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시진핑 경제책사’ 류허, 영향력 건재…당 중앙재경위 판공실 주임직 유지
‘시진핑의 경제 책사’로 불렸던 류허(劉鶴·71) 전 중국 부총리가 지난 3월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여전히 일부 직책을 유지하며 중국 경제 정책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4일 소식통을 인용해 류 전 부총리가 퇴임 이후에도 중국 공산당 중앙재정경제위원회 판공실 주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재정경제위원회는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2기인 2018년 당의 집중 통일 영도를 강화하기 위해 중앙재경영도소조를 격상해 만든 당내 조직이다. 시 주석이 직접 주임을 맡고 있는 최고 경제정책 결정기구로, 중앙재정경제위 판공실 주임은 시 주석을 보좌하며 실질적으로 경제 정책을 총괄한다. 이는 중국 외교수장인 왕이(王毅)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시 주석이 주임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을 겸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류 전 부총리는 시 주석 집권 1∼2기 중국 경제 계획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과 경제 담당 부총리를 지내며 ‘시진핑의 경제 책사’로 불렸지만, 중국 지도부의 ‘7상8하(67세 유임·68세 퇴임)’ 관례에 따라 지난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때 부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미 관례에 따라 물러난 류 전 부총리가 아직도 경제 정책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류 전 부총리에 대한 시 주석의 신임이 두텁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시 주석과 중학교 동창으로 오랜 인연을 맺어온 인물이다. 류 전 부총리가 지난 3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을 지낸 허리펑(何立峰) 현 부총리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올해 중국의 경제 회복 상황이 생각만큼 여의치 않다는 점도 시 주석이 계속 그를 지근거리에 두는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SCMP는 중국이 올해 경제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미국의 대중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류 전 부총리가 여전히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며 중국 안팎에서도 환영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하버드대 출신의 미국통인 그는 외부에서 친시장 개혁주의자로 인식돼 있다.
SCMP는 또 “중국 경제를 책임질 일련의 고위 관료가 새롭게 임명됐지만 소식통들은 류허가 완전히 은퇴할 것이라는 신호가 없다고 말한다”며 “그가 현 부총리인 허리펑에게 언제 바통을 넘겨줄지도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소식통들은 류허가 더 이상 부총리나 정치국원이 아님에도 다른 경제·금융 회의에도 참석하고 있다고 말한다”며 “대중의 시선에서는 사라졌지만 베이징을 찾는 외국 고위 대표들에게는 여전히 만나야 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 7월 중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도 현직 경제 관료들 외에 류 전 부총리를 별도로 만난 바 있다. 중국의 당·정 인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바이두 백과 인물 정보에도 류 전 부총리는 아직 중앙재정경제위 판공실 주임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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