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야스(円安) 명암]② 훨훨 나는 건 도요타뿐… 日 청년들은 차라리 ‘워홀’ 떠난다
2분기 영업익 1조엔 기록한 도요타, 엔저 호황
中企 암울… 정부 ‘1만개 수출 지원’ 정책 가동
싸진 임금 가치에 외노자 구인난, 워홀 열풍도
엔화 가치가 1달러당 150엔까지 떨어졌다. ‘엔저’란 말은 일본에서 ‘엔야스(円安)’라고 불린다. ‘값싸다’라는 뜻의 야스(安)를 혼용해서다. 우리나라에선 관광·수출 등 일본 입장에서 누릴 엔야스의 긍정적 효과들이 주로 부각되지만, 현지에서는 시름도 적지 않게 앓고 있다. 일본에선 ‘좋은 엔야스’인지, ‘나쁜 엔야스’인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엔야스의 긍정·부정 영향은 일본은행(BOJ)의 완화적 통화정책 전환 여부와도 연관돼 관심이 모인다. 조선비즈는 엔저의 혜택을 누리고 또 홍역을 앓고 있는 일본 현지 분위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지난 2분기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일본 기업 중 사상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조엔을 넘어서는 기록을 썼다. 이런 영업이익 기록도 대단하지만, 순이익이 영업이익을 넘어서는 이례적인 호실적이었다. 자동차 생산이 많이 늘어난 데다가 무엇보다 ‘엔저 효과’를 톡톡히 누렸기 때문이다.
도요타로 대표되는 일본의 대기업들은 호황을 누리는 분위기다. 일본은행(BOJ)이 발표한 지난달 단기경제관측조사(全国企業短期経済観測調査·단칸)에 따르면, 제조 대기업 업황 판단 지수는 전 분기 대비 4포인트(p) 상승한 9로 2분기 연속 상승했다. 단칸 지수는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IS)의 일본 버전으로, 0을 웃돌고 전월보다 상승하면 경기를 낙관하는 기업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비제조 대기업 역시 6분기 연속 오른 27을 기록해, 1991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특히 음식·숙박 서비스가 포함된 비제조 대기업의 업황 호조는 엔화 약세에 따른 외국인 관광객 증가, 국내 관광 활성화로 인한 아웃바운드(outbound) 수요 약화가 주요한 요인으로 분석됐다.
◇ 日 산업 99.7% 차지 중소기업 “엔저 불이익 크다”
하지만 일본의 모든 산업이 도요타처럼 마냥 엔저 수혜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액 비중은 20% 정도로, 우리나라(1분기 기준 43.8%)에 비해 확연히 낮은 편이다. 이마저도 대기업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9.7%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 기업의 상당수는 엔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10년간 중소기업의 수출은 성장하지 않았고, 대기업에 비해 해외에서 벌 수 있는 힘은 한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엔저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가중되는 분위기다. 한국의 중소기업진흥공단에 해당하는 일본 중소기업정비기구(中小企業基盤整備機構)의 지난해 12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엔저에 대한 불이익이 더 크다’라고 답변한 중소기업들이 50.6%를 차지했고, ‘이익이 크다’는 답변은 4.5%에 불과했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 6월 일본 상양산업연구소(常陽産業研究所)가 실시한 설문에서도 답변은 비슷했다.
일본 현지 수입업체들은 곡소리를 내고 있다. 외국에서 상품을 수입해 자국에 유통하는 일본 바이어들은 “결제 통화를 엔화로 바꾸지 않으면 발주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달러로 거래 중인데 엔저 상황이니 단가를 인하해 달라”, “엔저 현상이 심해져 신규 거래 검토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해외 기업에 알리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은 일본의 무역수지 추이로 증명된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 8월 무역수지는 9305억엔 적자로 집계됐다. 지난 6월과 9월 각각 430억엔, 624억엔 ‘반짝’ 흑자를 기록했으나, 이를 제외하곤 2021년 9월 이후 지속해서 적자 추세를 이어온 것이다.
이에 일본 정부에선 엔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을 뒤늦게 부랴부랴 구사 중이다. 지난해 말부터 ‘1만개 수출기업 지원 프로그램’(新規輸出1万者支援プログラム)이라는 중소기업 수출 기업 장려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 지금껏 수출을 해본 적 없는 중소·지방기업이 해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발굴하고 돕는 정책이다.
◇ 고용 질 나빠지자… 日 청년들 “워홀 가서 돈 벌자”
일자리 현장으로 파고들면 엔저의 부작용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본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야마시타 타로우(48)씨는 “예전에는 일본의 선진 건축 기술을 배우러 베트남이나 미얀마에서 일자리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현장에서 그런 외국인 인력도 많이 줄어들어 애를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려움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엔저 때문에 일본에서 번 돈을 한국으로 송금하지 않고 기다리는 중”, “일본은 세금도 많이 떼어가서 연봉이 10%는 감소한 기분”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값싸진 엔화에 더해 일본에서 더디게 상승하는 임금 인상률 탓에, 일본 청년들의 일본 이탈 현상도 감지되고 있다. 대외경제연구원(KIEP) 분석에 따르면, 2012~2022년 일본의 전체 고용자 수는 510만명 증가했는데, ‘45세 이상 비정규직 고용자’가 대부분(70%)이었고 ‘25~44세 정규직 고용자’는 되레 줄었다. 일본의 이 기간 산업 전체 명목 임금 상승률은 연평균 0.4%에 불과했으며, 물가를 고려한 실질 임금 수준은 0.6% 떨어졌다.
이 때문에 일본 현지에선 ‘워킹 홀리데이’(워홀) 문의가 급증하는 추세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본에서 일할 바에 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으로 나가서 돈을 버는 게 이득’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이다. 일본 유명 유학 에이전트 ‘스마루’(スマ留)에 따르면, 지난 3월 워홀 비자 출국자 수는 지난해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이곳은 “최저임금으로 계산했을 때 1년간 일본에선 175만2864엔을 벌지만, 호주에선 2배 이상인 364만2167엔(3만8997호주달러)을 벌 수 있다”며 홍보하고 있다.
일본 경제 전문지 동양경제는 “만약 엔저로 국내 투자 비용이 감소해 기업의 국내 회귀가 진행되면 ‘좋은 엔야스’가 힘을 얻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런 성장 패턴이 적용되는 신흥국과 달리 일본은 인구가 젊지 않아 엔저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외국계 기업이 일본에 생산 거점을 만들거나, 해외 현지 법인이 일본 국내로 다시 들어오는 등 실질적인 국내 투자 촉진 효과는 3년 후에나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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