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없으면 수술 마비"…흉부외과 '불법' 투명인간 국감 첫 등장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PA'(진료지원인력)가 국내에선 정식 직종으로 인정되지 않아 불법의 그늘에 놓인 가운데, PA보다 더 베일에 싸여 쥐 죽은 듯 살아야 했던 '체외순환사'라는 존재가 오는 25일 국회에서 열리는 종합국정감사에서 처음으로 공식 등장할 예정이다. 흉부외과가 심장 수술을 해온 지난 50여년 간 이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지내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체외순환사는 흉부외과에서 심장을 수술할 때 수술장에서 환자의 심장을 대신해 피를 전신에 공급하는 기계(에크모)를 돌리는 일, 쉽게 말해 '혈액의 체외 순환'을 주업무로 담당한다. 심장을 수술할 때 심장의 박동을 멈춰 고정된 상태에서 심장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현재 전국에서 심장 수술을 진행하는 병원은 90여 곳으로, 이곳에 모두 체외순환사가 근무하고 있다. 보통은 심장 수술 때 체외순환사 2명(적으면 1명)이 수술실에서 꼬박 서서 일하는데, 흉부외과 집도의의 지시 하에 혈액의 양을 늘리거나 줄이고, 약물을 혈액에 넣어 피를 돌리는 등 업무를 맡는다.
현재 국내에서 암암리에 활동하는 체외순환사는 220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정식 직종으로 인정받지 못해 모두 불법적인 존재다. 그런데도 수술장에서 체외순환사가 없이는 심장 수술을 한 건도 진행할 수 없다. 현재 국내에서 흉부외과 의사 수 자체도 부족하지만, 흉부외과 의사가 있더라도 체외순환사가 없이는 심장 수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정의석(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 이사는 "현재 체외순환사로 근무하는 이들의 80%는 간호사, 20%는 임상병리사·응급구조사 등 비(非) 간호사 직역 출신"이라며 "정부가 체외순환사라는 직종을 정식 인정하지 않아 50여년간 불법의 그늘에 방치돼왔다"고 개탄했다.
흉부외과에서 심장 수술을 해온 지난 50여년간 체외순환사는 왜 법망에 들어오지 못했을까? 정의석 이사는 "흉부외과계에서도 의료법 위반을 우려해 체외순환사라는 인력이 있다는 사실을 쉬쉬해야 했다"며 "이런 이유로 지난 50여년간 체외순환사를 도제식으로 알음알음 양성해온 게 굳어진 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체외순환사가 법망에 들어와 있지 않아, 병원 측에 체외순환사를 채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는 단계부터 위기에 봉착한다. 게다가 심장 수술 1건당 '체외순환'에 대한 인력 수가가 15만원인데, 보통 체외순환사 2명이 투입되므로 수술 한 건당 체외순환사의 몫은 7만5000원꼴인 셈이다. 그마저도 수술 한 번에 5시간 안팎이 걸리는데, 시간당으로 치면 1만5000원에 불과한 셈이다. 국내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주 2건 진행하면 상위권에 속한다. 주 2회 심장 수술을 진행해도 병원이 체외순환사 채용 비용만큼도 벌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 이사는 "학회 차원에서 3년 전부터 복지부에 '체외순환사를 법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제안해왔다"며 "하지만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진척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해외는 어떨까. 미국은 체외순환 전문 대학을 졸업한 경우, 일본은 공대 전공자에 한해 체외순환을 공부할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체외순환사가 될 수 있다. 나라마다 체외순환사의 자격 요건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제도'를 갖고 있다는 것. 반면 우리나라는 제도조차 없다.
이에 국내 예비 체외순환사들은 오랜 경험이 있는 체외순환사에게 간호사·임사병리사 등이 알음알음 찾아가 배우고 있다. 3~5년간 견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체외순환사가 하나둘씩 늘기 시작해 지난해엔 대한체외순환사협회까지 생겨났다. 이에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와 대한체외순환사협회는 '체외순환사 자격인증제'를 개설해 응시 자격요건까지 만들었다. △심장 수술을 시행하는 각 의료기관에서 체외순환사로 근무한 경력이 5년 이상이거나 △심장외과 전문의 지도하에 독립적·주도적으로 150례 이상의 체외순환 운영을 경험해야 체외순환사가 될 수 있다.
정 이사는 "학회는 원래 의사만 회원이 될 수 있는데, 체외순환사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학회는 체외순환사를 특별회원으로 두고 체외순환 아카데미를 만들어 매년 수강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현재 대한체외순환사협회에 220명이 소속돼 체외순환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110명이 시험을 통과해 자체 인증을 획득했다.
이에 체외순환사의 존재를 눈감아온 정부에 대한 국감이 내일 진행된다. 머니투데이가 단독 입수한 내용에 따르면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25일 국감에서 복지부 측에 체외순환사의 제도화를 방치한 실태에 대해 질책할 예정이다. 국감에서 체외순환사의 존재가 언급되는 건 사상 처음이다. 이날 열릴 국감엔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이기일 1차관, 박민수 2차관이 참석한다. 24일 강기윤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흉부외과 수술 현장에서 체외순환사가 꼭 필요한데도 공식 직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체외순환사를 양성하지 못해 결국 국민들이 응급실 뺑뺑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것"이라며 "학회가 요구해도 복지부가 왜 이렇게 손을 놓고 있는지를 지적하려 한다"고 밝혔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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