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봉사와 기부로 승화하는 유족들
"살아있는 모습만으로 부러워"
모교에 장학금 내놓은 가족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 만난 고(故) 이상은 씨의 어머니 강선이 씨(53)는 지난 6월 딸의 27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서울 성북구 정릉에 위치한 청년밥상문간을 찾았다. 그는 이날 159명이 식사할 수 있는 비용을 시설 측에 전달했다. 159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숫자다.
강씨는 "상은이가 다른 세상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생일을 상은이 또래 청년들과 함께 밥 한 끼 하면서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씨 외에 고인의 아버지, 이모, 친구들이 종일 음식 주문을 받고 설거지를 했다. 그 덕분에 눈물로 지새울 뻔 했던 딸의 생일을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지난해 8월 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을 앞두고 있었다. 참사 당일 이씨는 평소 엄마와 자주 찾았던 이태원을 친구와 함께 방문했다가 사고를 당했다. 강씨는 딸과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온다고 했다. 그는 "자식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라면서 "또래들을 보면 그 부모들이 사무치게 부럽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로 아들을 떠나보낸 고 신한철 씨의 아버지는 장례 때 받은 부의금 8700만원을 아들의 초·중·고등학교에 나누어 기부하기로 했다. 아버지 신씨는 "아들이 2011년부터 약 7년간 장애인 시설단체에 매달 3만원씩 기부를 했다"며 "아들은 TV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만 접해도 마음 아파하는 착한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묵묵히 남을 돕던 아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뿌듯함이 밀려온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신씨는 "가족회의에서 이 돈(부의금)은 쓸 수 없다는 결론이 났고 기부를 통해 어려운 형편에 처한 학생들을 돕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지난 19일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고 신애진 씨의 유족들도 신씨의 모교인 고려대에 장학기금 2억원을 기부했다. 그의 아버지인 신정섭 씨(53)는 "모교에 기부하는 것이 딸의 버킷리스트였다"고 말했다. 2억원은 고인이 아르바이트와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돈과 부의금을 합친 것이다. 물론 아들·딸을 떠나보낸 모든 유족이 이처럼 담담히 고인을 추억하는 건 아니다. 일부 유족은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와 책임자 규명,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다.
[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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