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회계공시 참여] ‘역발상 정책 설계’로 노동개혁 첫 가시적 성과···개혁 당사자 '껴안기'는 과제
공시제 도입 명분 쌓고 참여 시 혜택 연동한 설계 주효
실리적 노동운동 요구받는 노조 지형도 노총 참여 요인
임금·근로시간 등 향후 과제 난제··· 국민 설득 관건
우리나라 노동조합을 양분하는 한국노총에 이어 민주노총도 노조 회계 공시에 전격적으로 응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이 상당한 동력을 얻게 됐다. 양대 노총의 공시제 참여는 ‘개혁의 성패는 정부의 정책 설계와 의지에 달렸다’는 첫 사례를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관건은 노동 개혁 과정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반대하는 당사자를 어느 선까지 설득할지다. 남은 개혁 과제는 이번처럼 노조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 전체의 삶과 직결되는 임금과 근로시간이다.
민주노총은 24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고용노동부가 개설한 회계 공시 시스템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전일 공시제에 응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노조원의 약 85%는 양대 노총 소속이다. 양대 노총의 참여는 공시제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정부가 노동 개혁을 추진한 후 첫 실질 성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노조공시제는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 언급했다. 올해 2월에도 윤 대통령은 “회계 투명성은 노조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양대 노총은 즉각 반대했다. 이미 조합원이 회계장부를 열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공시제를 만들어 노조의 자주권과 운영권을 침해했다고 반발했다. 이미 ‘정부가 노동 탄압을 하고 있다’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양대 노총 입장에서는 공시제 반대가 당연한 수순이었다.
양대 노총이 공시제에 전격적으로 응하기로 입장을 선회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예상된다. 고용부의 정책 역량과 포석이다. 고용부는 공시제 시행에 앞서 사상 첫 노조의 회계장부를 점검했다. 양대 노총이 현장 점검을 반대하면서 공시제의 필요성을 높였다. 여기에 일부 노조 회계가 불투명하다는 여론도 가세했다. 공시제는 노조의 잘못을 단죄하는 게 아니라 자율 참여로 운영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특히 방법론적으로는 고용부가 노조 운영에 직결되는 정부 지원과 공시제를 연동한 점이 주효했다. 고용부는 공시를 하지 않는 노조에 정부 지원 사업을 배제하고 조합원 세액공제 혜택도 없앴다. 한국노총도 전일 조합원의 피해가 우려돼 공시제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용부가 노조 회계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의 대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점도 노조회계공시제 시행의 설득력을 높였다는 평가다.
우리나라 노조 지형도 양대 노총의 공시제 참여 배경으로 꼽힌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매 정부 정책 파트너 역할을 해왔다.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한 점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노총은 현 정부 초기부터 민주노총과 정권 규탄 전선을 짰지만 실리적인 노조 운동과 역할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노총 안팎에서 받고 있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에 비해 강경 노선을 걷고 있지만 실리적 노동운동에 대해 고민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올해 7월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민주노총 반대로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민주노총이 합의했더라면 내년 최저임금은 9860원보다 60원 더 오를 수 있었다는 점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정부와 여당은 일단 양대 노총의 참여로 노동 개혁의 상당한 성과를 달성했다고 고무된 분위기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감대책회의에서 “이번 조치로 노동 개혁 문제에 대해 정부와 노동계 사이에 소통의 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전일 “노조 회계 투명성과 합리적인 노사 관계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본격적인 노동 개혁 과제가 국민적 여론 모으기부터 어려운 난제라는 점이다. 임금 개편은 과도한 연공성을 걷어내 성과 중심 체계를 민간 기업에 확산하는 게 목표다. 근로시간 개편은 기업과 근로자가 주도적으로 근로시간을 쓰면서 장시간 근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화로 요약된다. 하지만 두 방안 모두 양대 노총이 반대하고 있다. 양대 노총은 노조공시제에 응하면서도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고용부의 시험대는 근로시간제 개편안이다. 고용부는 올해 3월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반대에 떠밀려 국민 여론조사를 시행해 결과를 반영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여론조사 결과는 다음 달 발표된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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