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무엇은 무엇인가

2023. 10. 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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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내가 무엇인지 종종 잊는다. 몰라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기도 하다. 그냥 사는 거지, 내가 무엇인들 무엇이 아닌들 무슨 상관일까. 기업 차원에서 봐도 마찬가지. 월급쟁이 입장에선 월급 받는 데 지장 없으면 넘겨도 큰일 안 생긴다.

그런데 가끔은 그 질문이 필요할 때가 있다. 대학을 졸업할 때나 결혼할 때, 아이를 낳았을 때, 이직할 때, 퇴사할 때… 죽기 직전에도 생각할지 모르겠다. 기업도 사람(법인)이고 보니 그럴 때가 있다. 리더가 바뀌었을 때, 혁신할 때, 위기에 처했을 때…. 개인이나 기업이나 변곡점에서 질문이 나오는 것 같다.

무엇에 대한 질문과 답은 많은 것을 바꾼다. 전략이 달라진다. 행동이 달라진다.

회사 대표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던진 질문은 "우리 회사는 무엇인가"였다. 소위 '업의 정의'였는데 답이 달랐다. 반복해서 물었다. 내게도 묻고 임직원들에게도 물었다. 이동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보다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모든 일이 우리 회사의 업이다. 이동(모빌리티), 국민(고객), 경험(서비스)이 키워드다. 편의점이나 카페, 광고, 파트너십 등은 우리 일을 잘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에서 골라낸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업의 정의를 거울로 해서 전략을 살폈다. 전략을 기준으로 해서 실행 계획들을 추려냈다. 그런데 추상성은 공유하는 목표가 되기 어렵다. 손에 잡히는 표현, 기왕이면 숫자로. 매출 목표 숫자를 끄집어냈다. 매출이란 회사가 고객들에게 제공한 행동의 시장가치 총합이므로. 우리 회사는 무엇인가에 앞서 던질 질문도 있다. '기업이란 무엇인가'가 그쯤 되겠다. 인류가 기업을 만든 이유는 "혼자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예로부터 많은 분이 공감하는 것인데, 요즘에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언급해서 다시금 회자됐다.

질문을 많이 하면 걱정도 많이 생긴다. 그런데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그랬단다. 걱정은 사장의 일이라고. 고로 지금 내 걱정은 사장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사실 정체성에 대한 질문만큼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깊이 다루는 분들이 종종 나타난다.

미국 작가 마크 쿨란스키는 저서 '무엇WHAT?'에서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야말로 자신은 왜 글을 쓰는지 물어봤던 조지 오웰의 질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아닐까"라고 적었다. 이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왜 이토록 근본적"이며 "무엇인가는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몇 년 전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을 쓴 김영민 서울대 교수도 그랬다. 마지막 문장이 "칼럼이란 무엇인가"였던가. '취직 안 하느냐'는 불편한 질문을 '당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받아치는 묘수도 이렇게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싸늘해진 분위기는 어찌할 것인가. 슬쩍 뒤로 빠지면서 인사를 남기는 게 낫겠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무엇들께 축복을.

[김영태 코레일유통(주)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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