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살에 치매 가족 돌봄…단 3시간 휴식까지 뺏으려는 나라
“아픈 사람이 서울시청서 시위라도 해야 하나”
예산 삭감에 사회서비스원 요양보호사 줄퇴사
“아픈 사람들이 시청 앞에 가서 시위라도 해야 하나? 살 만큼 살았으니 고생하다 죽으라는 건지 뭔지….”
89살 장석준씨는 말을 흐렸다. 자신의 몸도 성치 않지만 치매 걸린 80대 아내가 더 걱정이다. 아이 대하듯 어르고 달래야 밥 한술씩 겨우 뜨는 아내를 장씨 혼자 돌보기엔 역부족이다. 병원에서 처방약을 받아 오거나 이발소에 가 머리를 다듬고 싶어도 아내를 홀로 두고 나갈 순 없다.
그나마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 강동종합재가센터 소속 요양보호사인 박상희씨가 찾아오는 3시간만이 장씨가 유일하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박씨마저 없었다면, 아내의 돌봄은 고스란히 자신과 70대 처제의 몫이었을 것이다.
요즘 장씨는 불안하다. 박상희씨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박씨 자신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올해 서사원 예산을 대폭 깎고 서사원 산하 12개 종합재가센터를 5개로 통폐합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8월엔 보건복지부가 내년도 전국 16개 시·도 사회서비스원 운영비 예산으로 요청한 133억4300만원을 기획재정부가 전액 삭감했다. 이대로면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들도 사회서비스원 운영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 서사원 통폐합에 요양보호사 줄퇴사
박상희씨는 이런 변화를 몸으로 절감하고 있다. 서사원 소속 요양보호사는 보통 1회에 3~4시간씩 하루 두차례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돌봄 제공 시간 사이 남는 시간엔 강동센터에 복귀해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8월 말 강동센터가 사라져버렸다. 관련 법에 따라 사회복지시설이나 장기요양시설은 휴업 또는 폐업을 할 때 의무적으로 3개월 전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강동센터는 그런 절차도 없이 시설 철거가 이뤄진 것이다.
돌아갈 곳이 사라진 박씨와 동료 요양보호사들은 이제 돌봄서비스 중간 남는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한다. 박씨는 “초기엔 사라진 센터 자리에 종이 상자를 깔고 동료들과 대기했다. 요즘엔 시간이 되면 집에 다녀오거나 애매하면 카페에서 대기한다”고 말했다.
‘고용안정’이 보장될 거란 기대와 ‘공공부문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서사원의 운영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이미 일을 그만둔 동료도 여럿이다. 남은 건 허탈함이다.
박씨는 “7월에만 7명이 그만두고 강동센터에는 4명만 남았다”고 했다. 서사원 전체로 보면 고용 불안 때문에 올해 퇴사한 직원만 60명이 넘는다.
그만두는 요양보호사가 많아지면서 서사원으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는 이용자도 줄었다. 박씨는 8월31일에 서비스가 종료된 치매 노인을 계속 걱정했다. “하루에 두번 약을 먹어야 하는데 (당사자는) 까먹을 수밖에 없어 옆에서 챙겨야 하거든요. 아직 요양등급이 안 나와 민간기관 서비스도 못 받고 일시적인 돌봄에스오에스(SOS) 서비스를 신청해야 했어요.”
서사원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이용자들의 신뢰는 여전히 두텁다.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원, 공공성과 노동권을 진단하다―사회서비스원 이용자·노동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성동센터 이용자 ㄱ씨는 “지난해 12월 서사원을 이용하면서부터 아버지의 일상생활이 점차 나아졌다. 요양보호사의 빠른 판단 덕분에 긴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던 것도 여러번”이라고 했다.
ㄱ씨는 “아버지가 제대로 된 돌봄서비스를 받게 된 건 적은 인력으로 많은 어르신을 돌봐야 하는 민간과 달리 (서사원은) 일하는 분들이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는 공공돌봄 체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시장에 돌봄 떠넘기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의 복지 정책은 공적 사회돌봄망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달 1일 ‘2023년 시·도 사회서비스원 표준운영지침’을 바꿔 사회서비스원이 ‘민간기관 지원사업’을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사업 기본방향도 ‘민간협업을 활성화’하고 ‘민간 사회서비스 지원 기능을 확대’한다고 개정했다.
서사원이 지난달 6일 서울시의회에 보고한 ‘혁신안’ 역시 사회서비스원의 역할을 ‘민간 지원’에 한정하는 걸 뼈대로 한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한다고 명시한 모법(사회서비스원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지침 개정”이라며 “입법 취지를 무력화하고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서비스 시장화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복지부는 100억원의 예산을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벤처투자가 관리하는 모태펀드에 출자해 인공지능·로봇을 기반으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육성, 투자할 방침이다.
여기에 민간투자자가 민간운용사에 40억원을 추가로 출자해 총 20개 기업에 7억원씩 투자한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이는 ‘사회적 금융을 통한 사회서비스 투자를 확대’해 민간 공급자를 키운다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 민간에 돌봄 맡긴 영국·일본도 실패했는데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사회서비스의 민간 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이처럼 ‘수익’을 앞세워 서비스체계 전반을 산업화하려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돌봄’이란 필수재를 시장에 맡기면 결국 ‘돌봄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돌봄의 적정한 질이 보장되기도 어렵다. “수가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민간기관이 이익금을 가져가려면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인건비를 줄이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사회서비스원 정책을 도입할 때 비용 상승은 불가피했다. 이는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필요한 비용을 사회가 감당하겠다는 합의를 만드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라며 “전세계적으로도 민간에 돌봄을 맡겼을 때 돌봄의 질이 좋아진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춘숙 민주당 의원의 요청으로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7월 조사한 ‘돌봄서비스의 시장화 성패 해외사례’ 보고서를 보면, 영국은 1990년대 민간 영리기관이 사회서비스를 공급하게 되면서 서비스 수급자 선별, 허위·부정수급, 서비스 질 악화, 공급자 파산으로 인한 요양시설 폐쇄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에서도 시장의 과잉경쟁 체제로 인해 요양급여 허위·과다 청구 사례가 늘고 종사자 임금 수준도 낮아지면서 인력이 부족해졌다. 피해는 결국 해당 시설 이용자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이러한 흐름이 싼값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려는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앞서 서사원은 소속 요양보호사들이 민간에 견줘 높은 월급을 받아간다며 근무시간을 줄이고 시급제로 임금을 지급해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안을 공개한 바 있다.
배 대표는 “문제는 좋은 일자리로서 ‘돌봄노동’에 대해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라며 “정부는 여성이 사실상 공짜로 해왔던 ‘그림자노동으로서 돌봄노동’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돌봄이 없으면 당장 일상이 유지되기 힘든 이들에 대해 국가 차원의 성찰이 우선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요양보호사 박상희씨는 “(서사원은) 강동구 안에서도 임대아파트에 사는 분들에게 주로 돌봄서비스를 제공해왔다. 바퀴벌레가 쏟아지는 집도 있어 주민센터에서 약을 얻어다 준 적도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안대로 사회서비스가 ‘고도화’되면 과연 이들도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영국과 일본의 사례는 ‘그렇지 않다’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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