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반값 킹크랩
고기, 우유, 야채, 과일 등 모든 먹거리 가격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유독 떨어진 게 있다. 바로 고급 식자재의 대명사, 킹크랩이다. 요즘 시장에서 러시아산 레드 킹크랩 가격은 ㎏당 6만~7만원 선으로 폭락했다. 지난달 초 11만~12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40~50% 하락한 것이다. 통상 ㎏당 5만~6만원대인 러시아산 대게와도 차이가 없어졌다. 서민들에게 여전히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싸서 평소 먹기 힘들었던 킹크랩에 도전해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보통 한 마리당 20만~30만원에 육박하던 킹크랩 가격이 반 토막 난 원인은 다름 아닌 '전쟁 나비효과'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킹크랩 주요 소비국인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산 해산물 수입을 금지하면서 창고에 보관한 킹크랩이 포화 상태에 달했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 경제 불황으로 중국의 킹크랩 수요가 급감하면서 한국으로 물량이 대거 들어오게 된 것. 살아 있는 상태로 유통되는 킹크랩 특성상 빠른 재고 소진이 필요해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최근 대형마트가 킹크랩을 100g당 5000원대에 판매하는 특판 행사를 열자 '오픈런'이 벌어지고 6t 물량이 10분 만에 완판되기도 했다. 복잡하게 얽힌 국제 정세 때문에 한국에서 때아닌 '킹크랩 특수'가 생긴 것이다.
국내에서 호주산 쇠고기 가격도 올해 말쯤 크게 하락할 전망이다. 호주 현지에서 쇠고기 가격이 올해 들어서만 60% 급락한 영향이다. 호주 쇠고기 가격 하락 원인도 얄궂다. 엘니뇨로 건조한 기후가 지속되면서 산불이 자주 발생해 소가 먹을 풀이 부족해졌고, 목초 가격이 오르자 업자들이 소 도축을 급격하게 늘렸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라는 기상이변이 호주산 쇠고기 가격을 끌어내린 셈이다.
킹크랩과 호주산 쇠고기 가격 하락은 전쟁과 기후위기가 부른 급락이라는 점에서 배경이 달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고물가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시적 하락이라는 점은 아쉽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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