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x설경구 '소년들', "약자들 편이라 믿으며 침묵하는 우리를 위한 영화"(종합)[스한:현장]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정지영 감독과 설경구, 유준상이 함께 한 영화 '소년들'이 실화의 묵직한 감동을 들고 찾아온다.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아이파크몰에서는 영화 '소년들'의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정지영 감독과 설경구, 유준상, 진경, 허성태, 염혜란이 참석해 영화에 대한 이모저모를 공개했다.
영화 '소년들'은 지방 소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형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부러진 화살'(2012), '블랙머니'(2019) 등 실화 바탕 영화로 대중들에게 감동을 안겨온 정지영 감독의 신작이다. 설경구는 극중 우리슈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수사반장 황준철 역을, 유준상이 우리슈퍼 사건의 범인을 검거한 형사 최우성 역을 맡았다. 또한 진경이 우리슈퍼 사건 피해자의 딸 윤미숙, 허성태가 유일하게 황반장을 믿고 따르는 후배 형사 박정규, 염혜란이 재수사에 나선 황반장을 지지해 주는 아내 김경미 역을 맡았다.
정지영 감독은 이미 시사고발 프로그램 등을 통해 다뤄진바 있는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영화화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미 많이 알려진 사건이라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지나가는 것이 대부분이지 않나. 이 사건만은 그렇게 지나가면 안되는 사건이라 생각했다. 다시 들여다보자고 생각했다. 그때 (사건 당사자가 아닌)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이어 "삼례나라수퍼 3인조 사건에 대해 재미로만 보도를 통해 들여다보고 '아 불쌍하다'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그 세 소년이 감옥을 가는데 묵시적으로 동조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까지 들여다보면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길 바랐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영화 '부러진 화살', '블랙 머니' 이후 다시 한번 실화 베이스의 영화에 도전한 이유에 대해 "실화를 영화화하면서 사람들이 저보고 한국의 켄 로치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켄 로치감독은 실화를 가지고 진정성 있게 사실적으로 다가가지만 저는 실화에 극적 장치 넣어서 만드는 사람 아닌가. 저는 많은 관객과 나누고 싶어서 영화 만들고 있다. 심각성이라던가 잔재미를 넣어서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이어 "사실대로만 만든다면 황준철 반장이라는 인물은 등장할 수 없다. 실제 상황에서는 다른 변호사와 사람이 사건을 풀어갔다. 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사건을 끌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건의 인물을 가져와서 이야기 끌어갔다. 저는 극적 장치를 도입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뼈대를 흐트러뜨리거나 왜곡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극중 황준철 반장 역을 연기한 설경구는 "이 사건에 대해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알고 있었다. 저 역시 그 순간에는 분노하고 화나고 했지만 결국 흘려 보냈던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황 반장은 사실 이 사건과 무관한 익산의 약촌 오거리 진범을 찾아낸 황 반장님 빌려다 쓴 캐릭터다. 이번 캐릭터를 통해 특별히 어떤 주안점을 주기보다 저를 통해 이 사건을 정확히 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이어 자신의 대표적 캐릭터 중 하나인 강철중과 황 반장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책을 받기 전 정지영 감독님을 사석에서 뵜다. 감독님께서 '강철중 같은 역할로 같이 한번 해야지'하시더라. 그 이후 '고발'이라는 제목의 책을 주셨다. 지난번 만남이후 딱 일주일만에 책을 주시더라. 저 또한 정지영 감독님과 꼭 같이 한번 하고 싶을 때였다. '공공의적'을 하고 나서는 강철중 같은 역할들이 많이 왔었다. 그때는 많이 밀어냈었는데 지금은 받아들이게 됐다. 황 반장은 마치 정리된 강철중 같았다고 할까. 일도 체계적으로 하는 경찰이었다. 16~17년 이후 황준철 모습이 중요하게 와닿았다. 피폐해져 보이고 몸과 마음도 지쳐있고 술에 의존하는 모습 보여주면서 젊은 모습과 교차 시켰다. 혈기 왕성한 모습과 갭이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로 서장의 신임을 받는 전북청 수사계장이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소년들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최우성 역을 맡은 유준상은 "최우성 역할에 악의 명분이 정확히 설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해당 사건은 미리 알고 있었다. 나이든 최우성에게 욕심과 성공을 추구했을 때 얻어지는 모습들을 담고 싶었기에 17년후의 최우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제가 영화 속에서 (나쁜 쪽으로)많은 일을 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면서는 펑펑 울었다. 제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게 안믿겨지도록 영화에 많이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유준상은 "최우성이 악의 화신이거나 악의 축이거나 이렇지는 않다. 그래서 더 무서웠고 우리가 말하는 악인들이 우리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명분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최우성 행동의 가장 큰 명분을 찾아야 했다. 소년들이 마지막으로 판결받는 신에서 최우성이 손가락질을 하며 밥정을 나가지 않나.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은다. 그 장면 이후 평소의 제 모습으로 돌아와서 자책을 했다. '최우성은 왜 저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하는 인물에 대해 꾸짖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연기하는 동안 정확한 명분을 찾아야 하기에 악의 축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고 믿어가는가 보여주려는 것이 최우성 역할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극중 우리슈퍼 사건으로 사망한 할머니의 딸이자 목격자인 윤미숙 역을 맡은 진경은"본의 아니게 시행착오가 있었던 부분에 대해 그걸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고 해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바람직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며 "무엇보다 캐릭터 외적인 부분보다는 진심, 진실성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진경은 이어 "그리고 설경구 선배님하고 작품에서 많이 만나게 됐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배우이고, 존재만으로 화면을 꽉 채우는 분이다.제가 같이 작업하면서 배웠고, 티키타카도 잘 맞아가는 시간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완주서에서 유일하게 황준철을 믿고 따르는 후배 형사 박정규 역의 허성태는 "연기를 하면서 의도를 가지고 하지는 않았고, 정지영 감독님과 설경구 선배님이 열어주셔서 노는 기분으로 했다"고 밝혔다.
재수사에 나선 황반장을 지지해 주는 아내 김경미 역의 염혜란은 "부끄럽게도 저는 사건에 대해 몰랐다. 약촌 오거리 사건도 있었고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작품을 하면서 놀랐던 것은 이 사건이 1999년에 일어났다. 제가 대학 졸업했을 때였는데 민주화가 되고 억울한 일도 없어지고 있다고 믿던 시대였는데 제가 편하게 대학 생활을 하고 있을 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게 놀랍더라. 김경미라는 역할이 보시는 분들과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은 영화의 엔딩부분에 '해당 사건과 관련된 경찰과 검찰 중 끝까지 처벌 받은 사람은 없었다'는 자막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그런 내용들도 이 작품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우리 스스로 마음으로는 약자들 편이라고 하면서 침묵을 지키지 않나. 그 침묵을 이용해서 힘있는 자들은 약자를 힘들게 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좀 새겨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애초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그런 부분에 포커스를 맞췄다. 영화를 찍으며 약한 자들,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시선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화 '소년들'은 오는 11월 1일 개봉한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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