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정화의 화사한 시간

두경아 프리랜서 기자 2023. 10. 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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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엄정화의 해라고 말해도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올해 그는 배우로 또 가수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고, 넘쳐나는 팬들의 사랑을 경험했다. 몇 번째인지 모르나 확실한 건 엄정화는 또 한 번의 전성기를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데, 우리나라 영화계에만 존재하는 장르가 있다. 바로 '엄정화(54)표 코미디’다. '홍반장’(2004)부터 '댄싱퀸’(2012), '미쓰 와이프’(2015), '오케이 마담’(2020)까지 모두 엄정화의 천연덕스러운 생활 연기로 웃음을 자아내는 영화들이다. 이들 영화에는 단순히 웃음만 있지 않다. 어딘가 하나씩 빈틈이 있는 캐릭터들은 맞닥뜨린 사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훈훈한 결말을 맺는다. 영화 한 편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기는 것. 10월 11일 개봉한 엄정화 주연의 영화 '화사한 그녀’도 마찬가지다.

"제가 이런 옷(코미디)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직은 많은 관객이 제 영화를 마음 열고 봐주시는 걸 느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이 영화를 코미디로만 생각하고 연기하지는 않았어요. 그동안 맡았던 역할이 고달픔, 삶의 무게를 안에 품은 채로 계획들을 펼쳐나가기 때문에 '그 여자의 상황에 맞게 장면들을 그려나가자’ 생각했죠."

‘화사한 그녀’는 화사한 기술이 주특기인 전문 사기꾼 '지혜’가 마지막 큰 판을 계획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범죄 오락영화다. 엄정화가 맡은 지혜는 사기의 달인이다 보니 상황에 따라 다른 인물로 보여야 했고, 이러한 모습들은 엄정화만의 스타일링으로 완벽히 이루어졌다. 빨간 머리 가발을 쓰고 피어싱을 한 채 배드 걸로 변신하거나 몸매가 드러나는 빨간 망사 드레스를 입고 일명 '모니카 벨루치 스타일’을 선보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엄정화의 연기 욕심도 녹아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는 재미가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저는 사실 특수분장까지 하고 싶었거든요. 누구도 본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요.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은 하지 못했지만요."

영화 속 엄정화는 그룹 걸스데이 출신 방민아와 모녀로 출연한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가수와 배우를 겸하고 있으니, 두 분야 모두에서 선후배 사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존재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이번 영화 OST도 함께 불렀다.

"가수 출신 배우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죠. 전 연기와 노래를 같이 시작했는데 가수로 많은 사랑을 받아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어요. 민아뿐 아니라 가수 활동을 병행하는 친구들도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고요. 분명 가수 출신 배우들에게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카메라 앞에서 아주 유연해요. 뮤직비디오를 찍고 무대에서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잘 아니까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엄정화는 tvN '댄스가수 유랑단’을 통해 자연스럽게 후배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최근 하이볼 대표 위스키 짐빔의 '하이볼 캔’ 광고에서는 르세라핌 멤버 김채원과 댄스 대결을 펼치는 콘셉트를 선보였다.

"어린 친구들을 만나도 저는 스스로를 언니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그들에게 뭔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요즘 관심 있는 건 뭐야?’ '요즘 뭐 들어?’ 하고 묻거나 제가 듣는 것을 공유하면서 친구 같은 느낌으로 편하게 다가가려고 하죠. 제가 언니지만 모르는 것도 많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후배들을 만나고 같이 촬영하는 일이 늘 설레요."

많은 이가 궁금해한다. 5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20대 걸 그룹 멤버와 나란히 서도 지지 않는 엄정화의 비결을.

"음식을 조심하고 있어요. 최근 몇 년 전부터 탄수화물을 적게 먹으려 하고 설탕은 거의 안 먹어요. 설탕과 탄수화물을 줄이잖아요? 그럼 정말 마법같이 몸이 좋아져요. 이 2가지만 줄여도 몸에 질서가 생기는 느낌이고 잠도 잘 자게 되더라고요. 이게 젊어지는 길인가 싶기도 해요. 예전에는 촬영하면서 단 걸 정말 많이 먹었거든요. 요즘에는 설탕을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대체재가 있으니 어려움은 없더라고요."

20대 걸 그룹과 나란히 서도 지지 않는 당당함

엄정화는 올해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과 tvN 예능 '댄스가수 유랑단’으로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에게 인생에서 화사했던 시기가 언제인지 물었더니, 주저 없이 "지금!"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1993년 데뷔해 많은 사랑을 받은 시기도 있었어요. 배우로 살면서 계속 작품을 해나갈 수 있었던 점도 감사하고 행복하죠. 특히 올해는 '닥터 차정숙’을 통해서 정말 큰 사랑을 받은 것 같아요. 차정숙을 응원하는 분들은 엄정화도 응원해주시는 거예요. '우리는 항상 너를 좋아했어’ 하는 응원을 많이 받았죠. 그런 것들로 힘을 많이 얻었어요."

어느덧 데뷔 30년. 가수로 또 배우로 몇 번의 전성기를 경험해본 그가 다시 다가온 전성기를 맞는 기분은 어떨까.

"젊고 어렸을 땐 사랑을 갖고 싶었고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요즘은 쌓아왔던 것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간인 것 같아요. 많은 분의 응원이나 눈빛을 보면 감동스럽고 행복해요. '입때까지 잘해왔네’라는 생각도 들고 상을 받는 느낌이에요."

엄정화는 자신의 꿈이 "좋은 배우"라고 밝혔다. 일 욕심이 많다는 그는 배우로, 가수로 활약할 때 기분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엄정화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어떤 모습일까.

"늘 작품에서 관객들을 이해시킬 수 있고, 어떤 이야기 안에 있어도 그 캐릭터가 보이는 배우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좋은 작품을 만나야겠죠. 보통 저는 시나리오가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을 고르지만,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져도 캐릭터가 살아 있다 싶으면 하게 되더라고요. 그럴 때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촬영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로, 예능으로 또 영화로 쉼 없이 달려온 엄정화. 그의 올해 마무리는 콘서트다. 아쉽게도 그에게는 콘서트를 열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번 콘서트는 그와 팬들에게 특별한 이벤트다.

"2000년대 이후에는 연기에 몰두했기 때문에 콘서트를 준비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또 '누가 날 기다릴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올해 '댄스가수 유랑단’을 하면서 저를 위해서도, 팬들을 위해서도 콘서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20대, 30대, 40대가 모두 담겨 있는 무대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엄정화 #화사한그녀 #여성동아

사진제공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두경아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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