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노벨 화학상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 노벨 물리학상을 시작으로 10월 4일 저녁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매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스웨덴의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에서 물리, 화학, 생리·의학 등 과학분야와 문학, 평화상 등을 시상하고 있다. 오늘은 노벨 화학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유산의 94%(약 440만 달러)를 기부해 1895년 설립된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1901년 물리학, 화학, 문학, 생리·의학, 평화 등의 5개 분야의 첫 시상을 시작했으며, 노벨의 유언과 무관하게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1969년 스웨덴 중앙은행상인 경제학상이 추가됐다. 따라서, 노벨 경제학상은 엄밀히 말하자면 노벨상이 아닌 노벨 기념상이다.
노벨 화학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화학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개발을 한 사람에게 수여된다. 122년 동안 총 194명에게 수여됐으며, 세계 대전의 여파와 적당한 수상자가 없는 7년을 제외하고 매년 시상됐다.
수상자의 나이는 50-65세가 절반에 가까우며, 90년대 이후에는 65세 안팎으로, 30대의 연구업적으로 60대에 수상한다는 얘기도 있다. 여성 수장자는 7명으로 퀴리부인이 포함돼 있다. 국적별로는 미국(61)이 독보적이며, 독일(30)과 영국(27) 등이 뒤를 따르고 있고, 일본도 7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흥미롭게도 2002년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는 질량분석기관련 업적으로 학사학위 소지자임에도 수상한 바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없는데, 1987년 제임스 크램(영), 장 마리 렌(프)와 함께 호스트-게스트 화학에 대한 업적으로 수상한 찰스 존 피더슨은 1904년 당시 대한제국 부산에서 출생해 노벨 위원회의 국적과 무관하게 출생지를 기재하는 규정으로 대한제국의 수상자로 기재돼 있다고 하니 생경한 일이다.
금년에는 양자점(퀀텀닷)관련 연구업적으로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의 문지 바웬디, 컬럼비아 대의 루이스 브루스, 그리고 나노크리스탈스테크놀로지의 알렉세이 예키모프 등 3인이 공동수상했고, 시상은 알프레드 노벨 기념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왕립과학원에서 진행 예정이다.
양자점은 양자구속효과에 의해 나노입자의 크기가 작아지면 밴드갭이 증가하는 소재로서, 예키모프 박사와 브루스 교수가 1980년대 초 처음 발견했고, 바웬디 교수가 1993년 합성법을 개발했다. 양자점 TV를 세계 최초로 상업화한 삼성전자의 기여 부분이 배제돼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는 1966년 KIST, 1976년 한국화학연구원 등 출연연들이 설립되며 유치과학자 사업으로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대학에서도 80년대 초까지 박사학위를 배출하지 못했고, 대기업부설 연구소들도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 IBS(기초과학연구원)가 설립된 지도 이제 겨우 12년을 맞는다. 호사가들은 우리나라의 R&D 예산이 얼마인데 노벨상이 하나도 없냐며 폄하한다. 반세기도 되지 않는 연구개발의 역사는 외면한 채 예산 규모만으로 성과 유무를 논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에서는 연일 '내년 정부 R&D 예산 삭감'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로 가득하고, 노벨상 수상의 시기는 더욱 늦어지겠구나 탄식하는 소리도 늘어간다. 노벨상 수상 여부를 떠나 자원 빈국인 우리의 상황에서 과학기술분야 투자 축소에 따른 후폭풍을 걱정하는 것이리라. 지금 먹을 것이 없다고 내년 농사를 위한 씨앗으로 배를 채우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연구개발은 계절변화에 따라 생장속도를 조절하며 나이테에 그 기록을 고스란히 남기는 나무를 키우는 일과 같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치밀한 조직으로 느리지만 단단하게 자란 떡갈나무만이 고급 위스키를 숙성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우리는 소재 및 화학분야에서 세계 4위와 7위의 논문 실적을 보유하고 있어, 다른 어떤 학문분야보다 노벨 화학상 수상의 가능성이 높다. 지속적인 정부지원과 국민적 관심을 통해 부산 태생의 외국인이 아닌 진정한 토종 한국인의 노벨 화학상 수상을 기대해 본다.
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국가전략기술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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