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의 교훈…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한겨레 2023. 10. 2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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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의학과 서사]김준혁의 의학과 서사(78)
‘빅 베이프: 쥴의 성공과 몰락’, 헬스케어 기술의 명암
전자담배는 기존 흡연의 문제점을 해소해 흡연자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기기를 목표로 개발됐다. 전자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 픽사베이

비흡연자라서 그런지, 나는 전자담배에 관심이 없다. 주변에서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것을 보는 것이 친숙해지긴 했지만, 내 일이 아니긴 하다. 공부하면서 전자담배가 기존의 흡연을 대체할 수 있는지와 그를 뒷받침하는 윤리적 논거들을 제시한 논문을 본 적은 있으나, 흡연 자체에 대한 거리감 때문인지 다른 자료나 논문들을 열심히 찾아보지는 않았다.

물론 출신이 출신인지라, 흡연과 관련된 논의를 들을 일은 많다. 흡연은 기본적으로 입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치아와 잇몸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니까. 하지만 나에게 흡연은 나쁜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 여기까지였지 별로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이런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빅 베이프: 쥴의 성공과 몰락’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전자담배의 흥망성쇠에 관심이 생겼다. 이 다큐멘터리는 전자담배의 아이폰이라고 불렸던 쥴의 상승과 몰락에 관한 이야기로, 처음 개발부터 현재 처한 상황까지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 있다.

내가 쥴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 것은, 그 서사가 헬스케어 기술 또는 기기들의 운명에 관한 하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쥴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목적(“흡연으로 인한 질병의 감소”)으로 개발되어, 고군분투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그리고 과도한) 확장은 결국 기기와 회사 자체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그 과정에서 처음의 목표는 어딘가로 사라진다. 무엇보다 쥴의 이야기는 우리가 의료윤리에서 딜레마라고 부르는 것, 즉 갈등 상황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도 문제가 벌어지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선 쥴의 성장 서사는 아주 간략히만 다루려 한다. 이어서 쥴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검토하여, 이를 헬스케어 기술 일반에 적용하고자 한다. 나는 기술이 기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술이 또 다른 문제를 도입하는 점을 살펴야 한다. 이 부분을 쥴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도대체 쥴이 뭐지?

쥴 본체와 액상. 현재 쥴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상태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쥴은 유에스비(USB)처럼 생긴 전자담배로, 정확히는 니코틴 액상을 기화시켜 연기를 들이마실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개발자인 제임스 몬시스와 애덤 보웬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상품 디자인을 전공했고, 연구 과정에서부터 흡연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흡연의 문제란, 기존의 방식으로 담배를 태울 때 여러 유해 물질이 같이 만들어지고 흡연자는 이를 들이마셔야 한다는 데 있다. 특히 여러 제1군 발암물질을 들이마시게 되므로 흡연은 폐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나쁜 냄새나, 앞서 언급한 잇몸 질환 등은 덤이다.

제임스와 애덤은 담배를 직접 태우지 않지만, 흡연의 이점은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자 했다. 흡연의 이점이라고? 흡연 과정에서 흡수되는 니코틴은 긴장을 완화하며, 흡연은 사람들 간의 유대와 교류를 만드는 하나의 의식처럼 기능한다. 둘은 궐련형 담배처럼 매끈하게 생겼지만, 태워서 작동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니코틴을 공급하는 장치를 개발하는 데 전력했다.

이미 스탠퍼드를 졸업할 때 시안을 만들어 냈던 두 사람이었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기기를 만드는 데까진 오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디자인이나 방식은 많이 바뀌었고, 결국 현재 형태의 액상 기화형 기기를 개발하여 여기에 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들은 쥴이 흡연자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으며, 자신들이 거대 담배회사에 대항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창업 초기에 함께 했던 이들 또한, 그들의 믿음을 공유했다.

그다지 시장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던 쥴은 갑자기 급성장했다. 쥴 사용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하나의 밈이 되면서 십 대와 이십 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간 것이다. 쥴은 최초의 데카콘(기업가치가 100억 달러를 넘어선 스타트업)이 되었다. 쥴은 흡연을 대체하며 사람들의 건강을 지킨다는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쥴은 빠른 성장을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걸었고, 자신들이 적이라고 생각했던 거대 담배회사의 투자를 받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기쁨도 잠시, 십 대 쥴 사용자가 급증한 것과 쥴 사용자 중 호흡기 질환을 겪고 심지어 사망한 사례가 언론을 타고 빠르게 확산하면서 쥴은 공적이 되었다. 쥴 확산을 반대하는 운동이 시작되고 쥴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 만들어졌다. 시장 상황이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창업자이자 개발자였던 제임스와 애덤은 회사를 떠나야 했고, 대신 쥴의 방향타를 잡은 것은 거대 담배회사였다. 결국 최후에 웃은 것은 그들, 담배회사였다.

쥴이 처한 딜레마 세 가지

언급한 것처럼, 의료윤리학자로서 나에겐 쥴의 사례가 무척 흥미롭다. 그것은 딜레마 상황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어떤 내용인지 한번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다.

첫째 “해로운 물질이 문제다” 대 “중독 자체가 문제다.”

