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산정무한] 와불산 넘어 용유담 가는 길을 걷다

김윤세 2023. 10. 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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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 능선길

올해 들어 실행에 옮긴 산행 중 지난 10월 8일의 65회차 산행은 한국불교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생각한다.

앞서 10월 7일, 지리산 조망공원에서 개최한 제8회 '지리산 마고 예술제'에 대회장으로서 참가해 축사하는 등의 일정으로 인해 계획했던 산행 일정을 미루어 8일에 단독으로 산행에 나서 가을 지리산의 정취를 만끽하는 하루를 보냈다.

함양의 웰니스 호텔 인산가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한 뒤 느긋하게 출발해 지리산 서암정사 주차장에 주차한 다음 산행을 시작한 것은 오후 2시 40분이다.

벽송사 가는 길은 차량 통행이 가능한 포장도로임에도 경사도가 꽤 가파른 탓으로 숨도 차고 땀도 흐르는 데다 쉽지 않은 오름길이어서 느린 걸음으로 여유롭게 한 걸음 한 걸음 오른다.

비탈길 약 500m를 오르니 푸른 소나무들로 가득한 짙푸른 산자락이 병풍처럼 두른 곳에 역사 깊은 고찰 벽송사碧松寺의 품격 있는 모습이 자태를 드러낸다.

활짝 핀 연꽃이 절집을 감싸 안은 형국

벽송사는 조계종 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조선 중종 15년(1520), 벽송 지엄碧松智嚴(1464-1534) 선사가 옛 절터였던 이곳에 절을 중창해 벽송사라 했으며, 6·25 때 소실된 뒤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리산의 천봉만학千峰萬壑이 벽송사를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형용은 마치 '활짝 핀 연꽃이 만개해 절을 감싸고 있는 것 같다'는 '부용만개芙蓉滿開'의 형국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예로부터 수행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해 사적기事蹟記가 없어 창건연대 및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다만, 현 위치에서 50m 위의 옛 절터에 있는 삼층 석탑이 고려 초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 절의 창건 역시 신라 말, 고려 초로 보고 있다.

삼층 석탑이 있는 옛 절터에는 미인송美人松과 도인송道人松이라 불리는 짙푸른 소나무, 즉 벽송碧松 두 그루가 있고 뒷산은 푸른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저 멀리 지리산 주 능선이 바라보인다.

벽송사는 조선왕조가 들어선 이래 억불숭유정책으로 인해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조선시대 불교 법맥法脈의 단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석가모니 이래 전해온 법등法燈을 잇게 한 역사의 현장이다.

벽송사를 중심으로 벽계 정심碧溪正心, 벽송 지엄碧松智嚴, 부용 영관芙蓉靈觀, 경성 일선敬聖一禪, 청허 휴정淸虛休靜=西山, 부휴 선수浮休善修, 송운 유정松雲惟政=泗溟, 청매 인오靑梅印悟, 환성 지안喚醒志安, 호암 체정虎巖體淨 등 기라성 같은 조사들이 벽송사에서 수행 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아울러 선교禪敎를 겸수한 대 종장들을 108분이나 배출해 일명 '백팔조사 행화도량百八祖師 行化道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벽송사에는 서산 대사의 스승인 부용 영관 대사를 비롯해 부휴 선수, 사명 유정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대거 주석했는데 제7대 조사로 알려진 환성 지안 선사(1664~1729)는 당시의 혹독한 불교 탄압으로 희생된 비운의 선지식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영조 1년(1725), 전북 김제에 있는 금산사에서 개최한 환성 선사의 화엄 대법회에 당시 1,500여 명의 대중이 운집해 성황을 이룬 것을 기화로, 한 무고자의 무고 때문에 환성 선사는 지리산에서 체포되어 제주도로 유배된 뒤 곧이어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된다.

그가 산중에 기거하며 읊은, '우연히 읊다偶吟'라는 제목의 시에는 깊은 통찰력과 함께 짙은 고독감이 배어 나온다.

지리산 벽송사.뒤로 도인송과 미인송이 보인다

盡日惺惺坐진일성성좌

乾坤一眼中건곤일안중

有朋草屋來유붕초옥래

明月與淸風명월여청풍

온종일 성성히 앉았노라니/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벗이 초암으로 찾아오니/밝은 달, 맑은 바람이라

수많은 도인을 배출한 벽송사도 세월의 흐름 속에 영고성쇠榮枯盛衰의 흐름을 타게 된다.

벽송사 강원의 마지막 강주를 역임한 초월 동조初月東照 대사는 독립운동에 투신해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게 되고, 일제의 조선불교 말살 정책으로 인해 400여 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불교 법맥의 요람인 벽송사의 사세도 점점 더 기울기 시작했다.

더욱이 6·25 때 이곳 지리산 일대는 마지막까지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서 당시 벽송사는 빨치산들의 야전병원이었던 탓으로 우리 국군에 의해 전각이 완전히 소실되는 비운을 맞는다.

지금의 가람이 중창된 것은 1960년대 이후 원응 구한圓應久閒(1935~2018) 스님께서 원력을 세워 중창시켰으며 벽송 선원은 2005년 하안거에 개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거친 산행 뒤 피로 씻어준 '탁맥'한잔

벽송사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로 접어들어 가파른 경사의 700여 m 길을 15분가량 오르니 와불산臥佛山 정상으로부터 흐르는 산맥의 주 능선에 당도한다. 땀도 많이 나고 갈증도 심한 터라 바위 쉼터에 앉아서 지니고 간 탁여현을 꺼내 한 잔 죽 들이켜니 비로소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상쾌함을 느낀다.

와불산 정상 방향으로 난 능선길을 따라 200여 m 오른 뒤 왼쪽 하산길로 접어들어 내리막길을 걷는데 바윗길과 크고 작은 돌들이 비탈진 하산길 걸음을 편치 않게 한다. 내려가는 길에 조그만 계곡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에 배낭을 벗어 내려놓고 세수한 다음 돌 위에 앉아 다시금 즉석에서 탁여현과 맥주를 섞어 만든 '탁맥'을 들이켜니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사위四圍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해 걸음을 서둘러 하산하는데 큰 계곡을 건넌 뒤 이내 용유담에 당도하고 계속 더 걸어서 마침내 60번 도로-천왕봉로에 다다라 산행을 마무리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전형적인 가을 산행의 총거리는 3.8km이고 3시간 10분이 소요되었으며 해발고도 420m에서 시작해 최고 731m까지 오른 비교적 평이한 코스의 산행이었다.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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