했다.

함익병은 어린 시절에 대해 "양껏 못 먹었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7형제 중 맏이였다. 시집 안 간 동생들이 수두룩하고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계셨다. 그러니까 우리 몫이 없다. 월급은 다 할머니 생활비였다"고 전했다.

그는 "기억나는 건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를 고생시킨 거밖에 없다"며 "허구한 날 돈 걱정이었고 벌 방법은 없고 나갈 거는 많고 내가 만일 우리 아버지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그렇게는 안 살았을 거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도 공부를 잘했나"라는 질문에는 "공부는 머리로 하는 거니까 집에 신문, 과학책, 교과서 외엔 없다. 그것만 보고 있으니까 외웠다. 볼 게 그거밖에 없었다"고 했다.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 갈무리)

그는 "판검사 돼야 했던 거 아니냐"는 질문에 "고등학교 때 법대에 가려고 했다. 근데 잘못되면 고생한다더라. 실패하면 안 되니까 의사가 되라더라. 아버지 말 듣고 의대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되면 잘 사나 보다 싶었다"며 의대에 진학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아버지가 의사 된 거 보고 돌아가셨나?"라는 질문에 함익병은 "개업하자마자 바로. 아버지가 62세에 돌아가셨다. 전문의 시험 볼 때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몸에 뭔가 생긴 것 같다'더라. 암이었다. 병원 개업한 그해 봄에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강미형은 "(아버님이) 개업식 때 오셨다. 좋아하셨다. 문을 열자마자 병원이 잘 됐다. 병원에 계실 때 돈 얼마 벌었다고 가서 보여드렸다. 하루 번 게 우리 아버님 한 달 월급이었다. 너무 좋아하셨다"고 기억했다.

함익병은 "개업해서 돈을 벌어서 좋았던 게 어느 순간 돈에서 자유로워지더라. 개인적으로 돈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돈에 대해 별생각이 없고 여유로워지니까 편해지더라"고 말했다.

그는 "피부과가 크게 인기가 없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성형외과, 안과가 돈을 많이 벌고 피부과는 돈을 많이 못 벌 때였다. 레지던트 2~3년 차 교육을 미국으로 보내줬다. 미국에서 돈 버는 일을 많이 하고 있더라. 레이저 클리닉을 하더라. 개업하려면 저걸 해야겠다 싶었다. 기곗값이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비쌌다. 한 대에 1억~2억 하니까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그러고 와서 셋이 동업했다. 개업했는데 이게 시장이 있었던 거다. 심지어 1층에 있던 커피숍에 전화해서 손님 올라오라고 호출했다. 스킨 케어(피부관리) 개념을 병원으로 가져온 것도 저"라고 밝혔다.

함익병은 "세 명이 있으면 많이 벌어도 얼마 안 되지 않냐"는 말에는 함익병은 "많이 벌면 쪼개면 많다"며 웃었다. 이어 "1년에 집 한 채씩 살 만큼 벌었나?"라는 질문에 "그럼"이라고 답했다.

그는 "나를 위해 쓴 건 없다. 큰돈이랄 게 없다. 사람 만나서 밥값 내는 정도"라며 "내가 37살에 부자가 됐다. 게를 쪄서 먹을 때 이 정도면 부자가 됐다 싶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사치하는 부분이 있다. 집 사치다. 큰 집을 산다. 형편에 비해 넓은 집을 산다. 이 집은 93평이다"라고 밝혔다.

r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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