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에 뻗은 영국의 손...이스라엘 탄생의 단초 [세계사로 읽는 경제]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
인류 최초 종교전쟁 마카베오 전쟁도 이곳
70년 유다 멸망 이후 2000년의 '디아스포라'
흩어진 유대인의 생명줄은 율법과 돈, 네트워크
디아스포라 간 신용거래로 자본력, 교역 키워
전쟁비용 충당 위한 영국, 로스차일드의 협조
'밸푸어 선언' 이어, 1948년 이스라엘 탄생
유대인·아랍의 강제 양립, 무력 충돌 되풀이
편집자주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 역시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정립됐습니다. 어려운 경제학을 익숙한 세계사 속 인물, 사건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으로 근무하는 조원경 교수가 들려주는 ‘세계사로 읽는 경제’는 3주에 한 번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인류 역사 이래 신앙 공동체는 결속의 핵심이었다. 반면 다른 종교 간에는 핍박과 대결의 잔혹사가 펼쳐졌다. 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하마스 간의 충돌도 유대교와 이슬람교 간 끝없는 반목의 연장선 위에 있다. 2021년 5월에도 유사한 전쟁이 발생했다. 종교전쟁은 신을 대리하는 싸움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있는 도시다. 알라 외에 신은 없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야훼 유일신을 주장하는 우파 시오니즘은 서로를 부정해 타협이 애초 불가능하다.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이 지역 분쟁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인류 최초의 종교전쟁은 마카베오 전쟁(B.C. 167년~142년)이다. 유대교와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충돌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졌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정복한 땅에 관용을 베풀어 호평받던 이전의 아케메네스 왕조와는 기조가 달랐다. 셀레우코스의 안티오코스 4세는 토라(모세 5경)를 압수해 불태우고 헬레니즘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해 피지배계층의 문화를 탄압했다. 마카베오란 별명의 유다가 이들과 싸우다 전사한 후 동생 시몬이 예루살렘에서 셀레우코스 군대를 몰아내 유다의 독립을 잠시 이룬다.
유대인의 땅은 쓸모없는 불모지였지만 로마 제국이 포기하기엔 경제적으로 의미가 컸다. 동서 무역의 거점이자 중동 전선의 축인 시리아 지역과 로마에서 가장 경제적 가치가 큰 이집트를 육로로 연결하는 중요한 가교가 유대 지역(유다)이었다. 유다는 병력과 무기를 갖춘 로마군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B.C. 63년 예루살렘이 로마의 폼페이에 함락된다.
로마 정부는 토지세와 인두세 외에 여러 세금을 유대인에게 부과했다. 유대인은 집세, 시장세, 상속세, 노예 해방세, 운반세, 통관세 같은 세금을 로마 황제에게 바쳐야 했다. 세금을 걷는 유대인 세리들이 돈을 부정하게 착복해 증오의 대상이었다. A.D. 70년 예루살렘과 유다가 멸망한다. 이후 유대인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서 2000년 동안 살게 된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팔레스타인이나 근대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로 오늘날 통한다.
흩어진 유대인에게 율법과 돈은 생명줄이었다. 돈이 있는 곳에 유대인이 있다는 말은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그 기원을 찾아보자.
기독교인은 대부업을 죄로 여겨 이를 터부시했다. 대부업은 유대인의 몫이 된다. 유대인은 “이방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는 받을 수 있되 너의 형제에게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는 구약성경 구절을 근거로 이방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다. 중세 기독교 국가에서 왕실과 귀족은 국고관리를 유대인에게 맡겼다. 기독교인 상인층이 형성되자 유대인은 상업 활동에서 제한받기 시작한다. 농노나 노예를 소유할 수도 없어 농사짓는 일도 막혔다. 길드제도(직종이 유사한 사람들끼리 형성한 동업자 조직)는 유대인이 기술자가 되는 길까지 막았다. 남는 것은 고리대금업뿐이었다.
유대인은 고대 이래 돈을 가장 먼저 상품으로 인식하고 무역과 금융을 주도했다. 나라를 잃고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운데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무역 지원 금융을 발달시켜 세계 경제를 선도했다. 디아스포라 간 신용거래는 그들의 자본력과 교역을 늘리는 힘이 됐다.
