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정원에 묻힌 진짜 ‘보물’… 터 크기 추측할 단서 될까
“여러분이 현재 경주 불국사에 오실 때 남쪽 정문을 지나 만나게 되는 진입로 정원은 전통 양식이 아닙니다. 만들어진 지 50년밖에 안된 산책로 정원입니다. 1974년 당시 국내 최초로 생긴 조경 관련 전문교육기관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학생이 2학년1학기 수업과제물로 낸 불국사 조경 프로젝트 안의 아이디어를 정부와 경주시가 채택해 거의 그대로 설계안이 되었기 때문이죠.”
차윤정 불국사박물관 학예실장이 털어놓은 비화에 참석자들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담담하게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이디어를 낸 학생이 놀랄 정도로 신속하게 정원공사가 진행됐어요. 무엇보다 문제는 부근에 묻혀있을 막대한 유적에 대해 전혀 조사를 하지 않고 조경공사를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정원 땅속엔 지금도 모르는 불국사의 원래 규모를 드러낼 수 있는 유적이 상당수 남아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2004년에 옛 불국사관광호텔이 있던 성보박물관 건립 예정 터를 발굴해보니 호텔 자리인데도 고려시대 건물터와 석축, 조선시대 추정 유구 등이 나왔거든요.”
지난 21일 서울 행당동 한양대박물관에서 한국건축역사학회와 불국사박물관, 한양대박물관 공동주최로 열린 불국사복원 50주년 국제학술세미나는 시종 열띤 분위기였다. 복원 전후 비롯된 숱한 이야기들과 각자의 다양한 의견들이 난장처럼 풀려나왔다. 1969~1973년 국내 사찰 문화유산으로서는 처음 국가의 대대적인 지원 아래 진행된 복원 사업의 의미와 가치를 당시 사업에 직접 관여했던 기술자와 건축사가, 현재 불국사 관계자들을 불러 증언과 의견을 듣고 복원사업의 미래까지 조명하려는 자리였다. 그러나 예상을 넘어 고증을 무시하고 복원을 밀어붙인 여러 오류와 실책 등에 대한 신랄한 지적과 재복원 등에 대한 의견들이 잇따라 쏟아져나왔다.
‘불국사 복원 그 후:1973~2023’에 대한 차 실장의 발표는 특히 주목을 받았다. 불국사 들머리 진입로 정원 영역을 전통사찰의 정원 형식과 가람 배치구조에 대한 고려 없이 본전 영역에서 벌인 사전 발굴조사까지 생략한 채 서양 정원풍의 산책로 공간으로 조성한 것은 시대상을 감안해도 명백한 과오라는 참석자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절이 결단해 현재 들머리 정원 영역의 발굴조사와 전통 가람에 걸맞은 정원 얼개의 재조성, 이를 통한 불국사 경역의 규모를 새롭게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세미나에 참여한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970년 불국사 전각 앞 마당을 발굴한 결과 ‘불국사고금창기’에 나오는 구품연지로 추정되는 연못 흔적이 타원형의 자취로 드러났는데도 관광객 집결 공간을 확보해야한다는 등의 명분으로 묻어버린 허물이 재차 지적됐다. ‘불국사 복원의 보존사적 의미’를 짚은 이정아 한양대 공대 연구교수는 절의 역사적 경관에서 지대한 상징성을 지닌 공간으로 발굴과 복원문제를 지나칠 수 없다고 짚었다. 그는 21세기 새롭게 재발굴해 구체적인 유적 윤곽을 파악하고 복원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를 냈다. 이에 대해 당시 복원과 발굴공사에 관여했던 남시진 계림문화재연구원장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주어진 사업 조건 등을 감안하면 최선의 선택과 결정을 했다고 본다. 현재의 절 본전 영역에 대한 관객들의 접근성을 감안해서도 연못을 다시 발굴해 복원하자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차 실장처럼 좀 더 시간을 두고 부분적인 조사를 단계적으로 벌여 구품연지 연못에 대한 사료를 확실히 축적한 뒤 복원을 생각하는 게 좋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남 원장은 “1973년 복원공사가 끝난 뒤 출입이 금지되고 2005년 한미 정상들만 걸어 올라간 청운교백운교 계단 통행을 계단의 원래 용도대로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게 옳다”는 소신을 적극적으로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전각 중창이 끝난 뒤 계속 이어진 시행착오의 단면들도 처음 공개돼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차 실장은 불국사 극락전 전각 뒤쪽에 법화전 터라고 표지판과 설명서에 버젓이 명시된 유적 명칭이 사실상 허구라고 단정하면서 이런 명칭은 아무런 역사적 고고학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제강점기 절터에 손을 댈 당시부터 건물터는 나오지 않았고, 다른 유적의 석물과 주춧돌 같은 것들을 그냥 놓아두었던 곳인데 착오로 법화전이란 엉뚱한 명칭이 붙었다는 것이다. 옛 집터로 단정하고 복원하자는 말이 나올정도로 명칭에 대한 오해가 번져 속히 바로잡아야 한다는 쪽으로 참석자들은 의견을 정리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한양대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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