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없애고, 300m 핸드레일…장애 차별 없앤 모두의 극장
장애·비장애 등 모든 예술인 위한 공간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번 내리실 역은 충정로 모두예술극장 역입니다.”
24일 개관을 앞두고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안내방송이 변경됐다. 2호선과 5호선이 교차하는 충정로역 7번 출구로 나와 35m를 걸으면 국내 첫 장애 예술 공연장인 ‘모두예술극장’이 나온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객들은 8번 출구로 나오면 더 편하다. 엘리베이터 2호기를 타고 올라와 유턴해 20m를 직진하면 극장이다. 다만 시각 장애인이 혼자 걸어 올라오기엔 불편한 점들이 적지 않다. 극장에선 오는 길에 어려움을 겪는 관객들을 위해 ‘픽업 서비스’도 지원한다. 관극 전부터 시작되는 모든 경험에서 크고 작은 불편함을 덜기 위한 시도다.
“공연장의 의미는 ‘모두’라는 이름 안에 다 들어있어요. ‘ㅁ(미음)’은 그동안 장애 예술인들이 사각지대에서 힘들게 예술활동을 해왔다는 의미이고, ‘ㄷ(디귿)’은 이제는 이들이 열린 공간에서 활동하게 됐다는 뜻이에요.” (김형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
모두예술극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설립, 운영하는 공연장이다. 580석 규모의 공연장이던 구세군빌딩 아트홀을 2년 여에 걸쳐 지금의 모습으로 바꿨다. 공간 설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장애 예술 공연장을 만들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이동 편의성’이다. 지상 3층, 지하 5층으로 이뤄진 극장 안엔 250석 규모의 공연장을 비롯해 3개의 연습실, 1개의 스튜디오, 4개의 분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극장은 관객과 예술가들이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구석구석을 손봤다. 층간 이동은 계단이 아닌 경사로를 통해 할 수 있도록 했고, 벽면에는 시각 장애인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300m 길이의 핸드레일을 설치했다.
오세형 장애인문화예술원 공연장추진단 TF(태스크포스) 단장은 “단차가 없는 공간을 만드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건물 안에서의 계단은 단순히 계단이 아니라 구조적, 건축적 문제가 많았고 이러한 점을 고려해 공간을 개조했다”고 말했다.
건물 곳곳엔 점자 안내판이 마련됐다. 화장실을 비롯해 연습실, 스튜디오 등 닫힌 공간에 있는 모든 문턱도 없앴다. 공연장 출입문을 빼곤 모두 버튼을 누르면 열리는 자동문이다. 화장실의 세면대 역시 물, 비누 등이 손만 대면 나올 수 있도록 했다. 분장실 내부엔 휠체어를 탄 채로 샤워를 할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샤워실을 네 개나 마련했다.
공연장 내부도 기존 극장과 모습이 사뭇 달랐다. 무대와 객석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가변형 블랙박스 극장인 이곳에선 휠체어석을 가장 앞줄에 배치했다. 무대와 객석 등 전체 공간을 무단차로 조성했고, 콘텐츠 자막 서비스는 물론 수어로도 공연을 볼 수 있다. 공연 전 공연 전 무대 소품을 직접 만져보며 경험하는 터치 투어(Touch Tour)도 가능하다. 전동 휠체어 충전기와 청취 보조 시스템도 갖추는 등 극장 곳곳에 배리어프리(무장애) 시설을 갖추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김 이사장은 “장애인들에겐 환경이 바뀌면 장애는 없다는 말이 있다”며 “예전엔 장애인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 갈 때 극장에 가기 전 그 곳의 편의시설부터 먼저 검색해야 하고, 화장실 등에서 안내원을 불러 요구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곳에선 장애인이 겪어온 불편함 10개 중 8개가 없어졌다”며 “다만 나머지는 시설을 떠나 장애가 있는 관객에게 사람이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접근성 매니저와 관련 서비스를 통해 보완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모두예술극장에선 장애 예술인의 작품, 장애를 다루는 작품을 시작으로 개관 공연을 이어 나가고 있다. 지적 장애를 가진 배우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호주 예술단체 백투백시어터의 연극 ‘사냥꾼의 먹이가 된 그림자’(19∼22일)와 ‘데모크라틱 세트’(19∼20일)가 관객과 만났고, 다음 달부턴 ‘모두예술주간 2023’(11월 1~12일)을 시작한다. 연극 ‘똑, 똑, 똑’(11월 15~19일), ‘제자리’(11월 24~26일) 등도 개막 예정이다.
국내 최초의 ‘장애 예술 공연장’이라는 수사가 따라 왔지만, 이 공간은 장애 예술인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김 이사장은 “예술은 장애인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비장애인과 함께 통합적 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 지원 사업을 이뤄나갈 것”이라며 “이러한 공간이 이제는 표준화가 돼야 하고, 모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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