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은 PO행' 마침내 지도자로 꽃을 피운 '적토마' 고정운 감독

박찬준 2023. 10. 24.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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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현역 시절, 김포 고정운 감독은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다. 1학년부터 건국대 주전을 꿰찼던 고 감독은 1989년 우선지명으로 신생팀 일화에 입단했다. 첫 해부터 맹활약을 펼치며 신인왕에 오른 고 감독은 1994년 MVP마저 거머쥐었다. 일화의 K리그 최초 3연패를 이끄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저돌적인 플레이로 '적토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국가대표로도 맹활약을 펼쳤다. 77경기에 나서 10골을 넣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고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의 러브콜을 받았고, 1997년에는 K리거로는 최초로 J리그에 진출하기도 했다.

2001년 은퇴하기까지, 남부러울 것이 없던 현역 생활을 보낸 고 감독은 지도자로 변신 후 빛을 보지 못했다. 2003년 선문대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고 감독은 이후 전남 드래곤즈, FC서울의 코치로 활동했다. 친정팀 성남으로 건너가, 풍생고 감독으로 부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를 데려가겠다는 팀은 없었다. K리그 해설 등을 하던 그에게 비로소 기회가 왔다. 2017년 FC안양 감독으로 부임했다. 16년만에 찾아온 첫 K리그 감독직,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초반 부진을 딛고 후반기 약진했지만, 약속했던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축구에만 전념하고 싶었던 고 감독의 생각과 달리, 경기장 밖에서 흔드는 손이 너무 많았다. 결국 고 감독은 단 한 시즌만에 안양 감독직을 내려놨다.

지도자 은퇴도 고민했던 고 감독에게 K3리그의 김포FC가 손을 내밀었다. 후배들이 K리그를 누비는 가운데, 스타 출신 고 감독 입장에서 K3무대는 자존심이 상할법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고 감독은 그만큼 기회가 고팠다.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축구를 마음껏 펼치고 싶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김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2020년 8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알린 고정운식 축구는 2021년 예상치 못한 깜짝 통합우승 달성으로 첫번째 결실을 맺었다. 김포가 2022년 K리그2 진출을 선언하며, 고 감독에게 K리그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고 감독은 K3리그부터 키워온 선수들을 중심으로 K리그2 무대에 당당히 도전했다. 경험이 없는 선수들인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했다. 훈련장에 가면 공 받는 위치까지 가르치는 고 감독의 목소리가 그라운드를 쩌렁쩌렁 울린다. 고 감독의 목소리는 늘 쉬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과 달리 고 감독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축구계에 잔뼈가 굵은 권일 부단장은 축구 외적인 부분을 살뜰이 챙겼다. 고 감독, 권 부단장, 대표이사가 합심한 '삼두 체제'로 김포는 조금씩 프로 다운 면모를 갖추게 됐다. 피지컬 코치, 비디오 분석관은 물론, 장비 지원 담당까지 생겼다.

김포는 물러섬이 없었다. '공격 앞으로'를 외쳤다. 스타 플레이어 한명 없는 리그 최저 예산의 스쿼드에도, 고정운의 김포는 매력적인 축구를 펼쳤다. 강호들을 잡아내며, 첫 시즌 8위에 등극했다. 가능성을 보인 김포FC는 겨우내 외국인 선수 영입에 많은 공을 들였고, 약점으로 지적된 수비 조직 구축에 힘을 쏟았다. 선수들도 이제 경험이 쌓이며 제법 프로 냄새를 내기 시작했다. 올 시즌 김포는 초반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선두권을 형성했다. 중반 부상자들이 속출하며 흐름이 다소 꺾이기는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리그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으로 불린 김포는 마지막까지 흐름을 잃지 않았다. "플레이오프는 생각지도 않는다"고 했던 고 감독은 선수들을 독려하며, 마지막까지 힘을 짜냈다. 그 결과가 K리그2 입성 2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이다. 김포의 규모, 역사를 생각한다면 기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의 성과다.

고 감독은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은 날,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그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인지, 몸이 축이 나고 말았다. 고 감독은 지도자 변신 20년만에 마침내 자신의 가치를, 능력을 입증했다. 여기까지 온만큼 포기는 없다. 이미 성공 이상의 성공을 거뒀지만, 또 한번 기적을 꿈꾸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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