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부동산 정책[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26)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이어 서한을 띄우는 윤형중입니다. 지난번엔 주로 당신께서 주도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대책의 문제점을 다뤘고, 이번엔 예고한 대로 보유세와 전세대출 정책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 전에 의미 있는 발견을 하나 공유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책을 통해 복기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한 가지 키워드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타이밍’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지만, 이번엔 좀 다른 맥락입니다. 부동산을 다루는 세 가지 정책 수단인 ①대출규제 ②세금 ③주택공급 부문에서 공통적으로 타이밍의 실패가 발견된다는 점이고, 그것들이 전반적인 정책실패와도 직결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발견은 당신의 인식과도 일부 일치합니다.
우선 대출규제와 관련해 당신께선 “억제하기 곤란했던 전세대출은 곧바로 집값 상승의 장작이 되기도 했다”며 “전세대출도 DSR(Debt Service Ratio: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 고민이었는데, 이는 우리 주택시장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만큼 큰 문제여서 장기 과제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러나 DSR은 애초 계획했던 전면 도입 시기인 2019년 12월보다 훨씬 늦어진 2021년 이후로 미뤄졌다”(62쪽)고 후회했습니다. 참여정부 때의 교훈을 얻어 LTV(Loan to Value: 담보인정비율), DTI(Debt to Income: 총부채상환비율)를 선제적으로 강화했고, 그 효과는 즉각적이었지만 본인이 후회했듯 “전세대출, 신용대출, 부동산 기업에 대한 사업자 대출 등이 커지는 풍선 효과를 막지는 못”(62쪽)했습니다. 종합하면 필요한 대출규제가 적시에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주택공급에 있어서도 당신께서는 “3기 신도시 결정과 1·2기 신도시의 광역교통망 확충계획을 좀더 빨리 입안하고 실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3기 신도시는 2018년 말, 광역교통 강화는 2020년 초에야 계획을 발표했다”며 “이를 1년씩만 앞당겼다면 공급 불안 심리를 좀더 일찍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본다”(65쪽)고 밝혔습니다. 도심 주택공급에서도 개발이익 환수와 재개발 활성화 사이에서 조기에 추진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주택공급이란 원래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렵지만, 공급 정책이라도 빨리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을 되짚은 것이었죠.
세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께선 2019년 말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보유세를 강화하다가 후퇴한 사례를 언급하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동산 세제는 신뢰를 잃어버렸다. 부동산 세금을 시끄럽게 만듦으로써 세금 불복 심리만 높이고, 버티면 된다는 믿음을 주고 말았다”(153~154쪽)고 평가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당신의 평가가 의아합니다. 이미 부동산 시장에 불이 붙은 뒤에 세금을 강화하면 조세저항이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가 맞물리면 올린 세금을 다시 내릴 수밖에 없고요. 오히려 부동산 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임기 초에 부동산 세제 로드맵을 만들고 이행하지 않은 점이 패착이었습니다. 정리하면 세금 역시 시점이 문제였습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핵심 원인을 ‘타이밍’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두 가지 질문이 뒤따릅니다. 첫째는 왜 타이밍에서 실기했는가이고, 둘째는 앞으로 타이밍에 실기하지 않으려면 어떤 원칙을 세워야 하는가입니다. 이를 정책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전세대출의 증가를 왜 방관했을까
우선 공급 정책의 타이밍을 왜 놓쳤을까요. 당신은 책에서 과도한 공급 불안론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합니다. 통계적으로 문재인 정부 초기에 주택 공급량이 적지 않았는데도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공급 부족론을 제기하며 국민 사이에 불안감을 증폭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정책과 정치는 야당이나 보수 언론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국민의 마음과 어려움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주택공급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잘한 것도 있습니다. 당신은 “문재인 정부는 모두 3600만 평의 공공택지를 지정했는데, 이는 이전 두 정부가 지정한 물량의 1.6배에 이르는 규모”(122쪽)라고 평가했습니다. 적정한 규모의 주택을 일관되게 공급하기 위해서도 공공택지를 미리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공공택지를 민간에 마구 매각할 수도 있으니, 앞으로도 꾸준한 관심과 견제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도심 주택공급은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고 경기의 영향도 받으므로 원래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당신은 이런 조정에 더 일찍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음을 후회했습니다. 