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영 칼럼] 최저임금 과속 인상의 폐해
급진적 인상으로 부작용 속출
일자리 없애고 이직은 부추겨
지역·업종별 최저임금 도입을
추석 연휴 기간 중 고교 동창 몇 명과 저녁식사를 했다.
취기가 얼큰하게 오르자 각자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음식점을 경영하는 친구는 운영난을 호소했다. 식자재 가격이 오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급격한 인건비 인상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일정 수준의 생계 안정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최근 수년간 그 인상폭이 너무 컸고 인상 속도에 가속이 붙은 게 문제라고 했다. 더 이상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서빙하는 사람을 없애고 무인주문기(키오스크)로 바꾼다고 했다.
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2000년 1600원에서 올해 9620원으로 연평균 8.1% 올랐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2.5%)의 3배가 넘는 인상이다. 최근 6년간 무려 49%가 올랐다. 같은 기간 선진 7개국인 G7의 평균 인상률(23%)을 두 배 이상 상회한 수치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문재인 정부 때 인상폭이 가팔랐다. 9860원인 내년도 한국의 최저임금은 엔저 현상까지 겹쳐 일본 도쿄의 최저임금(1072엔=9720원)보다 높아졌다.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면 임금은 근로에 대한 시장가격인 만큼 노동시장에서 수요와 공급 등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현실을 무시하고 강성 노조와 일부 정치인들이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지난해 법정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음식숙박업은 전체의 31%를 넘었다. 특히 종업원 5인 이하 영세 업체의 30%가 최저임금을 지불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같은 자리에 있던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친구는 사람을 뽑아 놓으면 1년 이상 다니지 않고 그만둔다고 했다. 새로운 직원을 뽑으려고 모집 공고를 내면 입사지원서만 제출하고 면접을 보러 오지 않는 지원자가 대부분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는 실업급여를 받을 목적의 꼼수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회사를 그만둔 후 구직활동 중에 받는 구직급여 하한액도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평균 임금 대비 구직급여 하한액 비율은 44%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미국(12%)과 일본(22%)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높다.
OECD조차 한국의 실업급여 하한액이 너무 높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다가 취업하면 오히려 세후 소득이 줄어들 수 있으며 이는 근로 의욕을 저하시킨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임금을 둘러싼 이 같은 촌극이 벌어지는 이유는 임금이 노동시장에서 수요과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이라는 경제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과 실업급여는 무조건 올리는 게 좋다는 강성 노조와 일부 정치인이 결탁해 손쉽게 임금을 올린 포퓰리즘을 택한 결과다. 그러나 시장 원리를 무시하거나 시장을 억압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해준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지역·업종·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단 하나의 금액만을 강제한다.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다. 근로자 대표와 사용자 대표가 최저임금을 흥정하듯 결정하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영국처럼 독립된 전문위원회가 건의해 정부가 수용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일본처럼 중앙심의회가 제시하는 숫자를 기초로 광역자치단체가 지역 상황을 반영해 최종 금액을 정하도록 해야 한다. 서울과 지방은 물가 수준이 다르고 최저생계비가 다른 만큼 현실적인 지역별 차등화가 필요하다. 경영 환경이 열악하고 임금 지불 능력이 약한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들이 주장해온 업종별 차등 적용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 볼 때다.
[김대영 국차장 겸 디지털전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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