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국가 주도의 지역 의료

김정수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과장 2023. 10.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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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과장

아메리카 원주민은 약 1만5000년 전 동북아시아에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통과해 신대륙으로 이주했다. 몹시 추운 환경을 통과하는 동안 매개 동물이 필요하거나 복잡한 생활사를 갖는 고대 전염병은 전파 될 수 없었다. 이주 후에 원주민은 독자적으로 농경을 발달시켜 옥수수와 감자처럼 농작물은 재배했지만 동물은 거의 가축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농경 탄생 이후에 생긴 대중성 질병도 없었으며 그러한 질병들에 맞서 발달한 유전적 방어능력도 없었다.

그림= 서상균 기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인의 침략과 함께 전염병의 침략 또한 시작되었다. 오랜 세월 고립으로 면역성이 현저히 떨어진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은 갑자기 덮친 전염병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중남미 대륙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아스텍 제국과 잉카 제국이 유럽인에게 허무하게 무너진 것도 바로 천연두 때문이었다. 당시 아스텍은 중앙집권적 구조를 갖추고 군사적 지배를 통해 주변 부족에게 공납을 강요할 수 있었던 탄탄한 문명이었다. 당시 인구는 1200만~2500만 명으로 추산돼 군사력으로만 평가해도 스페인 정복자를 제압할 수 있었겠지만 천연두의 일격을 받은 군대의 전투력은 급감했다. 일부 자료들은 당시 100여 년 동안 토착인구의 90% 이상이 줄었으며 거의 모두가 전염병이 원인이었다고 추산한다. 결과적으로 아스텍 제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보다는 질병으로 인한 의료체계의 붕괴로 멸망했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원인 중 외세 침입에 의해 발생하는 전쟁이 가장 짧은 기간에 많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잃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전쟁으로 죽는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이 질병과 사고로 죽는다. 다행히 지금 우리나라에 전쟁으로 죽는 국민은 없다. 코로나 상황에서 경험했듯이 전국에 많은 병의원과 훌륭한 의료진으로 보건 환경이 좋아 예전처럼 감염병으로 죽는 사람은 적지만 여전히 많은 이가 각종 질병, 특히 심뇌혈관질환과 예상치 못한 사고로 사망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군인 경찰 소방은 모두 국가기관으로 역할을 하지만, 생명을 지키는 최일선에서 노력하는 의료진은 국가기관보다는 대부분 사립기관에서 근무한다. 우리나라 의료 환경에서 병원은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이윤을 얻을 수 있다. 특별한 경우는 진료할수록 손해를 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립병원은 사람이 많은 수도권지역에서 의료보험급여 대상이 안 되는 미용·성형 진료와 로봇수술, 양성자치료와 같은 고가의 장비를 이용한 비급여치료로 수익을 창출한다. 공공병원은 예산, 구매 절차 등의 문제로 고가의 장비 구입에 어려움이 있고, 공무원봉급표로 정해진 임금과 경직된 채용 절차로 의사 고용이 어렵다. 결과적으로 공공병원은 장비 노후화와 진료 환경의 부실로 점점 진료 능력이 떨어지고, 환자들이 더 찾지 않는 적자 상황에 장비 구입과 채용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악순환을 한다. 특히 지방의 의료 취약지 공공병원은 진료 환자가 적어 항상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수도권의 대형 사립병원과 지방 공공병원은 경쟁이 될 수 없다.


경제적인 논리로 하루 한 명의 뇌졸중 환자가 발생할지 모르는 지역에 뇌혈관센터를 건립하는 사립병원은 없을 것이다. 만약 같은 이유로 한 명의 국민을 포기하는 국가는 더 이상 국가일 수 없다. 심뇌혈관질환 같은 치료가 가능한 골든타임이 존재하는 응급질환 치료를 위해 골든타임 내에 환자가 도착할 수 있는 응급의료기관이 지역마다 설립돼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위해 군인 경찰 소방처럼 이제 최소한 의료 취약지 지방에서라도 의료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 상황과 다를 수 있으나 의료체계의 붕괴로 멸망한 아스텍, 잉카 제국의 역사를 경험 삼아 국가는 적극적으로 지방공공병원에 심뇌혈관센터를 포함한 응급의료시설 설립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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