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이 고용연장 돼선 안 된다[시평]

2023. 10. 2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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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연금 파탄 막을 정년연장 발상
소득 공백을 월급으로 메우면
배보다 배꼽 커지는 현상 발생
60세 이후 생산성 유지가 본질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필수
고용 유연성 확보가 선행 과제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고령사회로 들어서고 있다. 2022년 기준 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고,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가 곧이어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이러한 인구의 초고령화에 따른 심각한 사회문제도 대두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가장 높은 수준이며, 기대수명의 증가로 인해 퇴직자의 연금수급 기간이 장기화해, 공적연금 재정 수지의 급속한 악화도 예견된다. 더 큰 문제는,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인해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급속하게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으로 정년 연장이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래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이에 앞서 필요한 노동시장의 개혁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최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키로 한 수급개시 연령을 68세로 더 늦추는 대안을 제시했다. 연금 기여율 인상과 함께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높여 연금의 재정지출을 통제하자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는 법정 정년인 60세부터 8년의 소득 공백이 발생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퇴직자의 생활 안정에 도움을 주는 제도로, 공적연금의 취지에서 볼 때 이 같은 소득 공백은 심각한 결함이 된다. 조기 퇴직연금을 활용해 감액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게 사실이지만, 장기간 보험료를 내고 정년퇴직을 한 사람이 연금 전액을 못 받는다면 이는 심각한 취약점이다.

연금 수급개시 연령 상향 조정에 대해 가장 적절한 대응 방법은 그에 상응하는 정년 연장이다. 특히, 저출산·고령사회로 넘어가면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는 현실을 고려하면, 60세 이상 고령인구의 지속적인 경제활동 참여는 노동시장의 수요에 부응하는 적절한 노동 공급 대책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높이는 데 맞춰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문제가 있다. 퇴직자의 연금 소득 공백을 돈이 훨씬 더 드는 월급으로 메우는 문제 때문이다. 따라서 정년을 연장하려면 60세 이후에도 근로자가 보수에 걸맞은 생산성을 가지고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되도록 노동시장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하나의 대안으로, 정년 연장 이후 고령 근무자의 보수를 이전보다 낮게 책정하는 임금피크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고령 근무자의 업무 능력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급한다는 정책의 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단순히 고용을 연장하는 효과만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대법원이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을 차별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시함으로써 이를 적절한 대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정년 연장에 앞서 다음과 같은 필수적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첫째, 60세 이후 퇴직자 중 필요한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재고용 제도를 우선 시행할 필요가 있다. 특별한 기능이나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무의 경우 해당 업무를 수행할 근로자를 재고용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둘째, 민간부문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본격적으로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혁을 시행해야 한다. 현재의 직무 및 성과 체계에서는 고령자를 재고용해도 그들이 생산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직무가 제한적이다. 따라서 고령자 재고용 효과를 광범위하게 실효적으로 창출하기 위해서는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연공서열에 따른 위계적 조직 체계를 개혁하는 일이다. 연차에 따라 승진하고 계급에 따라 관리·통제하는 관리자 중심의 조직 체계를 수평적이고 유연한 과업 중심의 팀 체계로 바꾸는 것이다. 능력과 생산성에 따라 승진하고, 저성과자는 퇴출시키는 유연한 고용 체계도 필요하다. 고임금·고위직 고령자의 정년 연장은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긴커녕 동맥경화와 같은 현상을 불러올 뿐이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신세대들과 위계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인 동료로서 고령자가 함께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정년 연장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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