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 지은 요양시설 …"우리 할아버지 더 건강해보여요"
방문 열고 나오면 거실로
소외·고립감 줄일 수 있어
노인 격리 아닌 생활공간화
보험사가 직접 운영하며
신상품·서비스 경쟁도 기대
'2072명'.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요양시설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숫자다. KB라이프생명이 2021년 서초빌리지를 개소한 이후 대기자는 20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요양원으로도 불리는 요양시설은 치매 등 노인성 질환으로 일상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국내에선 개인사업자의 요양시설이 대부분이라 서초빌리지처럼 보험사가 직접 운영하는 곳은 드물다. 이 회사의 요양시설 1호점인 위례빌리지까지 합치면 대기자는 5000명이 넘는다. 도대체 어떤 시설이길래 대기자 명단까지 생길 만큼 인기를 끌까. 매일경제가 최근 직접 서초빌리지를 다녀왔다.
일반 아파트 단지와 상가 사이에 위치한 서초빌리지는 모르고 보면 고급 단독주택이나 빌라처럼 생겼다. 외관에서 요양시설이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지하 2층~지상 3층으로 건축됐으며 실내에는 중정을 만들어 자연광을 담아냈다.
정원은 총 80명이다. 1~3층에 방들이 배치돼 있다. 대부분의 요양시설은 병원처럼 복도를 따라 양옆으로 방이 나열되지만 서초빌리지는 가정집처럼 방들이 공용 거실을 둘러싸듯이 자리잡고 있다. 방을 열고 나오면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거실이 눈에 들어오는 구조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독립된 공간(방)과 공용 공간(거실)이 잘 어우러져 있는 셈이다. KB골든라이프케어 관계자는 "집이 연상되는 구조로 설계한 이유는 익숙한 공간이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인실은 약 5평, 2인실은 약 7평 규모다. 1인실은 예전 집에서 자주 사용하던 의자나 가구 등 애장품을 일부 가져와 '내 방'처럼 꾸밀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모든 방의 한 면은 커다란 창으로 설계돼 내부에 따스한 햇살이 들어온다.
어르신을 위한 작지만 세심한 배려도 눈길을 끌었다. 식사는 지하 2층에서 영양관리 전문기업 아워홈에서 밥과 죽, 미음 등 맞춤형 식단으로 만들어 제공한다. 그러나 밥 취사와 국 끓이기는 각 층의 공용거실에서 이뤄진다. KB골든라이프케어 관계자는 "가정집에서 식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맛있는 음식 냄새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빌리지에서도 어르신들의 식욕이 돋을 수 있도록 갓 한 밥 냄새가 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세 끼 식사도 침대가 아니라 거실에서 먹는다.
방은 베이지톤이지만 방마다 문고리 색깔이 다르다는 점도 특징이다. 어르신들은 인지기능이 떨어지면 글자나 숫자를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만 색은 오랫동안 쉽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거실에서 자신의 방을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문고리마다 다른 색을 칠했다고 한다.
요양시설을 선택할 때 체크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돌봄 인력의 질과 양이다. 서초·위례 빌리지엔 간호사, 요양보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법정 기준보다 30% 많은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직원 대부분이 20~40대 중심으로 구성된 덕분에 분위기가 밝고 활기찼다. 직원들은 24시간 돌봄뿐 아니라 생화 꽃꽂이부터 노래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노인들은 직원들과 함께 매일 30분간 걷기·다리근육 강화·어깨회전 등 재활운동과 물리치료를 받는다. 이런 일상은 모바일 앱을 통해 일기장처럼 사진과 식사량, 활동량 등 체크리스트와 함께 매일 보호자에게 공유된다.
대기업 브랜드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서초·위례 빌리지를 운영하는 KB라이프생명은 KB금융그룹의 핵심 계열사이며, KB골든라이프케어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대부분 요양시설이 개인사업자로 운영되는 현실에서 'KB'라는 간판이 소비자들에게 신뢰와 기대치를 높여준다고 분석된다. KB골든라이프케어 관계자는 "요양시설 직원들도 'KB금융그룹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며 "'인간중심케어'란 KB 철학을 공유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남다르다"고 말했다.
서초빌리지는 잊을 만하면 전해지는 열악한 요양시설 운영·관리나 노인 학대 등 문제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부모를 직접 돌봐드리지 못해 '불효한 자식'이라는 마음의 짐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KB골든라이프케어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집에 계실 때보다 표정이 밝아지고 체중도 늘어나는 등 건강해지셨다는 피드백이 많다"며 "도심 접근성이 좋아서 코로나 엔데믹으로 넘어가자 예전처럼 자녀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전했다.
이들 빌리지의 운영 철학은 '그동안 살아온 곳과 비슷한 환경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서초와 위례빌리지는 각 지역 노인들의 입소 비율이 가장 높다.
KB골든라이프케어 관계자는 "주변에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던 곳에서 오래 살았던 어르신이라면 요양시설에서도 창 너머의 시야가 아파트 단지여야지 산이나 강이 보인다면 또 다른 의미에서 사회적 격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생 도시에서 살았던 부모를 자식이 "공기가 좋은 곳에 모시겠다"며 지방 요양시설로 안내하면 180도 달라진 '낯선' 풍경에 오히려 소외와 고립감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수도권 내 요양시설 충족률은 50%에 못 미친다는 게 보험업계의 시각이다.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기업들 간 서비스 품질 경쟁이 불붙을 정도로 요양산업이 활성화됐다. 반면 한국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2025년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는데도 전체 요양시설의 75%는 영세한 개인사업자들로, 이들이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보험사 등 국내 기업은 토지와 건물 소유 관련 규제 때문에 요양사업 진출에 애를 먹고 있다.
보험업계에선 요양사업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기업의 진출이 늘어난다면 질적으로 서비스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 간 경쟁과 보험과 연계된 상품 개발 등을 통해 월 수백만 원의 이용료도 낮아질 여지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보험사 중에는 KB라이프생명이 2025년 강동과 은평, 광교 지역에 요양시설 3곳을 개소할 예정이다. 신한라이프도 최근 요양시설 용지를 물색하고 있다. 통상 요양시설을 짓는 데 2년 정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한라이프도 이르면 2025년 말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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