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할 돈도 없어요”…매년 500개씩 생기는 ‘좀비주유소’ 무슨 일

이새하 기자(ha12@mk.co.kr) 2023. 10. 24. 14: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억대 ‘폐업비용’ 감당 못해
최근 5년간 年 500곳 휴업
알뜰주유소와 출혈 경쟁도
고유가가 이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알뜰휴게소에 차량이 몰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 휴게소 알뜰주유소. [사진 출처=매경DB]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고 싸게 기름을 공급받는 알뜰 주유소와의 출혈 경쟁까지 겹치면서 매년 ‘좀비주유소’가 500개씩 생겨나고 있다. 주유소 업계 업황이 악화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이 한국석유공사·한국석유관리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매년 500개 넘는 주유소가 휴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8월까지 휴업한 주유소도 341개라 연말까지 이 추세라면 올해도 500개 넘는 주유소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된다. 완전히 폐업한 곳까지 합치면 올해만 445개에 달한다.

최근 5년간 주유소·알뜰주유소 휴폐업현황. [자료 출처=양향자 의원실]
이처럼 주유소가 문을 닫을 위기에 몰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업계에선 가장 큰 이유로 알뜰주유소와의 출혈경쟁을 꼽는다. 알뜰주유소는 판매 물량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서 싸게 공급받는다. 석유공사와 농협, 도로공사가 정유사에서 기름을 원가 수준으로 산 뒤, 일반 주유소보다 리터당 30~60원 정도 싼 가격에 공급한다. 정부는 알뜰주유소에 시설개선지원금도 지급한다. 일반 주유소가 가격 경쟁에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 최근 5년간 일반 주유소는 1073개 문을 닫았는데, 이는 알뜰주유소의 24배에 달한다. 지난해만 해도 일반 주유소가 전체의 4.1%가 휴·폐업하는 동안 알뜰주유소 휴·폐업률은 전체의 1%에 그쳤다.

알뜰주유소가 늘면서 경쟁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9일 올해 안에 수도권 지역 알뜰 주유소를 지금보다 10%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황이다.

비싸게 팔거나 가짜 석유 판매한 알뜰주유소들
문제는 알뜰주유소가 정부에서 저렴하게 원유와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비싼 값에 되팔거나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 위반에 걸리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양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1~9월 석유공사가 잡아낸 고가판매 알뜰주유소만 86곳(중복 포함)에 달한다. 전체 알뜰주유소가 421곳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5개당 1개꼴이다. 고가 판매 알뜰주유소란 소재 지역 리터당 월평균 주유소 판매가격보다 0.1원이라도 높게 판매하는 주유소를 의미한다.

가짜 석유 판매나 품질 부적합 등 석유사업법을 위반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2019년부터 올해 1~9월까지 알뜰주유소가 석유사업법 위반으로 적발된 건수는 141건에 달한다.

주유소가 장사를 접는 또 다른 배경에는 빠르게 늘어나는 전기차가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23만1443대에 불과했던 전기차 보급 대수는 지난해 38만9855대로 크게 늘었다. 이는 고스란히 주유소 영업에 타격을 주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주유소 1개당 4489억원이던 사업소득은 2021년 3263억원으로 27.3% 줄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30년까지 주유소 1개당 평균 영업손실액은 3억6800만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4~2021년 주유소 사업소득 신고 현황 [자료 출처 = 양향자 의원실]
그런데도 주유소가 문을 제때 닫지 못하고 휴업을 선택하는 이유는 환경정화 비용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주유소가 시설을 폐쇄하려면 시설물 철거 비용은 물론 오염된 토양을 복원하는 데 최대 2억원 정도 든다.

이 때문에 휴업한 주유소가 제대로 문을 닫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 의원은 “일반주유소 사업자가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철저한 판매 가격 관리와 범법 행위 방지 노력도 함께 해야한다”며 “공제 조합이나 기금 조성으로 휴·폐업 일반 주유소의 출구전략 마련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