원래의 영토에 잔류한 소수의 유대인 역시 무역을 독점했다. 그 배경은 이렇다. 중세 교황은 기독교인의 이슬람 접촉을 금지했다. 십자군 전쟁으로 기독교권과 아랍권이 전쟁으로 서로를 적대시했다. 유대인만이 양 지역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어부지리를 얻었다. 유대인은 서로 간에 편지 왕래를 주고받기 위해 사용했던 루트를 무역 항로로 활용했다. 그렇게 유대인이 사는 곳에는 어디서나 무역과 상업의 힘이 넘쳐났다.
유대교를 핍박한 이슬람교는 오스만 제국의 영화를 누린다.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말까지는 유럽 기독교 국가를 위협했다. 그 위협에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나선 이들이 기독교 기사단이었다. 소아시아 일대를 다스리던 오스만 제국은 기사단이 눈엣가시였다. 이들 간의 종교전쟁에서 기사단이 잠시 승기를 잡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동남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를 통치한 제국이 된다.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은 맘루크 왕조와 전쟁을 벌여 승리한 것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한다.
이후 지중해의 이탈리아 반도 옆 발칸반도는 여러 민족과 종교가 엉켜 있어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다. 작은 불씨로 전쟁이 나기에 충분했다. 1912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그리스로 구성한 발칸동맹이 러시아의 지지를 얻고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는 발칸전쟁을 일으켜 승리한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 지역의 영토를 대부분 잃는다. 발칸전쟁이 끝나자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휘말린다. 오스만 제국이 독일 편을 들어 세계대전에 참전한 게 결국 제국의 종말을 가져왔다. 영국은 전쟁 막바지 전비 마련을 위해 유럽 최대은행인 유대계 로스차일드에 손을 뻗친다. 1917년 11월 아서 밸푸어 외무장관이 리오넬 월터 로스차일드 남작의 런던 소재 집에 들러 편지를 건넸다. 이 편지는 후에 밸푸어 선언으로 불리는 것으로,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단초가 된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팔레스타인 지역을 영국이 장악한다. 당시 이곳에 사는 사람 중 대부분이 아랍인이었고 유대인은 소수 민족이었다. 국제사회가 유대인을 위한 고국을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하는 과제를 영국에 안겼다.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땅은 조상들의 고향이었으나, 팔레스타인 아랍인은 이 땅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계획에 반대했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 국가, 아랍 국가로 분리했다. 예루살렘은 국제공동 통치구역으로 두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통과했으나 아랍 측 거부로 실행하지 못했다. 1948년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철수하자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국가 건국을 선언했다. 이후 1973년까지 발생한 4차례 중동전쟁으로 이슬람교와 유대교 간의 대립은 절정에 이른다.
이 가운데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인위적으로 점령했다. 그럼에도 국제적으로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45년간 대립 이후 이스라엘과 합의한 야세르 아라파트는 1993년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세웠다. 파타 정당의 지도자인 그는 첫 번째 국가원수로 팔레스타인 자치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한 축인 가자지구는 하마스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정당)가 장악하고 이스라엘과 수차례 국지전을 벌여왔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쪽의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행동과 각종 제한으로 고통을 겪는다고 호소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폭력에 대한 방어 행동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서로 합의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 처리,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잔류 문제, 양측의 예루살렘 공유 이슈도 해결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만들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그런 가운데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큰 충돌이 재현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이 공들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 모인다. 확전이 없다면 양 지역 전쟁은 직접적으로 유가나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미·이스라엘·사우디 간의 3각 협력구도는 만들어질까? 이스라엘 안보 강화, 이란 견제, 중국의 중동 지역 영향력 차단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걸프만과 아랍 국가들을 철도망으로 연결하고 이 지역 항구를 통해 인도까지 항로를 잇겠다는 미국의 계획도 이루어질지 관심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맞불을 놓으려는 미국의 꿈이 담겨 있다. 중동의 평화가 어서 빨리 와서 어려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걷히길 바란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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