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출 5일 도전…'냉파'로 싼 도시락, 커피믹스까지 탈탈[만원의 한숨]②
무지출이 끝나도 고물가 속 절약 불가피…'할인 야채·과일' 인기
[편집자주] 2000년 '서민 음식의 대명사' 자장면 평균 가격은 2742원이었다. 만원이 있으면 세 끼를 먹고도 돈이 남았다. 그래서 한때 '만원의 행복'이란 신조어가 유행했으나 이제 까마득한 옛말이 됐다. 2023년 '자장면 7000원'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수중에 있는 돈이 만원뿐이라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고물가 시대를 어떻게 버텨야 할까. <뉴스1>이 집중 진단해봤다. [편집자 주]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오늘도 무지출 성공이네요!"
매일 오후 6시가 넘어가면 유독 활발해지는 카카오톡(카톡) 단체 대화방이 있다.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무지출 도전 성공 여부를 카톡으로 남기기 때문이다. 기자도 질세라 한마디를 남겼다. "저도 오늘 성공입니다". 메시지를 전송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좋아요'와 '최고' 표시를 눌렀다. 1800원짜리 커피 한 잔도 마음대로 사먹지 못한 서글픔이 잠시나마 풀리는 순간이었다.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무지출'에 도전했다. 언제부터인가 출퇴근을 하고 점심만 밖에서 먹어도 하루 1만~2만원이 거뜬히 지갑에서 빠져나간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다.
규칙은 단순하다. 하루종일 한 푼도 쓰지 않으면 된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거지방', '절약방' 등 이름을 가진 카톡 단체대화방에서 몇백명의 사람들이 서로의 지출내역을 공유하며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기자도 활동이 활발한 '거지방', '절약방' 5곳에 들어가 무지출 여부를 인증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집세, 교통비 등 고정지출은 예외로 두기도 한다. 기자의 경우 출근지가 도보로 적어도 2시간 이상 걸리는 탓에 왕복 교통비(지하철 요금 2800원)는 지출 계산에서 제외했다. 다만 추가 이동이 필요할 경우 도보로 대신하는 걸 원칙으로 했다. 평균 6000보 내외를 기록하던 걸음 수가 도전 기간엔 1만~1만3000보가량으로 늘어났다.
◇'무지출'의 기본은 식비…유통기한 지난 커피믹스까지 '탈탈'
무지출을 위해 가장 많이 도전하는 부분은 식비다. 외식을 줄이거나 비교적 값싼 음식을 택하는 등 개인 역량을 발휘해 소비를 줄일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당장 단톡방에 질문하고 유튜브 등 SNS에서 무지출 방법을 검색해도 식비 아끼기를 시작으로 무지출에 도전해보라는 조언이 많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냉파'다. '냉파'는 냉장고 파먹기의 준말이다. 냉장고 또는 식료품 공간 안에 있는 재료로 매끼를 해결하는 것을 가리킨다. 당장 냉장고를 뒤졌다. 6구짜리 계란 1박스, 견과류 믹스, 깻잎, 냉동 대파, 즉석볶음밥 2개 등이 나왔다. 부엌도 뒤지니 회사 엠티 때 받은 즉석식품 육개장과 컵라면도 모습을 드러냈다. 먹을 것이 풍성했던 평소엔 본체만체 했던 음식들. 무지출 도전을 하며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평소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보며 '자취 요리' 기본 재료를 자주 검색한 덕분일까. 생각보다 재료가 풍성했지만 5일간 3끼씩 먹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결국 첫날과 둘째날만 2끼, 나머지 3일은 1끼씩 먹으며 하루를 버텨야만 했다. 오후 일정 소화 중 너무 배가 고프면 견과류 믹스를 까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배고픔을 줄이려면 1끼를 점심에 배당하는 게 최선이다. 도시락은 불가피한 선택지였다. 매일 밤 불안한 마음으로 냉장고를 열고, 인터넷 검색창에 남은 재료로 가능한 요리를 검색 후 미리 요리를 해두는 게 하루 일과가 했다. 기껏해야 계란깻잎만두, 계란파 부침 등 간단한 요리가 전부지만 부엌 정리까지 최소 1시간이 소요되니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부끄러움이었다. 취재원 또는 동료들 대신 공원 벤치의 비둘기와 마주앉아 차가운 도시락을 꺼낼 때면 가까운 분식집, 아니 근처 편의점에라도 들어가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뜯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 1800원짜리 '아아'도 그림의 떡…카페 대신 공용공간 찾아 삼만리
현대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피라지만 무지출에 도전하는 기간엔 사치였다. 저가 프랜차이즈 카페도, 편의점도 갈 수 없었기에 또다시 부엌과 냉장고를 뒤질 수밖에 없었다. 유통기한이 6개월 넘게 지난 커피 분말과 홍차 찻잎을 겨우 발견해 조금씩 소분해 먹는 방식으로 카페인을 보충했다.
카페인 섭취는 어찌 해결됐지만 공간이 문제였다. 집회, 시위 등으로 이동이 잦을 때 잠깐씩 머물며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카페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집회 현장과는 도보로 30분 넘게 떨어져 있어 현실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웠다.
돈을 아끼려면 염치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급할 땐 인근 상가 및 지하철에 들어가 10여분 정도 충전을 했다.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유공간을 찾았다. 공간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만 19~39세 이하의 청년이면 별도의 등록 절차 없이 무료로 이용이 가능해 신세를 졌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공유공간 중 하나를 이용해 본 결과, 오후 2~3시쯤 되면 독서실처럼 20여명의 청년들로 빽빽하게 자리가 채워졌다. 일부 사람들은 자리가 없자 공유 주방에 가서 노트북 작업을 하기도 했다.
◇'챌린지'는 끝나도 절약은 계속
무지출 챌린지는 일주일만에 마무리됐지만 고물가 속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아끼고 또 아껴야 했다. 챌린지 기간이 끝난 직후 텅 빈 냉장고도 채울 겸 근처 대형마트로 향했을 때의 일이다. 오전 10시30분. 오픈하자마자 걸음을 옮겼음에도 야채 및 과일 코너엔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들이 서 있는 곳은 바로 3~4단 높이의 베이지색 카트 옆. 그 위엔 바나나와 오이 등 여러 야채와 과일들이 올려져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기존 가격표 위에 30~40%가량 할인된 가격이 붙어 있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인 것이라는 점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 같은 건 30분도 안 되어서 나가요."
아니나 다를까, 일부 유제품 코너에선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에 대해 최대 50% 까지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물가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자 할인상품 매대는 중간중간 물건을 채워넣어도 대부분 오전 중으로 판매가 마감된다고 했다.
빠르게 하나둘 없어지는 카트 위 물품들. 물건을 고르고 있는 와중에도 제일 할인폭이 큰 바나나와 깻잎을 집어들며 생각했다. 무지출 챌린지는 끝났지만 고물가 시대 생존기는 쉽게 막을 내릴 것 같지 않다고.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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