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노벨상 작가 "문학이 전쟁의 해악에 대한 해독제"
노벨문학상 르 클레지오·알렉시예비치 기조연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2차대전 직후 암울했던 유년 시절에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준 것은 외할머니가 매일 매일 해준 새로운 이야기들이었죠. 저는 예술과 문학이 문화 제국주의와 전쟁의 해악에 대한 해독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는 전쟁의 시대 문학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24일 파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개막한 '2023 DMZ평화문학축전' 기조연설을 통해서다.
이 행사는 정전 70주년을 맞아 인류 평화를 문학의 눈으로 논의하고 국내외 문인들의 국제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주최로 올해 처음 열렸다. 르 클레지오를 비롯한 국내외 작가 55명이 참여했다.
해외작가들을 대표해 이날 개막 연설을 한 르 클레지오는 '평화를 향한 험난한 여정'이란 주제의 연설에서 문학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문학, 특히 상상력과 고백, 냉소주의의 혼합인 소설은 만남과 교류를 위한 이상적인 곳"이라면서 "문학이 우리가 평화를 향한 멀고도 험난한 길을 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할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소설 '황금물고기', '사막', '타오르는 마음' 등을 쓴 르 클레지오는 물질문명에 희생되는 왜소한 인간상과 시원(始原)의 자연 속 인간 본원의 감성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 작가로 꼽힌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기조연설자로 나서 러시아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향한 짙은 연대 의식을 표명했다.
그는 '러시아인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푸틴은 오랫동안 볼셰비키의 복수를 꿈꿨고 소련 같은 체제를 복구하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는 항복하지 않고 있으며, 전 세계가 이 나라를 지지한다"며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게 바로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벨라루스인 부친과 우크라이나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알렉시예비치는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라는 독특한 문학 장르의 창시자로, 역사의 현장을 돌아다니며 관련자들을 인터뷰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대표작으로는 2차대전의 참상을 고발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 '체르노빌의 목소리' 등이 있다.
그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강제징집을 피해 독일로 도망쳐온 한 러시아 학생의 사연을 들려줬다. 그 학생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군인이었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에서 죽거나 죽이고 싶지도 않았어요. 제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고 아버지는 러시아인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사촌들이 사는 우크라이나서 보냈어요. 어떻게 그들을 쏘겠어요."
알렉시예비치는 "오늘날 러시아와 그 국민이 무슨 일을 겪는지를 이해하려면 왜 매년 더 많은 러시아인이 스탈린을 지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설문 결과를 인용하며 "러시아의 젊은 세대들은 스탈린의 신화를 지지한다. 러시아인들은 소련 제국이 세계를 공포에 물들게 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금 강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를 꿈꾼다"며 "스탈린의 부활에 맞춰 (소련의 전체주의적) 과거도 부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 측 기조연설자로는 원로소설가 현기영이 나섰다.
그는 "전쟁을 막는 것은 각성한 시민의 에너지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의 어리석은 실수, 실패를 막기 위해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시민의 초롱초롱한 감시의 눈이 필요하다"며 "그 역할을 누구보다 먼저 우리들 작가가 감당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작가의 예민한 촉각이 필요하다. 전쟁에 대한 집단기억이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역할, 즉 망각에 저항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제주 출신 소설가인 현기영은 4·3의 비극을 문학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대표작에 중편 '순이삼촌'을 비롯해 장편 '지상에 숟가락 하나', '제주도우다' 등이 있다.
DMZ 평화문학축전은 26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25일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르 클레지오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함께 '장벽과 차별을 넘어 생명과 평화로'라는 주제로 3인 대담을 하는 등 평화와 문학을 테마로 한 다양한 세션이 마련된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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