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불세출" 박서보 화백 추모, 거장에 맞는 예우? 과열?
“별세 직후 작품가 치솟아, 특정 학맥 앞장서”
“세계 최고 수준인가” vs “독창성, 오히려 저평가”
‘단색화’의 거장 고(故)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의 지난 14일 별세(향년 92세)를 놓고 미술계의 추모 분위기가 과열됐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에 걸맞은 대우라는 시각과 그의 작품을 소장한 일부 갤러리와 특정 학맥의 미화가 낯 뜨겁다는 반응이 엇갈린다.
국내 최대 화랑 가운데 하나인 국제갤러리는 지난 14일 “박서보 화백은 단색화의 거장이자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셨습니다.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치열하게 이룬 화업은 한국 미술사에서 영원히 가치 있게 빛날 것입니다”라는 이현숙 회장 명의의 국·영문 추도사를 언론에 배포했다. 부산의 대형화랑인 조현화랑도 11월 12일까지였던 박 화백 개인전을 12월 3일까지 연장한다고 최근 밝혔다. 화랑 측은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많은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었던 박 작가님의 외롭고 고단했던 시간과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고자 투쟁했던 박 선생님을 기억한다”고 했다.
박 화백이 ‘서거’했다고 표현한 칼럼도 나왔다. 서거란 별세의 높임말로 통상 대통령, 국왕 등 국가최고지도자급의 죽음에만 쓴다. 지난 16일 미술평론가 A씨는 한 종합일간지 인터넷판에 '장강(長江)의 큰 세계, 거장의 별이 지다 - 고(故) 박서보 화백의 서거에 즈음하여'란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여기에서 그는 박 화백을 “불세출의 예술가”라고 격찬했다.
박 화백이 거장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최근의 과열된 칭송 분위기는 별세 직후 유명 작가의 작품가가 미술시장에서 치솟는 것과 연관 있다는 게 미술계 일각의 목소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계 인사는 “유명 작가의 경우 별세 직후 작품가가 치솟았다가 조정기를 거치는데, 작품가가 2배 안팎까지 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도 유족이 부고를 내지, 갤러리가 부고를 전달하거나 갤러리 대표 추도사를 발표하는 경우가 있냐”라며 일부 갤러리의 과잉 칭송 행태에 일침을 놓았다. 박 화백뿐 아니라 한 국내 갤러리가 지난 9월 해외에서 별세한 외국인 전속작가의 사망 보도자료를 낸 것도 비슷한 배경이란 평가다.
박 화백의 미술교육자·행정가로서의 업적,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그는 무수히 많은 선을 긋는 '묘법'(Ecriture·描法) 연작을 50여년 간 펼쳐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또 홍익대 미대 교수(1962~1997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을 맡아, 화단에는 수많은 그의 제자가 있다.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A씨의 칼럼을 링크하면서 “이래서 미술계, H대가 욕먹는 것”이라며 “공론장에서는(과잉칭송을) 자제해 달라”라고 밝혔다. 그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2차원 회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박 화백의 작품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룹전 등을 통해 미술계 특정 학맥 챙기기에 앞장선 분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A씨도 홍익대 미대를 졸업했다. 황정수 미술평론가도 “묘법이 한국적 모더니즘이란 시대성은 있지만, 창조적으로 계승·발전돼 동시대미술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라며 “현대미술에 관심이 커지면서 화랑의 상업논리와 특정 학맥의 이해관계에 따라 과대평가되는 현재의 분위기는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박 화백의 작품 가치가 오히려 저평가됐다는 반론도 있다. 정연심 홍익대 미대 예술학과 교수는 “한국전쟁 이후 박 화백이 묘법으로 한국 화단에서 서구와는 완전히 다른 추상미술을 펼쳤다는 점에서 독창성이 있고 의미가 크다”며 “일본 유명 작가에 비해 국제 미술시장에서 오히려 한국 추상미술 작가가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 박 화백은 서울대 출신 작가들과도 많이 교류하고 작품활동을 했다”고 반박했다.
고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도 양론이 엇갈린다. 앞서 광주비엔날레는 박서보예술상을 제정하고 올해 1회 수상자를 냈지만, 지역 미술단체들이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국가기록화 사업에 참여했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해 1회 시상을 끝으로 상을 폐지했다. 하지만 반(反)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참여하고, 1957년 한국 앵포르멜(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하는 미술사조) 운동을 주도한 현대미술가협회에도 참여한 그의 활동을 균형 있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박 화백은 60년대 반 국전 운동의 중심에 있었고, ‘1%법’(문화예술진흥법)의 토대를 쌓는 등 미술행정가로서 업적도 크다”며 “그의 활동을 일부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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