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이태원 참사 1년…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생각나다
# 1년전 10.29 이태원참사가 터졌을 때 그보다 8년전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가 자동적으로 생각났다. 그때 받았던 정신적 외상(外傷)에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겹쳐져 한동안 우리네를 힘들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일상의 기억은 아주 쉽게 잊힌다. 그러나 트라우마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설령 긴 세월이 흐르고, 행복스런 시간 속에 살고 있더라도 트라우마는 튀어나와 당시의 고통스런 상황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이런 트라우마가 어떻게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또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깊이 느끼게 해주는 영화가 있다.
미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감독으로 만든 2009년 개봉작 <그랜 토리노(Gran Torino)>다. 나이 90이 넘는 지금까지 배우・감독・연출・제작 등 모든 분야에서 혼자 북치고 장구 치며 정상을 달리는 그는 20대 초반에 한국전에 참전했으며, 이 영화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전 참전용사로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주인공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는 인종차별주의자이고 모든 것이 못마땅한 고집불통 노인이다.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데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된 ‘스크루지 영감’ 같은 존재다.
그런 월트에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옆집 몽족 소년 타오가 몽족 갱단의 협박에 못이겨 월트가 가장 아끼는 차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고 집에 들어온 것이다.
월트는 타오를 붙잡았을 뿐 아니라 갱단도 총으로 쫓아냈다. 그러나 복잡한 행정절차 등이 귀찮아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타오를 그냥 돌려보내준다.
어쨌든 여기에 감읍한 타오의 가족들과 이웃 몽족 사람들이 온갖 호의를 계속 보이자, 마뜩해 하지 않던 월트도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교류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진 해피한데, 동네 갱단들이 착한 타오를 조직에 가입시키려고 협박을 하고 타오의 누나를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져 결국 왕년의 용사가 나선다.
사실 그는 한국전때 비록 상관의 지시였지만 17명의 어린 중공군 병사들을 학살한 경험을 갖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사건은 여전히 그에게 죄책감은 물론이고 반복되는 악몽과 불안발작, 까닭모를 분노와 의심과 원망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였다.
월트는 어떻게 하면 타오의 가족을 갱단의 위협으로부터 원천적으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가를 고민한다. 불의를 응징하기 위해 폭력을 또다시 사용할 것인가?
월트는 모처럼 이발과 정장을 하고 갱단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문밖에서 큰 소리로 그들을 부른다. 화들짝 놀란 갱들은 월트가 자신들을 응징하러 온 것으로 짐작하고 각자 무기로 그를 겨눈다.
드디어 서부영화 주인공처럼 월트는 천천히 가슴 안쪽에 손을 넣는다. 마치 권총을 꺼내는 모양새다. 마침내 가슴에서 손을 빼는 순간, 겁먹은 갱들이 먼저 방아쇠를 당긴다. 집중 포화에 그 자리에 쓰러진 월터. 그러나 그의 손은 빈손이었다. 손가락으로 총모양 시늉을 했을 뿐이다.
결국 월트는 상대방이 오인해 자신을 쏘도록 유도하고 스스로 희생양이 돼 가족을 구한 것이다. 조폭들은 다 잡혀가고 마을엔 평화가 찾아온다. 월트가 아끼던 차 ‘그랜 토리노’는 유언대로 타오에게 넘어가 그 소년이 평화롭게 운전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가 끝나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진정한 의도를 알게 된다.
죄책감과 자포자기, 절망적으로 살던 월트가 마지막 순간에 가장 인간적이고 희망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도 용서받고 이웃도 살리는 ‘기적’을 보여주게 한 것이다.
사실 우린 살면서 각양각색의 재난(catastrophe)을 피할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최종적인 대처는 순전히 내 몫이다. 많이 힘들더라도, 아무리 힘들더라도 우리는 이겨내야 한다.
단지 삶의 고통을 경감시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삶에 의미를 부여하여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극복이요 치유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에는 트라우마나 상처를 부추겨 불신과 미움으로 몰아가려는 세력들이 있다. 이겨내야 한다. 우리 마음 속에도 끊임없이 좌절과 포기로 몰아가려는 힘이 존재한다. 이겨내야 한다. 이태원 참사 1년을 맞아 머릿속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떠올려진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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