다만 초과이익환수제를 유연하게 적용해 재건축을 억지로 막지 않고, 사업성이 부족한 노후 주택 밀집 지역엔 공공지원을 늘려 재개발을 촉진하자고 제시한 ‘원칙’은 앞으로도 중요한 지침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대출규제에 있어선 정책실패가 미친 영향이 컸습니다. 특히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를 막지 못한 점이 뼈아픈 패착입니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서울의 갭투자가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35.6%에서 2021년 43.5%로 증가했습니다. 갭투자의 규모가 충격적인 수준이었죠. 문제는 이런 갭투자를 정책적으로 지원했다는 점입니다. 금융권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2017년을 기점으로 급증했습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엔 20조원 정도에 불과했던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2017년 48조6000억원, 2018년 71조7000억원, 2019년 98조7000억원, 2020년 132조3000억원, 2021년 162조원으로 급증했습니다. 2022년 말엔 170조5000억원에 이르렀죠. 집 살 돈이 없더라도 전세 끼고 집을 안 사면 ‘벼락거지’가 된다는 말이 세간에 파다하게 퍼질 때까지 당시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어떤 경고음도 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많은 전문가도 서민 주거 지원으로 여겼던 ‘전세대출’과 ‘전세보증’이 집값 폭등의 중요한 원인이고, 이후 전세사기의 중요한 요인이란 점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당신만을 탓할 순 없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책임을 묻는 이유는 당신은 그 어떤 전문가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2017년부터 투기과열지구의 3억원 이상의 주택을 사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자금조달계획서’(2020년엔 대상 확대됨)를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이 통계를 분석하면 전세대출이 가진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적시에 전세대출을 줄이고, 월세 보증금 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면 서민의 주거 지원을 유지하면서도 저금리 시기에도 집값 상승폭을 줄이고, 고금리 시대에 전세사기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보유세에 대한 평면적인 시각
당신께서는 보유세를 주로 포퓰리즘과 함께 언급했습니다.
“집값이 올라 민심이 흉흉해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얘기들이 있다. ‘이것만 하면 될 텐데 그걸 안 해서 집값을 못 잡는다’는 얘기다. 대표적으로 ‘시장에 그냥 맡겨두면’ ‘보유세만 제대로 올리면’ ‘반값 아파트만 많이 공급하면’ 하는 식이다. 원가 공개만 해도 집값을 낮출 거라는 얘기도 있다.”(256쪽)
‘종합부동산세의 설계자’인 당신의 보유세에 대한 시각은 너무 평면적이어서 당황스럽습니다. 보유세만으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킬 수 없다고 사뭇 진지하게 꾸짖지만, 저는 국내에서 보유세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이들 중에서 ‘보유세 만능주의자’를 한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보유세만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할 순 없지만,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이미 국내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체계가 누진적이라 보유세 인상론자들의 주장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논리는 당신의 ‘공시가격 인상’ 주장과 상충합니다. 일부 고가주택, 다주택자에게만 핀셋으로 증세하는 것은 당신의 표현대로 “국민을 정치적으로 달래는 제스처”(152쪽)에 불과하고, 진정 부동산의 장기 투자수익률을 낮추려면 주택시장 전반의 보유세를 점진적으로 부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올려야 합니다. 그건 공시가격 인상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이렇게까지 보유세에 비판적일까요. 솔직한 이유는 나오지 않으나, 종부세로 인해 정권을 잃었다는 기억이 중요하게 작동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래서 보유세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었던 임기 초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을까요. 보유세 강화는 상대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됐던 임기 초에 추진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가격이 급등한 이후에 시작했습니다. 비유하자면 보유세는 ‘백신(예방주사)’인데, 참여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도 ‘치료제’로 인식한 오류를 범한 셈입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 시기에 보유세라는 중요한 정책 수단을 하나 잃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진적인 국내 보유세 체계를 감안하면 지금처럼 집값이 오른 뒤에 보유세를 인상하면 개인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세 부담 증가와 강력한 조세저항을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보유세라는 정책 수단을 활용하려면 훨씬 세심한 접근이 필요해졌습니다.
상당한 분량을 비판에 할애했지만, 여전히 당신께서 꼼꼼한 복기를 해줘 감사한 마음입니다. 덕분에 저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논의가 다음에 정책을 펼 사람들에게 참고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윤형중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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