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자신의 등산화를 내어준 지리산 국립공원 레인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이야기다. 2003년 8월 나는 중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지리산에 갔다. 산행을 떠나기 전 아들과 함께 산행 장비를 점검했다. 그때 아들은 등산화가 없었는데, 마침 아내의 등산화가 아들의 발사이즈에 딱 맞았다.
"옳지. 이거다!"
아들은 아내의 등산화를 신고 나머지 것들은 내 것을 쓰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배낭 2개에 짐을 나누어 메고 한여름 산행에 나섰다.
산행은 백무동을 출발해 한신폭포를 거쳐 세석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천왕봉에 오른 후 장터목에서 하동바위를 거쳐 다시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계획했다. 나도 오랜만에 천왕봉에 오르고 싶었고, 아들에게도 지리산의 깊은 계곡과 천왕봉의 웅장함을 보여 주고 싶었다. 참고로 아들의 첫 지리산 산행이었다.
산행 당일 집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백무동에 도착했다. 예전부터 가끔 찾았던 식당 겸 민박집인 함양집 할머니를 찾아갔는데, 그 사이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끼니는 채워야 해서 산채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우리는 씩씩하게 지리산으로 들어섰다.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난 때였다. 첫나들이 폭포를 지날 때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아들이 신고 있던 등산화의 오른쪽 밑창이 떨어져 덜렁덜렁해진 것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밑창이 헐어버린 것이 문제였다.
응급방편으로 주위의 노끈을 찾아 단단히 묶어 산행을 이어갔다. 하지만 30분쯤 지나자 왼쪽 밑창도 뜯어지더니, 잠시 후 양쪽 등산화 밑창이 완전히 떨어져 버렸다. 순간 나는 판단의 기로에 놓였다. 포기하고 내려갈 것인지, 아니면 노끈으로 밑창과 등산화를 묶고 산행할 것인지 말이다.
길고 험한 한신계곡을 생각하면 내려가는 것이 응당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들에게 포기하는 뜻을 넌지시 내비쳤다. 그러자 아들은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까워서 못 내려가요. 일단 줄로 꽁꽁 묶고 올라가요!"라고 했다. 어리게만 보였던 아들이 고맙고 대견해보였다.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아들이 이보다 더 어린 시절, 광양 백운산에 오를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내비쳐 그만 내려갈까 물어봤더니 아들은 이때처럼 "포기하면 아쉬울거라며 좀만 더 힘내서 가자"고 했다.
다시 한번 노끈으로 등산화를 단단히 고정하고 세석대피소로 향했다. 완벽하게 묶인 게 아닌지라 밑창은 계속 덜거덕덜거덕했다. 분명 대피소에만 도착하면 본드가 있을 거라 믿으며 10분마다 멈춰서 줄을 묶고 매기를 반복했다. 세석대피소까지 오르는 길은 정말이지 너무나 힘들었다.
대피소에 도착해 자리를 배정받고 나는 직원분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는 내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정말 이 상태로 여기까지 올라온 거냐면서 걱정 반, 격려 반 섞인 표정을 지었었다.
하지만 세석대피소에는 본드가 없었다. 믿었던 해결법이 없어져 어찌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그는 나사못과 전동 드라이버를 가지고 와서 등산화 밑창을 나사못으로 고정해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바닥 재질이 생고무라서 나사못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몇 차례 이곳저곳을 시도하고, 신발 안쪽에서 넣는 것도 시도했는데 모두 허사였다.
난감함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당황해서 정신도 멍해졌다. 천왕봉을 못 가는 것은 둘째 치고, 내려가는 것도 문제였다. 그때 직원분께서는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한 우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보수는 안 될 것 같네요. 제 등산화를 신고 조심히 내려가세요. 다행히도 아드님과 제 발사이즈가 같네요."
고마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국립공원 직원에게 등산화는 생명과 같은 것일 텐데, 그는 곤경에 처한 탐방객을 위해 자기 등산화를 선뜻 내준 것이다. 그때의 가슴 벅찬 고마움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이 모두 해결된 것처럼 홀가분했다. 아들과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미역국과 함께 저녁밥을 해치웠다. 흔한 즉석 미역국이었음에도 아들은 "제가 지금까지 먹어봤던 미역국 중에 최고입니다"라고 했다.
다음날 아들과 나는 빌려주신 등산화를 신고 장터목을 지나 천왕봉으로 향했다. 장터목을 지날 때쯤엔 비가 내려 잠시 처마에서 비를 피하기도 했다. 천왕봉에 올랐을 때는 사방이 곰탕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곰탕 배경으로 정상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마저도 행복했다.
친절한 직원분 덕분에 아들과 나는 무사히 지리산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빌려주셨던 등산화는 깨끗하게 세탁해 대피소 생활에 필요할 법한 몇 가지 것들을 함께 동봉해 다시 보내드렸다. 아들은 직접 감사의 편지를 적어 드리기도 했다.
감사했던 국립공원 직원분께
지금 같으면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감사하다는 글을 남겼을 텐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정말 감사한 분인데, 아직도 지리산에서 근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6년 전부터 다시 시작한 산행. 지금도 가끔 세석대피소를 지나지만, 얼굴도, 성함도 기억나지 않아서 안부도 못 물어보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혹시 세석대피소나 그 주변에 근무하시는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월간 산을 통해 연락해 주세요. 다시 한번 따뜻한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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