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성 관절염’ 혹은 그 이상.. 생활 속에서 고통 덜어주는 법은
최대한 빨리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하는 상태죠.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 김재윤 원장은 최근 진료한 반려견 ‘폴’(9∙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폴이 받은 진단은 퇴행성 관절염. 그러나, 김 원장은 “보통의 퇴행성 관절염이면 진통제를 복용한 뒤 절뚝거리는 증상을 보이지 않는데, 폴은 여전히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신경 등 다른 원인을 찾기 위해 MRI 촬영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폴의 보호자 김도이 씨도 MRI 촬영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쉽사리 2차 동물병원으로 향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습니다. 최근까지 실직 상태였던 도이 씨는 검사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처지였다고 합니다. 그나마 이제 막 직장을 구한 터라 그는 최대한 빨리 검사 비용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폴이 다리를 절뚝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더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하겠지만, 분명한 건 폴이 퇴행성 관절염을 안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 원장은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퇴행성 관절염을 확인했고, 그래서 진통제를 처방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퇴행성 관절염은 나이가 들어 자연적으로 발생하거나, 유전적으로 골격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돼 증상이 나타납니다. 김 원장은 “엑스레이 사진을 봤을 때 폴은 상대적으로 유전 쪽이 더 관절염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굳이 그 원인을 정확히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퇴행성 관절염은 원인을 찾아내 제거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서입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은 퇴행성 관절염 외에도 폴의 뒷다리를 아프게 하는 원인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도이 씨는 “나이가 들어서 아프겠지,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폴은 그동안 품종 특성상 자주 나타나는 피부병과 귓병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큰 병을 앓은 적이 없었습니다. 한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상황에 닥친 겁니다.
E와 I를 넘나드는, 어쩌면 천생연분일지도 모를 강아지
폴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강아지 시절, 도이 씨의 반려견이 됐습니다. 지인이 키우기 어려워진 사정을 들은 도이 씨가 선뜻 폴을 키우겠다고 나선 겁니다.
처음 폴을 마주할 때가 기억나요. 보통 3개월 정도 된 강아지들은 막 꼬리를 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활달하잖아요. 그런데 폴은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어요. 제가 들어서자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저를 빤히 쳐다보더라고요.
더군다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폴은 도이 씨 곁에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폴의 첫인상은 ‘내향형’으로 여겨졌지만, 그 생각은 편견이었습니다. 같이 살면서 폴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폴은 조용히 앉아 있다가도, 어느 때는 여느 강아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폴짝폴짝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강아지도 MBTI 검사를 할 수 있다면 어쩌면 E와 I 사이를 넘나들 것 같다고 말하자, 도이 씨는 “맞다. 그게 내 성격과 매우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폴이 도이 씨 인생 첫 반려견은 아닙니다. 도이 씨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키우던 강아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도이 씨가 홀로 책임지는 첫 반려견은 폴이 처음이었다고 해요. 그만큼 첫 반려견을 잘 키워보고자 하는 의지도 강했습니다. 그는 “공부하면서 키우는 느낌이었다”며 “특히 품종 특성상 덮여 있는 귀를 잘 관리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폴은 귓병을 자주 앓았습니다. 도이 씨는 “아무리 열심히 귀 청소를 해도 귓병이 잘 나아지지 않았다”며 “결국 덮여 있는 귀를 열어서 공기가 통하도록 할 기회를 여럿 찾아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찾은 방법 중 하나는 잠들어 있는 폴의 귀를 슬쩍 열어주는 방법이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꾸준히 귀를 보호해 주면서 병원에서 주는 약도 함께 사용하자 폴의 귀와 피부는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폴이 나이들수록, 도이 씨의 경험치도 쌓였습니다.
“나이 든 반려견.. 생 마감할 때까지는 편안하도록”
그런데, 폴의 피부병과 귓병에 익숙해질 무렵인 지난 5월 뭔가 이상한 모습이 도이 씨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에는 활달하다 못해 흥분할 정도로 산책할 때마다 뛰쳐나가던 폴이 갑자기 움찔거리며 뒷다리를 잘 움직이지 못한 겁니다.
처음에는 쥐가 난 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조금씩 걸으려고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안 되는 것 같았어요. 뒷다리 쪽이 점점 힘이 빠지고 힘 있게 발을 딛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마킹을 할 때 다리도 제대로 들지도 못했죠.
뭔가 이상함을 느낀 도이 씨는 곧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을 때, 보호자들은 수술을 통한 교정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김 원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는 “퇴행성 관절염은 진통제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관리만 해줘도 남은 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다”며 “굳이 노령견에게 위험한 마취까지 하며 수술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도이 씨는 폴을 괴롭히는 원인을 찾아낼 때까지 폴이 최대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폴을 흥분시킬 수 있는 산책을 자제하고, 폴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는 “폴이 평소에도 내가 발을 만지면 발을 빼며 싫어한다”며 “이런 행동들이 폴의 다리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평상시에도 반려견이 뛰어오르는 등 뒷다리에 무리가 갈 수 있는 행동들을 찾아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침대와 소파 관리였습니다. 폴은 보호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도이 씨가 소파나 침대에 앉으면 따라서 뛰어오르려 했죠. 그때마다 도이 씨는 ‘기다려’라고 말해 폴을 기다리게 한 뒤, 안아서 침대로 올려줬다고 해요.
물론 지금의 방법들 말고 근본적인 치료와 재활을 실시하려면 결국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뒤따라야 합니다. 도이 씨 역시 최대한 빨리 검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가 반려견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자 하는 것이 ‘편안함’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적은 편이 아니라 약을 챙겨 먹고 있어요. 폴도 약을 챙겨 먹는 걸 보면서 한 친구가 우스개소리로 ‘실버타운’이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어쨌든 제가 폴보다는 오래 살 거잖아요. 그러니까 폴을 최대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때까지 책임져주고 싶습니다. 남은 시간은 덜 아프도록 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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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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