쥴은 니코틴(정확히는 솔트니코틴)을 기화시키는 기기이므로, 궐련형 담배를 태웠을 때 발생하는 유해물질들을 사용자가 흡입하지 않는다. 쥴을 개발했던 제임스와 애덤의 목표도 여기에 있었다. 해로운 물질들 없이, 흡연 행위의 좋은 점만 취하자. 흡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발암물질을 포함한 유해 물질뿐이라면, 쥴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전자담배 관련한 호흡기 질환은 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임의로 쥴에 넣은 대마초 성분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이나 경화제로 사용한 비타민 이(Vitamin E)가 폐에 쌓여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니코틴 자체의 중독성 또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가져오는 심리적 영향을 걱정한다. 쥴은 기존 담배를 대체할 수 있는 기기가 되기 위하여, 니코틴 흡수량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택했다. 다시 말해 쥴은 기존 담배만큼(또는 냄새 등 부정적인 영향이 없어졌으므로 기존 담배보다 더) 중독적이다.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그것이 없을 때의 심리적 불안감이나 정서적 하강 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더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주변에 불쾌감을 야기하지 않으며 기존 담배처럼 기침 등으로 인해 사용을 제한하지 않아도 되는 쥴은 중독의 쉬운 길을 제공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해로운 물질을 줄이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둘째 “이미 흡연하고 있는 성인을 도울 수 있다” 대 “청소년에게 감염병처럼 퍼졌다.”

쥴은 목적상 이미 흡연하고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대체물을 제공하고자 했고, 이 목적을 위해 기존 담배에서 유해 물질을 제거하려 했다. 그 결과 담배에서 쥴로 갈아타고, 이를 ‘금연’의 성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큐멘터리 ‘빅 베이프’에도 여럿 등장한다. 이것이 폐암 및 흡연과 관련된 질병 발생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쥴은 흡연을 줄이는 효과적인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쥴이 일시적으로 거두었던 엄청난 성공은 십 대들에게 문화 현상으로 다가갔던 데 기인한다. 이것은 그동안 계속 감소해 오던 십 대 흡연율의 흐름을 뒤집는 결과를 낳았다. 소셜 미디어에서 쥴을 사용하는 사진과 영상이 멋진 것으로 여겨지면서, 미국의 십 대는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쥴이 십 대들에게 퍼져나가면서 갑작스러운 수요 증가를 맞지 않았더라면 기업은 이전에 도산할 가능성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적어도 다큐멘터리는 그런 식으로 그리고 있다). 쥴이 아무리 유해 물질 함량이 적다 해도, 십 대의 사용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쥴 또한 전자 ‘담배’이고, 그 사용은 흡연이니 말이다. 회사도 십 대의 사용을 막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이긴 했다. 하지만 금연 교육은 오히려 쥴을 홍보하는 식으로 진행되면서 역효과를 낳았고, 구매 인증 시스템은 불완전하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일부 흡연자의 건강을 위해 십 대가 중독되는 것은 괜찮은가. 물론 쥴의 확산은 일부 흡연자의 폐암 등으로 인한 사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가 다음 세대의 중독이라면, 이를 받아들여도 될까.

셋째 “이미 나타난 부정적인 결과들만으로도 금지에 충분하다” 대 “그것을 잘못 사용한 사람들이 문제일 뿐이지, 쥴 자체가 해로운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쥴이 갑작스레 비난을 받게 된 것은 2019년 쥴 사용자 중 일부가 호흡 곤란을 호소하면서 응급실에 실려 갔고,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증거에 의하면 이것은 쥴 기기나 니코틴의 문제는 아니고, 비인가 액상을 사용하다가 벌어진 일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간단히는 이런 기기를 원래 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 이들이 잘못이지, 쥴 자체는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쥴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런 방식의 사용은 가능하지 않았다. 이때 쥴이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는 쥴이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까.

대표적인 철학적 딜레마인 경차 문제(trolley problem). 열차가 다섯 명을 치려 한다. 지나가던 당신, 레버를 당기면 열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지만 거기에 있는 한 사람이 죽는다. 레버를 당길 것인가?

헬스케어 기술이 겪을 필연적 진통

결국 쥴은 그들이 부정하고 넘어서려 했던 거대 담배회사에 팔려버렸다. 이로써 앞선 논의들은 무의미해진 감이 없지 않다. 흡연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던 제임스와 애덤의 꿈은 결국 연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려는 전통 담배회사다. 전자담배가 기존 궐련형 담배에 비해 사용자에게 매우 낮은 양의 발암물질을 전달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기기가 끌어들인 새로운 문제들에 대해선 답해지지 않았고, 담배회사의 전력을 보았을 때 이런 문제들이 심각한 수준에 (즉, 정말로 사용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피해를 직접 일으킨다는 것이 정당화될 때) 이르지 않는 한 이들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여기에서 헬스케어 산업이 필연적으로 겪을 진통을 본다. 건강 또는 생활에 이롭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기술들과 제품들은 계속 출시될 것이다. 그중 우연히(또는, 의도적으로) 유행을 타거나 흥행하는 기술과 제품도 나올 것이다. 건강도 향상하면서 멋진 기술,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그것은 기술이 제시하는 이점을 지니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함께 도입한다(예외는 거의 없으며, 심지어 무해한 것처럼 보이는 물질이나 기술도 의존성이나 비용, 접근성 등의 문제를 지닌다). 즉, 새로운 기술을 대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은 그 기술이 기존의 제품이나 방법이 지니고 있었던 문제를 풀었는가 하는 사실만이 아니다. 우리는 그 기술의 새로운 문제들을 생각해야 하고,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것이다. 쥴이라는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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