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되풀이되는 악취 고통... 정부 컨설팅 후 시설 개선한 사업장 72%, 또 민원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78곳 중 56곳은 시설개선 했는데도 민원
재실측 해보니 냄새 여전하거나 심해져
환경공단 "실질 개선은 지자체·사업장 몫"
컨설팅 실효성 높이고 사후관리 강화해야
편집자주
전국 곳곳에서 '후각을 자극해 혐오감을 주는 냄새', 즉 악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은 무수히 쌓이는데 제대로 된 해법은 요원합니다. 한국일보는 16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국내 실태 및 해외 선진 악취관리현장을 살펴보고, 전문가가 제시하는 출구전략까지 담은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경기 시흥 정왕동에 있는 제조업체 A사. 여기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자 2019년 시흥시의 의뢰로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들이 '컨설팅'을 나왔다. 공단은 냄새 저감 약품 사용과 환기구 교체 등을 권고했다. A사는 권고대로 따랐고, 공단은 A사가 개선 조치를 완료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1년 뒤인 2020년 3월, 민원이 또 시작됐다. 시흥시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검사기관에 실측을 의뢰했다.
실측 결과 악취 농도는 컨설팅 당시인 1년 전보다 최소 12배나 높았다. 이듬해인 2021년 8월엔 고온다습한 날씨까지 더해져 80배 넘게 올라갔다. 같은 해 9, 10월 악취 농도는 다소 줄었지만, 컨설팅받은 시점보다는 되레 높아진 건 여전했다.
악취를 배출한다고 판정된 전국 사업장 305곳 중 A사를 포함해 적어도 78곳은 정부 컨설팅을 받은 뒤 악취 민원이 또 제기돼 다시 실측을 반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컨설팅 후에도 악취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78곳 중 70% 이상은 컨설팅 권고에 따라 악취 저감 작업까지 마쳤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악취에 시달리는 주민들 불편을 하루라도 더 빨리 해소하려면 컨설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악취 컨설팅도 전국 곳곳이 부실
23일 한국환경공단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박정 의원(더불어민주당)실에 제출한 '악취저감 컨설팅 사업장별 시설개선 조치내역' 최신 자료와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19~21년 환경공단이 지자체의 의뢰로 컨설팅을 추진한 악취 배출 사업장은 전국 12개 기초지자체 305곳이었다. 이 중 최소 10개 지자체 78개 업체에선 컨설팅 완료 후에도 지속적으로 악취 민원이 제기돼 실측까지 이뤄졌다. 본보가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기획시리즈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전국 악취민원 대응 실측현황(2018~23년)' 자료와 박 의원실 자료를 비교해, 컨설팅 전후 제기된 민원과 실측 데이터를 확인한 결과다.
78개 사업장에서 컨설팅 후 민원이 제기돼 실측이 이뤄진 건수는 총 353건이었다. 컨설팅 전(357건)과 큰 차이가 없다. 지자체는 접수되는 악취 민원 중 심각성이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검사기관에 실측을 공식 의뢰한다. 악취의 심각성이 컨설팅 전후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컨설팅 후 민원은 제기됐지만 실측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까지 합치면 ‘부실 컨설팅’은 더 많을 수 있다.
컨설팅받고 냄새 줄어든 곳 거의 없어
컨설팅 후에도 심한 악취가 확인된 사업장 78곳 중 56곳(72%)은 공단의 컨설팅 권고에 따라 시설 개선을 완료한 곳이다. 권고 이행이 악취를 줄이는 데 별 도움이 안 된 것이다. 이들 56곳에서 이뤄진 악취 실측은 모두 238건으로, 컨설팅 후 민원에 따른 실측(353건)의 67%를 차지했다.
컨설팅을 받고 눈에 띄게 악취 농도가 낮아진 사업장은 없었다. 전반적인 냄새 농도가 답보 상태거나 더 높아졌다. 공단이 2019년 컨설팅한 인천 남동구와 경기 시흥 등의 사업장 15곳은 2020~23년 민원 대응 악취 실측이 79건 있었는데, 그중 76건은 공단이 '시설 개선 완료'라고 평가한 14개 사업장에서 이뤄졌다. 2019년 컨설팅을 받은 인천 남동구의 한 사업장은 컨설팅과 시설 개선 후 실측한 냄새 정도가 컨설팅 당시의 무려 45배나 됐다.
2020년 컨설팅을 받은 경남과 대구 지역 사업장 48곳에서도 다시 민원이 제기됐고, 2021년부터 올 6월까지 244건의 실측이 이어졌다. 이 중 133건이 진행된 31곳의 사업장은 컨설팅 후 시설을 업그레이드했다고 기록돼 있다. 일례로 경남 양산의 한 제조업체는 컨설팅으로 악취 저감 시설을 달았는데, 올해 악취 농도가 컨설팅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2021년에도 컨설팅 후 집계된 '심각한 악취 실측' 30건 중 29건(12개 사업장)이 컨설팅 권고를 이행한 곳에서 시행됐다.
별 소용없는 권고, 이럴 거면 뭐하러 하나
공단은 사업장에 시설 개선을 강제하거나 사후 관리·감독까지 책임지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컨설팅 이후 실질적인 악취 관리는 규제 권한이 있는 지자체나 당사자인 사업장 몫이라는 것이다. 공단 관계자는 "공단의 역할은 지자체가 악취배출시설을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 '전략'을 세워주는 것"이라면서 "컨설팅 후에도 악취가 개선되지 않는 데는 시설 유지·관리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정 의원은 "공단은 사업장에 악취 저감 컨설팅을 제공해놓고 민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사하지 않았다"면서 "컨설팅은 문제의 개선을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컨설팅 이후 사후관리도 철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현종 기자 belly@hankookilbo.com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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