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령 41호는 '독도 엄호령'…제국주의 광기 日에 한방 먹인 대한제국
연간 20만명 독도 방문…방파제 시설 없어 입도 못하는 날 많아 아쉬움
(울릉·독도=뉴스1) 허정현 기자 = 먹구름이 잔뜩 낀 지난 19일, 독도행 500톤급 유람선은 울릉도 사동항을 출발하자마자 심하게 흔들렸다. '쿠웅 쏴' '쿨렁 쿵' '부르르 척' '추륵 쎅'. 바다와 배가 만나서 낼 수 있는 소리가 이렇게나 다양했나. 출항 때 1m였던 파도 높이는 어느새 4m를 넘나들며 선체를 쪼갤 듯 무섭게 때린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87㎞. 약 90분 쾌속선을 타고도 후들대는 이 뱃길을 70년 전인 1953년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은 앙상한 목선에 몸을 싣고 15시간 이상 파도를 헤치며 오갔다.
◇독도의용대 목선 타고 15시간 뱃길 달려 지킨 독도…쾌속선 타고 90분만에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밟을 수 있다는 독도는 이날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심장이 부서질듯 달려왔지만, 도착 예정시간 30분 전 '기상 상황으로 인해 입도를 못하고 선회관광으로 대체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배 안엔 아쉬움의 탄식이 쏟아진다. 유람선이 동도를 왼쪽에 끼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독도의 뒷바다에 정선하자, 갑판으로 승선객들이 몰려나온다. 어린 자녀와 함께 온 가족도 친구끼리 찾은 중년도 태극기를 꺼내들고 독도 인증샷을 찍느라 분주하다. 때마침 먹구름이 걷히고 반사판처럼 햇살이 비치자 동도와 좀 더 높은 서도가 또렷하게 보인다. 작지만 꼿꼿하고 꿋꿋한 자태다. "와~ 멋지다! 이렇게라도 본 게 어디냐." 30분 남짓 독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승선객들의 얼굴엔 벅찬 감격이 묻어난다.
연간 울릉도 방문객은 40만명 정도이고, 그중 절반인 약 20만명이 독도를 찾는단다. 빠듯한 여행일정 탓도 있겠지만 날씨의 영향이 크다. 독도는 동도에 선착장이 있지만 방파제가 없어서 작은 너울성 파도만 있어도 접안이 불가능하다. 2008년 해양수산부는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 강화를 위한 방안 3가지로, 방파제·해양과학기지·독도입도지원센터 설치를 제시했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외교적 이유로 모두 흐지부지됐다. 해양과학기지는 서해로 이동 설치됐고, 방파제와 독도입도지원센터는 10년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다.
◇신라 이사부가 품은 독도…일본은 아직 제국주의 침탈 야욕 독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독도박물관,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 안용복기념관 등 울릉도내 다양한 독도 관련 시설을 둘러보자. 석포에 위치한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에선 하늘이 개면 독도가 또렷이 보인다. 그렇게 울릉도에서 독도를 볼 수 있는 날은 연간 60일 정도다.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는 독도는 언제부터 역사에 등장했을까. 삼국사기에는 512년 신라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을 신라영토로 편입시켜 군신관계를 유지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후 고려는 원 간섭기에 울릉도를 벌목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직접 관리했다. 조선시대에는 주민을 모두 육지로 송환하고, 왜구를 수색하고 토벌하는 수토정책을 펴지만 울릉도와 독도 인근에서 양국의 충돌은 이어졌다. 이에 1883년 주민을 다시 정착시키는 울릉도 재개척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대한제국은 1900년 10월 25일,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격상하고 죽도, 독도 등 부속도서까지 관할하는 행정책임자를 울릉도감에서 울릉군수로 격상하는 내용의 고종황제 칙령 제41호을 발효한다. 1936년 일본 육군이 제작한 육지측량부 지도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이 명확히 나와 있다. 이 지도는 일본이 침탈한 지역과 자국 영토를 구분해둔 자료로, 울릉도와 독도를 침탈지역으로 표시해둔 것이다.
일본은 이처럼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지하면서도 왜 억지 주장을 이어오는 걸까. 독도박물관 김경도 학예연구 팀장은 "독도는 단순히 영토문제가 아닌 역사 인식 문제로 봐야 한다"며 "일본은 여전히 독도를 침탈 대상으로 보는 제국주의 야욕을 갖고 있다. 이는 독도 지하에 매장된 약 6억톤 규모의 메탄가스 하이드레이트를 노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의 보물섬…우리땅 독도, 울릉도에 답이 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은 수많은 사료에 나와 있지만, 시대·지역별로 다양하게 불렸던 독도의 명칭만 살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는 울릉군수가 관할하는 섬으로 죽도와 석도가 언급되는데, 일본은 이 석도를 독도가 아닌 관음도라고 공격한다. 하지만 당시 울릉 주재 일본 경찰이었던 니시무라 게이조의 보고서에는 관음도를 석도가 아닌 도목으로 표시했고, 일본인 오쿠하라 헤키운이 쓴 '죽도 및 울릉도'에는 관음도를 관음기로 표시해 일본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칙령이 발견되기 전인 1947년 독도학술조사단 방종현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보면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돌섬 또는 독섬이라고 불렀다. 역시 고종 칙령이 발견되기 전인 1948년 한성일보에도 '독도는 우리 섬, 원래 이름은 독섬'이라고 밝히고 있고, 또한 전라도 사람들은 돌을 독이라고 불러 칙령에 나오는 석도가 독도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또한 관음도는 울릉 본섬에 매우 근접해 당시 지도상에 따로 떨어진 독립된 섬으로 표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동북아역사재단 홍성근 교육홍보실장은 "독도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울릉도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독도 연구와 정책 추진에 아주 중요하다"며 "독도 연구는 울릉도에서 시작해서 울릉도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도는 울릉도에 답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홍 실장은 "석포의 북망루터 등을 잘 보존·개발해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적 관계성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울릉도 개발 과정에서 그러한 중요한 역사적 증거들이 훼손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아시나요?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현재까지 독도를 실질적으로 계속 이용·관리하고 있다. 현재 독도경비대원 20명 내외(정확한 규모는 비공개)가 교대근무 중이며, 등대관리원 2~3명과 119 구급대원 2명이 서도 주민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작년 기준 독도 주민등록 인원은 김신열씨 등 30세대 30명이며, 가족관계 증명서 등록지 기준 등재 인원은 3655명이다. 또한 독도 명예주민증 발급 규모는 누계 8만603명이다.
이처럼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일본은 일주일에 2~3번 독도 영해 밖에 순시선을 띄우고 있다. 일본의 멈추지 않는 독도 야욕 앞에서 123년 전 반포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격상해 명실상부한 강원도의 독립 군현으로 자리 잡게 하고, 특히 울도군 군수의 관할 지역에 석도, 즉 독도를 포함함으로써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근대국제법 체제 하에서 재선언한 것이다.
이에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는 고종 황제가 칙령을 재가한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주창했고, 2010년 교총이 기념일로 선포해 독도 수호 의지를 되새기는 날로 삼고 있다.
iamnow@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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