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금융 수요조사 없앤다…'선별접수' 꼬리표 뗄까

오정인 기자 2023. 10. 2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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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혁신금융서비스 제도를 운영하면서 법적 근거가 없는 절차를 만들어 이른바 '선별 접수'를 받는다는 지적에 따라 신청 절차를 개선키로 했습니다. 

문제가 됐던 '수요 조사' 절차를 없앤다는 계획이지만, 자칫 '조삼모사'가 될 수 있어 실질적인 개선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위원회에서 받은 국정감사 서먼답변서에 따르면 금융위는 혁신금융서비스의 수요조사 절차를 없애고 컨설팅 단계를 거쳐 곧바로 정식 신청서를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혁신금융서비스는 금융규제샌드박스 제도 중 하나입니다. 지난 2019년 제정된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에 따라 금융 분야의 기술적 혁신을 유도하고 관련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금융사나 핀테크사가 자사 서비스 등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신청하면, 이후 혁신금융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지정받는 방식입니다. 한 번 지정되면 2년간 금융 관련 법률에 따른 규제를 받지 않고, 이후 1회 연장이 가능합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금융위는 법적 근거가 없는 사전검토 절차를 공식화해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 감사원)]

문제는 금융위가 이 과정에서 법령에 근거가 없는 '수요조사 절차'를 만들어 운영했다는 점입니다. 

금융사나 핀테크사는 혁신금융서비스 신청서를 바로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전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미리 약식 신청서를 작성해 한국핀테크지원센터와 금융감독원(핀테크현장자문단) 등의 컨설팅을 받은 다음, 금융위의 은행과·자본시장과 등 소관부서의 사전검토를 거쳐 수용 가능 여부를 판단받아야만 정식 신청서를 제출하는 방식입니다.

앞서 지난달 감사원은 '소극행정 개선 등 규제개혁 추진실태' 감사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부분을 지적하고 금융위에 징계·주의요구 및 통보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금융위는 이같은 절차를 신설하고 금융사나 핀테크사가 정식 신청서를 내기 전 수요조사에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했습니다. 금융위 소관부서가 심사위원회에 상정할 안건을 결정하게 했고, 이에 불응한 신청자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정식 신청서를 제출하자 신청을 받지 않은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더구나 이같은 절차를 업무매뉴얼에 반영해 공식 절차화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무위 소속 김희곤 의원도 지난 11일 열린 금융위 국정감사 서면질의를 통해 이같은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금융위는 "수요조사 절차는 적극행정 차원에서 도입된 것으로, 별도 근거 법령이 없어 법적 구속력도 없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업계에선 "사실상 의무 절차"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중소형 핀테크사 대표는 "사전절차인 수요조사가 시작되면 결과는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고 사실상 감감 무소식"이라며 "서류를 보완하라는 이야기도 없고 별도 피드백도 없이 마냥 기다리다가, 얘기가 없으면 떨어졌다고 여기는 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의원이 금융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혁신금융서비스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난해까지 4년간 수요조사 신청건수는 모두 1천218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신청한 건수는 243건으로 20%에 그쳤습니다. 실제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건수는 237건, 97.5%였습니다.

김 의원은 "기업들은 희망고문 상태에 놓인 채 금융위로부터 아무런 피드백도 받지 못한채 사업화가 지연되고, 심각한 경영난에 고사할 지경"이라며 "수요조사 신청이 블랙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금융위는 "수요조사 절차를 없애고 컨설팅을 거쳐 곧바로 정식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컨설팅을 받는 기업들이 빠른 회신을 받을 수 있도록 세부 운영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신청서를 받기 전 사실상 선별 접수를 받는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지만, 여러 사전절차 가운데 하나를 줄이는 것일 뿐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비판은 여전합니다. 

김 의원은 "신청서를 내기 전 컨설팅 절차가 기존 수요조사의 '시즌2'가 돼선 안 된다"며 "조삼모사 격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밖에도 핀테크사에 비해 기존 금융사나 공공기관이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는 사례가 더 많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말까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237건 중 149건이 금융회사, 공공기관 등 기타가 9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핀테크사의 경우 73건으로 3분의 1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김 의원은 "진정한 금융 혁신을 위해선 혁신금융제도가 규제샌드박스로 기능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전반적인 문제를 검토하고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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